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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Nov 04. 2024

17. 팔자를 알면 생기는 일 2

팔자 공부에는 일주론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갑인(甲寅) 일주라면 지지에 호랑이를 깔고 앉아 고독하며 호랑이답게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지지에 록(祿)을 깐 일주들은 맏이가 아니어도 맏이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인 일주도 그중 하나다. 乙木과는 달리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힐 줄을 모른다. 甲木의 기백으로 못 먹어도 Go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여섯 글자는 무시하고 오로지 태어난 날의 천간 지지만으로 성향이나 육친을 풀어놓은 게 일주론이다.


그중 丙寅일주는 태양(丙火)과 호랑이(寅木)의 조합으로 양의 기운이 매우 강한 일주다. 그래서 그런지 丙寅 일주로 태어난 팔자들은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직장에 있더라도 연구직이나 외환 딜러처럼 독자적 권한이 있는 일이 아니면 조직 생활을 힘들어한다.

丙寅일주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인물이 좋은 경우가 많다. 새벽녘에 떠오르는 태양이나 탐스럽게 활짝 꽃을 상상해 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병인 일주의 또 다른 특징은 가르치는 일과의 인연이다. 地支의 寅木은 병화의 장생지로 학당귀인이 되는데 병인일주 역량의 중심이 여기에 있다.

丙火의 학당귀인인 寅木이 팔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 좋은 배우자와 인연 하거나 교육과 학문에 인연이 있다.


올 초에 큰 아이가 꽃같이 어여쁜 아이와 결혼을 했다. 결혼 전 아들이 알아온 그 아이 사주를 보니 남편과 똑같은 丙寅일주였다. 게다가 남편 사주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사주가 익숙해서 그런지 처음 보는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은 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태양처럼 빛나던 丙寅 일주 그 아이는 처음부터 우리 식구인 듯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밝고 차분한 기운의 그 아이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센스까지 있어 볼 때마다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했다. 결혼 날짜를 잡는 일부터 예식장을 잡고 상견례를 하기까지 양쪽집안 어느 쪽에서도 한 톨의 잡음도 일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결혼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인 듯 흐르는 물처럼 순조롭게 진행됐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글자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둘은 오누이처럼 다정하고 정답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그 아이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다. 아들과 그 아이는 회사에 남아야 할지 명퇴 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해 운을 보니 직장 퇴직수가 있고 목돈이 들어올 게 보여 말해주었다. 내 말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 아이는 명퇴를 선택했다.


대기업 4년 차 경력이 있으니 재취업을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였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며느리는 회사가 싫다며 이것저것 시도를 했다. 丙火 일주답게 영상 제작에 관심을 보이며 사업을 추진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어버이 날 만난 우리는 식사 후 카페에서 담소 중이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며느리가 안쓰런 마음에 내가 말했다.


"ㅇㅇ아 혹시 한국어 강사라고 알아?"

" 네. 알긴 알아요."

" 그거 한번 알아보는 게 어때? ㅇㅇ랑 잘 맞을 거 같은데... 원래 병인 일주들은 가르치는 일과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거든. 거기다가 ㅇㅇ는 해외랑도 인연이 있으니 외국 사람들 가르치는 일이 괜찮을 거 같아.

성격도 차분하고 친절하니까 금방 자리 잡을 걸."


순간 두 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의논 끝에 며느리는 한 플랫폼에서 그 일을 시작했고 반년도 안된 지금은 수업이 너무 많은 걸 고민하고 있다.

수업으로 지쳐 보일 때는 안쓰런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회사보다는 낫다는데 어쩌겠는가?


사람처럼 직업도 인연이 있다.

인연이 있는 일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남들은 어렵다는데 자기는 할 만하다. 너무 애쓰지 않았는데도 우연처럼 하게 되거나 친구나 주변에 누가 한번 해보란 말에 가볍게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는 수도 있다.



소 뒷걸음치다 쥐를 두 번이나 잡은 덕에 팔자 공부에 들어간 거금이 아깝지 않게 됐다. 더불어 집에서의 위상도 올라갔는지 남편이나 애들도 중요한 일은 꼭 물어보고 한다. 시어머니도 단골로 다니시던 무당 할머니네를 다녀오시면 내게도 같은 걸 물어 더블 체크하는 치밀함을 보이신다.


가끔은 뻥을 치기도 한다. 사실 아주 뻥인 것만은 아니지만 조금 더 뻥을 튀겨 말한다.

2024년 甲辰년이 들어서는 입춘이 넘어갈 때 남편에게 말했다.


"올해는 부부 이별 수가 있으니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해야겠어"


나는 부부 이별 수를 힘주어 강조하며 은근히 겁을 준다. 남편은 미심쩍어하면서도 할 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은 속아주는 마음으로 반은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할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겠지?


아이들 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여행으로 갔던 제주도를 30년 만에 다시 갔다. 결혼 생활 30년간 혼자서는 한 번도 외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하는 그것도 제주도 한 달 살기는 거의 '프랑스혁명'에 가까웠다.

혼자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한 달간 머물 숙소를 예약하는 일 자체가 나에겐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 잠깐 포기할까 했지만 지인들의 반대와 격려로 밀어붙였다.


벚꽃이 저물어 가는 4월이었지만 내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눈이 시리도록 맑고 파란 바다와 푸르른 녹음이 시작되는 나무들은 고달팠던 내 영혼을 담기에 충분했다.  


공교롭게도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내 생일이 돌아왔다. 큰아들과 햇살 같은 며느리가 내려와 함께 밥도 먹고 성산 일출봉도 올랐다. 일출봉 정상에서 망망한 바다를 보니 20년 전 구치소에서의 생일이 떠올랐다.


구멍이 송송 뚫린 유리창 너머에서 두려움에 떨던 남편과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막막했던 내 모습이 스치듯 지나갔다. 어떻게 그 막막함을 건너 지금 저 싱그런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있는지 새삼 기특했다.

마음 한편에선 한두 시간이면 올 수 있는 제주도 땅을 한번 밟아 보지도 못하고 떠난 부모생각에 목이 메어왔다. 좋은 우리 엄마 아버지는 한 번도 못 보고 가셨구나 생각하니 가슴속 돌덩이가 더 묵직해졌다.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엄마는 남들 다하는 효도여행마저 마다했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도 2주 정도를 제주도에 더 머물렀다. 숙소 바로 앞 바닷가를 거의 매일 걸었다. 맨발에 와닿는 아직은 차가운 바닷물과 발바닥에 느껴지는 모래의 까슬거림이 좋았다. 일부러 모래를 후벼 맨발을 파묻기도 하고 덮칠 듯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깔깔거리며 달아나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거센 날에도 숙소 앞 바닷가를 걸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 쓰고 있던 우산이 뒤집어졌다. 우산을 접어들고는 그대로 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날려 버릴 것 같은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다가 뜬금없이 울컥했다.


'도망가지 않았구나!'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파도 앞에서도, 거센 비바람에 우산마저 날아갔어도 도망가지 않고 버텨냈구나!

흐르는 눈물이 빗물이 되어 바람 속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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