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갑인(甲寅) 일주라면 지지에 호랑이를 깔고 앉아 고독하며 호랑이답게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지지에 록(祿)을 깐 일주들은 맏이가 아니어도 맏이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인 일주도 그중 하나다. 乙木과는 달리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힐 줄을 모른다. 甲木의 기백으로 못 먹어도 Go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여섯 글자는 무시하고 오로지 태어난 날의 천간 지지만으로 성향이나 육친을 풀어놓은 게 일주론이다.
그중 丙寅일주는 태양(丙火)과 호랑이(寅木)의 조합으로 양의 기운이 매우 강한 일주다. 그래서 그런지 丙寅 일주로 태어난 팔자들은 남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싫어한다. 직장에 있더라도 연구직이나 외환 딜러처럼 독자적 권한이 있는 일이 아니면 조직 생활을 힘들어한다.
丙寅일주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인물이 좋은 경우가 많다. 새벽녘에 떠오르는 태양이나 탐스럽게 활짝 핀 꽃을 상상해 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병인 일주의 또 다른 특징은 가르치는 일과의 인연이다. 地支의 寅木은 병화의 장생지로 학당귀인이 되는데 병인일주 역량의 중심이 여기에 있다.
丙火의 학당귀인인 寅木이 팔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 좋은 배우자와 인연 하거나 교육과 학문에 인연이 있다.
올 초에 큰 아이가 꽃같이 어여쁜 아이와 결혼을 했다. 결혼 전 아들이 알아온 그 아이 사주를 보니 남편과 똑같은 丙寅일주였다. 게다가 남편 사주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사주가 익숙해서 그런지 처음 보는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은 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태양처럼 빛나던 丙寅 일주 그 아이는 처음부터 우리 식구인 듯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밝고 차분한 기운의 그 아이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센스까지 있어 볼 때마다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했다. 결혼 날짜를 잡는 일부터 예식장을 잡고 상견례를 하기까지 양쪽집안 어느 쪽에서도 한 톨의 잡음도 일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결혼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인 듯 흐르는 물처럼 순조롭게 진행됐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글자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둘은 오누이처럼 다정하고 정답다.
결혼식을 몇 달 앞두고 그 아이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다. 아들과 그 아이는 회사에 남아야 할지 명퇴 신청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해 운을 보니 직장 퇴직수가 있고 목돈이 들어올 게 보여 말해주었다. 내 말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 아이는 명퇴를 선택했다.
대기업 4년 차 경력이 있으니 재취업을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였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며느리는 회사가 싫다며 이것저것 시도를 했다. 丙火 일주답게 영상 제작에 관심을 보이며 사업을 추진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어버이 날 만난 우리는 식사 후 카페에서 담소 중이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며느리가 안쓰런 마음에 내가 말했다.
"ㅇㅇ아 혹시 한국어 강사라고 알아?"
" 네. 알긴 알아요."
" 그거 한번 알아보는 게 어때? ㅇㅇ랑 잘 맞을 거 같은데... 원래 병인 일주들은 가르치는 일과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거든. 거기다가 ㅇㅇ는 해외랑도 인연이 있으니 외국 사람들 가르치는 일이 괜찮을 거 같아.
성격도 차분하고 친절하니까 금방 자리 잡을 걸."
순간 두 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의논 끝에 며느리는 한 플랫폼에서 그 일을 시작했고 반년도 안된 지금은 수업이 너무 많은 걸 고민하고 있다.
수업으로 지쳐 보일 때는 안쓰런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회사보다는 낫다는데 어쩌겠는가?
사람처럼 직업도 인연이 있다.
인연이 있는 일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남들은 어렵다는데 자기는 할 만하다. 너무 애쓰지 않았는데도 우연처럼 하게 되거나 친구나 주변에 누가 한번 해보란 말에 가볍게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는 수도 있다.
소 뒷걸음치다 쥐를 두 번이나 잡은 덕에 팔자 공부에 들어간 거금이 아깝지 않게 됐다. 더불어 집에서의 위상도 올라갔는지 남편이나 애들도 중요한 일은 꼭 물어보고 한다. 시어머니도 단골로 다니시던 무당 할머니네를 다녀오시면 내게도 같은 걸 물어 더블 체크하는 치밀함을 보이신다.
가끔은 뻥을 치기도 한다. 사실 아주 뻥인 것만은 아니지만 조금 더 뻥을 튀겨 말한다.
2024년 甲辰년이 들어서는 입춘이 넘어갈 때 남편에게 말했다.
"올해는 부부 이별 수가 있으니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해야겠어"
나는 부부 이별 수를 힘주어 강조하며 은근히 겁을 준다. 남편은 미심쩍어하면서도 할 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은 속아주는 마음으로 반은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할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겠지?
아이들 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여행으로 갔던 제주도를 30년 만에 다시 갔다. 결혼 생활 30년간 혼자서는 한 번도 외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하는건 그것도 제주도 한 달 살기는 거의 '프랑스혁명'에 가까웠다.
혼자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한 달간 머물 숙소를 예약하는 일 자체가 나에겐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웠다. 잠깐 포기할까 했지만 지인들의 반대와 격려로 밀어붙였다.
벚꽃이 저물어 가는 4월이었지만 내게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눈이 시리도록 맑고 파란 바다와 푸르른 녹음이 시작되는나무들은 고달팠던내 영혼을 담기에 충분했다.
공교롭게도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내 생일이 돌아왔다. 큰아들과 햇살 같은 며느리가 내려와 함께 밥도 먹고 성산 일출봉도 올랐다. 일출봉 정상에서 망망한바다를 보니 20년 전 구치소에서의 생일이 떠올랐다.
구멍이 송송 뚫린 유리창 너머에서 두려움에 떨던 남편과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막막했던 내 모습이 스치듯 지나갔다. 어떻게 그 막막함을 건너 지금 저 싱그런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있는지 새삼 기특했다.
마음 한편에선 한두 시간이면 올 수 있는 제주도 땅을 한번 밟아 보지도 못하고 떠난 부모생각에 목이 메어왔다. 이 좋은 걸 우리 엄마 아버지는 한 번도 못 보고 가셨구나 생각하니 가슴속돌덩이가 더 묵직해졌다.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엄마는 남들 다하는 효도여행마저 마다했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도 2주 정도를 제주도에 더 머물렀다. 숙소 바로 앞 바닷가를 거의 매일 걸었다. 맨발에 와닿는 아직은 차가운 바닷물과 발바닥에 느껴지는 모래의 까슬거림이 좋았다. 일부러 모래를 후벼 맨발을 파묻기도 하고 덮칠 듯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깔깔거리며 달아나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거센 날에도 숙소 앞 바닷가를 걸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 쓰고 있던 우산이 뒤집어졌다. 우산을 접어들고는 그대로 비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날려 버릴 것 같은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다가 뜬금없이 울컥했다.
'도망가지 않았구나!'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파도 앞에서도, 거센 비바람에 우산마저 날아갔어도 도망가지 않고 버텨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