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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계절 Oct 05. 2023

명품 가방 하나도 부러워 - 그래니 스퀘어 가방

뜨개질 하면 차분해진다고 누가 그랬어

(명사)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사치의 사전적 정의다. 키포인트는 ‘분수에 지나친’이다. 상대적 개념이라는 말이다. 월급으로 200만 원을 받는 사회 초년생이 100만 원짜리 명품 지갑을 들고 다니는 건 사치지만, 달에 몇천만 원씩 세를 받는 건물주가 300만 원짜리 가방을 메는 건 사치라고 보기 어렵다.


나를 객관적 시선으로 판단한 결과, 내 사치 경계는 20만 원쯤 된다. 중요하거나 꼭 하고 싶은 일에 20만 원까지는 쓸 수 있으나 그 위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조바심이 난다. 다음 달 생활비에서 또 얼마를 아껴야 하나, 하고 걱정이 많다. 


다행인 건 옷이나 가방에 욕심이 없다. 대신 취미가 많지만. 치장에 쓸 돈을 책이나 뜨개실, 스티커와 다이어리에 쓰느라 바쁘다. 치장에도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내 통장은 진작에 거덜나지 않았을까.


여기서 욕심이 없다는 게, 관심이 없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 선물하면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부럽다는 생각도 한다. 다만 경제력이 허락하지 않을 뿐이지. 전에 어느 브랜드에서 넉넉한 수납공간을 자랑하는 가죽 가방을 선보인 적이 있다. 가격은 백 오십만 원이었나, 이백만 원이었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곧바로 창을 껐던 건 분명하다. 심플한 블랙에 가운데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이 박힌 가방이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튼튼한 가방을 만드는 일이다. 오늘도 이렇게 얼렁뚱땅 실을 살 구실을 만든다. 몇만 원짜리 투자해서 산 실로 직접 만들면 재미도 있고 결과물도 남고, 일석이조라며 합리화를 하는 거다. 삼만 원을 열 번만 쓰면 삼십만 원이라는 것도 모르고.



사용한 실이 중고 거래로 업어온 실이라 정보가 없다. 내 마지막 양심이 가격이 낮은 중고 실을 찾았다. 추측하자면 면과 아크릴이 섞인 혼방사가 아닐까 한다. 코바늘 6호(3.5mm)를 사용했고 밑동을 먼저 만들어 어깨끈을 따로 이어 붙였다. 나는 어깨끈을 떴지만 시중에 파는 가죽끈을 달아도 예쁠 것 같다. 


바닥부터 시작해 옆면을 타고 올라오면서 쭉 떠가면 된다. 난도는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한길 긴뜨기와 빼뜨기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전혀 무리 없이 완성할 수 있는 가방이다. 다만, 코바늘은 한 코씩 쌓아 올리는 방식인 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고 손목에 부담이 갈 수 있으니 꼭 충분히 휴식하며 뜨자. 


안쪽이 꽤 넓어 수납력이 좋다. 음, 딱 내가 가지고 싶었던 가방이다. 조그만 문제가 있다면 실이 생각보다 포근한 느낌이라 여름에 들고 다니면 손에 땀이 난다. 어깨에 메면 어깨에, 무릎에 올려놓으면 무릎에 땀이 찬다. 안타깝지만 날이 쌀쌀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메고 다닐 수 있겠다.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수납력 좋은 가방이 필요하고 눈에 띈 명품 가방은 백만 원이 넘고, 기껏 뜬 가방은 가을에나 멜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사는 수밖에. 사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는걸. 정말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야. 나는 큰 결심을 하고 가방을 샀다. 브랜드 로고 박힌 명품 대신 만 원짜리 군용 배낭을.


수납은 말할 것도 없고 허리와 가슴에 고정장치도 있는 군장용 배낭이다. 최저가로 찾아 샀더니 공장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금방 사라졌다. 돈도 써본 놈이 쓴다고, 나는 맨정신으로는 그만한 돈을 턱턱 쓰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정말 부러운 건 제품가에 연연하지 않는 여유인 것 같다. 영화 ‘아가씨’에서 하정우의 대사를 들은 뒤로 종종 떠올리는 말이다. 사실 돈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로 탐하는 건 가격을 보지 않고 포도주를 주문하는 태도, 라는 대사. -영화 후반, 제3부 시작 장면에 나온다.-


어쭙잖은 마음으로 어설프게 합리화하며 허튼 곳에 돈을 쓰는 내가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서랍에 넣어둔 코바늘 가방과 등에 멘 군용 가방이 어쩐지 날 한심하게 보는 것 같다.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사이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멀거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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