8월 17일
눈을 뜨자마자 누수 상황을 점검했다. 대어놓은 수건은 눅눅하게 젖어있었지만, 더 이상 문틈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안심이 되었다. 세면대를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건가 보다!
조금 불편했지만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고, 학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누수상태를 점검하는데, 젠장. 또 물이 한 바가지 새어 나와 있었다. 또 유학생 소녀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세면대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물이 새어 나오네요.>
학원에서 누수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네가 잘못한 게 없는 걸 뭐! 살면서 그런 일도 있는 거지! (C’est la vie!)”라고 말했다. 프랑스인 특유의 삶의 자세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어깨 한 번 으쓱하며, 그게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그녀는 파리에서 누수는 꽤나 흔한 일이라고 했다. 파리의 아파트들은 오래된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것이니, 당연히 수도 시설이 노후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데도 머릿속에는 온통 누수생각뿐이었다. 만약 집에 돌아갔는데 물난리가 나있으면 어떡하지.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고 쫓아 올라왔으면 어떡하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커져만 갔다. 상상은 점입가경이 되어, 마지막에는 집 문을 열었는데 물이 넘실거리고 온갖 가구들이 떠다니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끔찍했다.
최대한 빨리 친구들과의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유학생 소녀는 나를 집주인과 연락시켜 주었다. 집주인은 누수문제는 파리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라며, 바로 전문가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전문가가 한두 시간 내로 도착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두 시간 후면 도착한다는 배관공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두 시간 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배관 업체였다. 한 시간 후에 배관공이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고 또 두 시간 반이 지났다. 배관공은 오지 않았다. 혹시 배관공이 이미 왔었는데 그의 방문을 놓친 것은 아닐까. 용기 내어 배관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배관업체 직원은 웃으며 아직 배관공이 이전 일을 끝마치지 못해서, 마지막 일을 마친 후에나 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곧 그가 도착할 것이라고 희망고문을 잊지 않았다.
파리 지앵들이 왜 이렇게 줄 담배를 피워대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너무 답답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귀갓길에 약쟁이가 따라붙는다. 야간 버스가 아무 설명도 없이 운행되지 않는다. 갑자기 화장실에서 누수가 일어난다. 배관공을 보내주기로 해놓고 시간 내로 보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참을 인자를 새겨가는 과정인 것이다. 파리지앵들은 이 속 타는 마음을 담배를 피우며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살다 보면 비흡연자인 나조차도 골초가 되고야 말 것이라고 장담한다.
배관공이 오기로 한지 다섯 시간 후, 다행히도 그가 도착했다. 그리고 더 다행히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세면대 뒤의 나사 연결 부위가 느슨해져 물이 새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배관시설이 너무 오래된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배관공이 수도시설을 고치려 발버둥 치다가, 거실의 타일을 하나 뽑아먹은 것이다. “배가 아플 때는 머리를 세게 때리세요. 머리가 아파서 배가 아픈 걸 잊게되니까요.” 라는 누군가의 농담이 떠올랐다. 문제가 하나 사라지면 다른 문제가 하나 생긴다. 이 역시 파리지앵들이 줄담배를 피워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단기간 동안 다채롭게 이상한 일들을 겪은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집을 빌려준 유학생도 본인이 수년간 겪었던 것보다 이상한 일들이 내게 많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직면한 과제를 어찌어찌 해결해 나가며, 해외 살이의 근육을 키워나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기 체류인데 이럴필요까지있었나 싶기도 하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도 너무나도 프랑스 스러웠다. 기다림의 미학을 몸소 배운 것이다.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저녁을 오롯이 소비했다. 이 때문에 비록 친구들과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못하게 되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인생이 다 그런 것을 (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