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을 닮는다?

by 이계절

나는 할머니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금도 가끔 듣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유를 알 것 같다. 듬직한 풍채와 쌍커풀이 없던 눈, 곱슬거리는 머리까지, 할머니 미니어쳐 같았다. 할머니와 닮았다는 말이 싫은 건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거기에 덧붙이는 말은 싫었다.


아기는 원래 임신했을 때 미워하는 사람 닮는 법인데, 며느리가 날 얼마나 싫어했으면 나랑 이렇게 닮았겠어.


정말 나를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를 죽도록 미워하는 바람에 내가 할머니와 많이 닮은 걸까?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은 만큼 저 말도 많이 들어야 했기에 내 양쪽 귀에는 못이 수두룩 박혔다.


당연히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말이 있는지 찾아봤다. 태아는 정말 임신한 사람의 원수(?)를 닮는다는 미신이 있는지. 2006년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화면 캡처 2023-05-01 150816.png 익명게시판

할머니가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니!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직 나의 엄마일 때, 유치원 참관수업을 온 적이 있었다. 나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발표는 커녕 숨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 모습이 탐탁치 않았는지 엄마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 기다리지 않고 먼저 유치원을 빠져나갔다.


그러던 중, 그날 배운 글자 수업이 떠올라 엄마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엄마랑 나는 '진'자가 똑같네? (둘 다 이름에 '진'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너랑 내가 뭐가 똑같아? 너는 느이 할머니랑 똑같지.
아니 아니 이름에 글자가...
안 똑같다고!


이름에 같은 글자가 들어있다는 걸 깨달은 딸에게 호통치는 엄마. 어찌나 크게 소리쳤는지 주위 학부모들이 다 돌아봤다. 나는 엄마를 화나게 했다는 생각에 영문도 모르고 눈치를 보며 사과했다. 그 뒤로는 엄마와 나를 비교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디서 누구의 엄마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혹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누구로-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서로에게 너무 슬픈 일이니까. 아무도 행복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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