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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Nov 06. 2024

19. 궁합보다 중요한 것

팔자공부를 시작한 지도 올해로 벌써 9년째다.

작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시작한 공부가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해 독립해 나가고 큰 아이가 결혼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처음 명리를 배우러 갔을 때는 이리 오래 할 생각이 아니었다. 1년이면 자기 팔자정도는 볼 수 있다길래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코를 꿰여 여기까지 온 거다.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도 이해는 간다.

처음부터 팔자공부란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사막 같다고 하면 누가 섣불리 命을 보겠다고 덤비겠는가?

가끔은 당신도 당신 스승님께 그렇게 코를 꿰였노라 하시며 음흉하게 웃으신다.


팔자공부를 오래 하다 보면 오래된 연인들이 권태기를 만나 듯 슬럼프를 맞는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흥분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때이기도 하다. 일부는 선생을 잘못 만났나 싶어 다른 용한 선생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계속하기엔 끝이 안 보이고 그만두자니 뭔가 있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흐르기도 한다. 어떤 팔자는 기가 막히게 보이다가도 어떤 팔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흥분과 죄절을 밥 먹듯 하다 보면 세월이 저만치 먼저 가 손을 흔들어대며 소리친다.


'거기서 너 혼자 뭐 하고 있는 거야? '


팔자공부는 홀로 추는 춤이자 홀로 하는 싸움이다. 팔자공부는 고독을 먹고 성장하며 가끔은 딴 세상 사람처럼 이 세상 사람들이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세상 사람들이 환호하는 일에는 무심하여 공감능력을 의심받기도 한다. 대신에 긴 겨울 한파를 견뎌내고 새싹을 삐죽 올린 나무에게는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격하게 감격한다.

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사계절의 변화도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아 남모르게 전율한다.


만물 특히 살아있는 생명체는 특유의 기운이 있다. 새와 같은 조류는 오행 중 火기운이 많아 날 수 있고 물속에 사는 물고기는 당연히 水 기운이 많다.  인간은 오행을 고루 갖춘 동물이라 만물의 영장이 됐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맞는지는 모르겠다.


특유의 기운을 가진 생명체는 독특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기 빨리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오면 빈 속이 채워진 것처럼 속이 든든해진다. 보이지 않는 이 독특한 기운을 읽어내는 방법이 바로 명리학이다.


명리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궁합법이다.


We have good chemistry.


궁합을 언급하면서 chemistry란 단어를 쓴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chemistry는 알다시피 화학적 성질이나 반응을 뜻하는 단어다. 궁합이란 기운과 기운의 화학적 작용을 보는 것의 다른 말이다.


궁합을 보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무슨 띠와 무슨 띠는 상극이라느니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보고 결혼한다더라 같은 속설로 내려오는 궁합법부터 문파에서 따로 비법으로 전하는 궁합법까지 있다.

선생님도 가끔은 배궁(配宮)과 띠를 조합해서 보는 궁합법을 알려주셨다. 왜 그렇게 보는 지를 물으면 이유는 모르는데 당신도 그렇게 배웠다고만 하셨다.


하지만 난 비법으로 알려 준 궁합법을 쓰지 않는다. 처음엔 열심히 외워서 써봤지만 당장 나와 내 남편사주를 적용해 봐도 맞지 않았다. 내 지인들 부부, 동서 부부 사주를 넣어봐도 신통치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팔자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 처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정확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 사주에 남편 자리가 튼실한 데다 남편을 뜻하는 글자가 팔자의 병(病)을 제거하면 궁합을 보지 않아도 남편복을 점칠 수 있다. 팔자에 남편 복이 있는 여자는 그런 남자와 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자기 팔자에 꼭 필요한 글자를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큰 아이가 만나지 몇 개월도 안된 아이(지금 며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고 싶은데 그전에 소개를 시켜주고 싶다는 것이다. 큰 아이는 까칠하고 시니컬한 구석이 있어서 여자에게 금방 정을 주는 성격이 아니다. 혹시나 해서 사주를 아느냐고 물으니 그럴 줄 알고 알아왔단다.


지금의 며느리가 된 햇살 같은 그 아이 사주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큰 아이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큰 아이 사주를 볼 때마다 丙火 하나 있으면 딱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환하게 빛나는 병인(丙寅) 일주였다. 그런데다 남편자리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 아이는 외동인데도 형제를 뜻하는 겁재가 재성을 물고 있어 재물을 지켜주는 水 기운이 나쁘지 않았는데 큰 아이는 水 기운이 강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기운과 글자를 가지고 있었다.


남녀 사이, 부부 사이에만 궁합이 있는 게 아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있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있다. 직업과 사람 간에도 궁합이 있고 하다못해 반려동물과 사람 간에도 궁합이 있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지지(地支)가 물(水) 판이라 자식궁에 있는 술토(戌土)가 팔자에서 제일 중요한 글자다. 술토는 오행으론 土에 속하지만 동물로는 개를 뜻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집 강아지 해리를 자식처럼 아낀다. 생각해 보면 해리가 그 집에 오고 나서 재물이 불기도 했다.


팔자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상대와의 궁합을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마음에 있다.

바람 한점 없는 호수처럼 마음을 고요히 한 다음 상대를 떠올리며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집중해 보라.

기분(氣分)은 계산이 아니라 직관이며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많은 걸 얘기해 준다. 왠지 느낌이 쎄했을 때의 결과가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어 편안해지는가?  번잡함이 올라오며 불안해지는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고요해지는가? 흙탕물을 휘저어 놓은것처럼 산만해지는가?

마음이 이완되어 느긋해지는가? 온몸의 신경이 까딸을 부리며 긴장하는가?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지며 느긋해진다면 좋은 인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궁합을 보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게 아마 좋은 인연을 찾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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