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고맙게도 친구는 나를 본인의 집에서 재워주었다. 오래 안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준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어쩌면 타인의 진심은 내가 곤경에 쳐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다른 어학원 친구들의 반응에는 크게 실망했다. 어학원 친구들 단톡에 나의 상황에 대한 문자를 보냈으나, 다들 대꾸조차 없었다. 어떻게 아무도 답장을 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답장을 해주었다.
“너 문이 닫혔니? - 초보반에 있는 클레어”
나는 클레어가 누군지 알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혹여 도움이 되는 메시지일까 싶어서 다시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황당하게도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 배신의 현장에서, 오직 이 친구만 나에게 와준 것이다.
이 친구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패닉으로 진땀을 흘리다가 기절했을 수도 있겠다.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자만의 바벨탑은, 타지에서 열쇠를 두고 나온 것 하나만으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스스로를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쫓길 때는 낯선 프랑스인이 도와주고, 나이트 버스가 없을 때는 마일리스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문이 닫혔을 때는 친구가 이렇게 와주었다.
서울에서는 언제나 예상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일들만 일어났기에 파리에서도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도저히 공포감을 이겨낼 수 없을 때마다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평소라면 한국으로 키를 가져갔을 거지만, 이번에는 혹시 몰라서 친구에게 맡겨 두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어리바리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모양이다. 가방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눈물 나게 기뻤다.
그녀의 친구에게 열쇠를 받고 알리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영어가 완벽한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친구 사이가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언어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간혹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으니 말이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었더라면 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여행지에서는 더욱 절절하게 느낀다. 모든 만남에 진실해야 하고 순간순간 진심으로 행동해야 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비단 여행지뿐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모두와 언젠가는 헤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모든 만남과 기회를 가볍게 여기지 말자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더 다가가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부끄럽지만 물어라도 보는 사람이 되자고 또 다짐하게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