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미안합니다. 오늘 수업은 취소되었습니다. 담당 교사의 집에 누수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취소된 수업료는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본 건 어학원에서 보내온 이메일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누수가 역시 나 혼자만 겪는 일은 아니었군. 하지만 이렇게까지 흔한 일이었다니. 마지막 날까지 이렇게 누수와 취소로 범벅된 파리 클리셰로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제 소동으로 아무도 못 만나는 바람에, 마지막 날 일정은 꽤나 분주했다. 오전에는 수업이 취소된 김에, 어학원친구들을 만나 함께 아침을 먹었다. 오후에는 프랑스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 마일리스를 만났다. 오랜만에 파리에 온 친구를 만나는 건 무척 반가웠지만 헤어짐이 문제였다. 좋아하는 누군가의 말을 끊고 갑자기 일어난다는 게 나에게는 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서 공항까지 RER을 타고 가기로 했다. RER을 타고 가는 길은 순탄치는 않았다. 처음에는 내 실수로 종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중간에 내려서 다른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그다음에 탄 열차는 대한항공이 있는 터미널 2까지 열차 운행을 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열차에서 내려서 다음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뭐에 씐 건지 나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재빨리 짐을 부쳤다. 그리고 택스리펀을 받는 줄에 섰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8시 50분에 탑승 시작인데 이미 8시 5분이었다. 조금 초조해졌다. 택스리펀 직원이 다가와서 비행기가 몇 시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9시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택스리펀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직원 아저씨는 걱정 말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슴을 두 번 두드렸다.
택스리펀을 삼십 개는 받는 것 같은 앞사람을 기다리며 불안은 극에 달했다. 프랑스의 느리디 느린 행정처리와 콜라보되어 체감상 한 시간은 기다린 것 같았다. 직원 아저씨는 내 앞에 서있던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양보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앞에 두 사람은 싫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직원 아저씨는 단호하게 너희들 비행기는 열 시이고 이 사람은 아홉 시니 양보해 주라고 힘주어 말했다.
택스리펀이 다 끝나니 8시 10분이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공항에서 늑장을 부린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택스리펀 직원은 의리 있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들이 다 들어가는 체크인하는 길을 지나쳤다.
“너는 저 길로 가면 늦어. “
그가 나를 인도한 길은 패스트 트랙이었다. 그는 공항직원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직원 카드를 보여주었다. 그의 카드에 패스트 트랙으로 가는 길은 모세가 홍해바다 가르듯 열리고 말았다. 위풍당당한 그 모습은 나를 도와주러 온 슈퍼히어로 같았다. 마지막 비행기를 탈 때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나만의 파리 클리셰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기뻤다.
삼 개월이 폭풍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또래의 친구들, 한참 어리지만 무르익은 생각을 하는 틴에이져 친구들까지. 그리고 스스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파리에 안 왔더라면 난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만큼 좋은 결정이었다.
프랑스스럽게 파리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도 지연되었다. 하루 종일 취소, 지연, 연착이라니. 마지막까지 정말 지긋지긋하군! 하지만 나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또한 인생이므로!(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