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ong Place Wrong Time (질리언 매캘리스터)
▶ 단서를 찾는 게 목적이 아닐지도 모르는, 젠의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
이야기는 젠의 아들 토드가 살인자가 되면서 시작된다. 그로부터 불행인지 행운인지 젠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 젠은 과거로 갈수록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되살아나고 남편에 대한 의심이 불거진다. 젠은 과거로만 가기 때문에 현재에 일어난 일들과 젠이 하는 행동의 결과는 알 수 없다. 젠이 결혼 전 연인을 만나기까지 거슬러가면서 젠은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발췌
◸"시간여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완전히 가능하죠."
"원인과 결과 때문에 시간은 오직 일직선 형태라고 하더라고요."
"시간은 그저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시간이 강물처럼 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아무도 모르죠."
그 즉시 젠은 과거의 젠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토드에게는 더더욱 미안했다. 아들과의 관계가, 이 지적인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그렇게 결론 내려버린 것이 참으로 후회되었다. 젠은 이제 비선형적인 시간, 즉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시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뒤늦은 깨달음의 역설처럼요."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죠. '난 다 알고 있었어! 이렇게요. 하지만 사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들은 똑같이 말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뇌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언제나 알고 있었던 거죠."
젠은 이 설명을 곱씹어 보며 소화하려고 애썼다. 토드는 5초 안에 자신의 범죄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너무 똑똑하다. 지금 눈앞에 선 토드는 아직 어리고 관습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도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 완벽한 상대다. 그런 사람이 바로 옆에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젠은 하루가 앞당겨질수록 자신의 모성애가 부족해서 아들 토드가 잘못된 건 아닐까? 자신을 제일 많이 자책한다. 토드와의 소중한 대화를 그냥 흘려버렸던 일, 토드의 반짝거렸던 눈동자를 못 보고 지나쳤던 일들을 기억하며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토드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총명한지를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늘 가지고 있던 죄책감은 사건의 원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아들 토드는 비록 어릴지라도 한 생명체로써 정당한 감정을 느끼고 버릴 감정은 버릴 만큼 사랑이 가득한 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발췌
◸"가끔은 어떤 일을 처음 겪을 때 감정이 그 일의 본질을 이해하는 걸 막기도 해요. 그렇지 않나요?"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그냥 서서 제 인생에 일어난 여러 일을 진실하게 온전히 목격할 겁니다. 그 일들이 결국 어떻게 될지 안다면요."
그저 지켜보는 것, 그녀의 삶과 그 모든 사소한 일들을 멀리서 목격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알아야 할 전부 인지도 모른다.
미끄러져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가 아깝게 놓치는 것들을 그리고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우리는 운 좋게 우리를 지나쳐 간 일보다는 운이 나쁘게 닥쳐온 일들만 생각한다. 앤디가 말했듯이 모든 것 아래에는 깊은 지식이 있다. 그녀는 인생을 한 번 살았고 모든 걸 놓쳤지만 그녀의 현명한 마음과 잠재의식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야기는 추리소설답게 등장인물 간의 모든 대화가 수상하고 아들은 마치 큰 범죄조직에 연루되어 있고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범인을 얼른 찾고 싶은 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범인 찾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서서히 느끼게 된다. 읽어갈수록 단서를 찾는 게 목적이 아닌 젠의 과거로의 여행에 동참하며 젠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엄마, 딸, 연인, 아내였던 젠의 감정에 동화하게 된다. 자식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 임종 전의 아버지를 만난 벅찬 마음, 연인에서 남편이 되는 그와의 사랑까지 깊게 느낄 수 있다.
스릴러보다는 사랑이야기에 가깝다.(스릴과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심하게 탓하게 된다. 하필 내가 왜 그 시간에 거기에 갔을까? 내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나 때문에... 이런 자책들. 반대로, 너만 아니면 난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어. 너만 아니면.... 이런 생각들.
너와 나의 잘못을 탓하다가 허비하는 시간이 많다. 정작 그 시간 속으로,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내가 했던 생각과 전혀 다름을 느낄 때가 있다. 겉으로 보는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은 내 눈으로 판단했을 때 많이 왜곡돼 있고 그로 인해 마음에 미리 벽을 치게 된다. 어느 순간은 그 벽이 허물어지다가도 쌓여있는 감정을 완전히 털어버린 게 아니어서 또다시 관성적으로 반복되는 감정이 나오게 되고 그것을 완전히 풀지 못하면 그 사람과 편한 관계를 꾸준하게 유지하기는 힘들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부딪히고 깊은 속을 드러냄으로써 서로 마음이 툭 허물어지고 하나로 통할 때 가식의 껍데기를 깰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그래서 힘들다. 그 껍데기를 진짜로 알고 오랫동안 살아가다 보면 결국 허비한 시간들로 후회만 남는다.
젠의 남편이 처음부터 사실을 말했더라면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런 결과에 이르렀기 때문에 진실한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은 변화를 추구하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들의 살인은 그녀가 늘 죄책감처럼 달고 살았던 부족한 모성애가 원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젠의 시간 여행은 그녀가 지나쳤던 빛나는 사소한 순간을 다시 살게 되었고 몰랐던 사랑을 더 깊게 깨닫게 해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살인자가 된 원인은 자신의 모성애가 부족해서 잘 못 키운 탓이라고 젠은 생각했지만 사실, 아들은 가족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 이에 뒤늦은 깨달음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랑 때문이라고 하기엔 결과가 너무 처참하다.
만약 젠처럼 시간여행을 한다면 난 어느 시간으로 가게 될까? 나의 아들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남편이 범죄조직에 가담돼있지도 않다. 그것에 비하면 난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이 평범한 일상은 전쟁 같은 일상을 겪고 난 후 다다른 결과이므로 이 평범함은 아주 소중하다. 그 소중함을 젠이 일깨워주었다.
또한 많은 부분을 차지한 젠의 모성에 대한 언급은 엄마라면 모두 공감될 것이다. 엄마이기 때문에 원죄처럼 가지고 있는 죄책감은 오히려 자식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못해줬기 때문에 더 잘해주려 하고 간섭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20대인 자식이 겪는 지금과 내가 20대에 겪었던 그때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식의 마음속이 텅 빈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꽉 차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든, 아니면 지금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이건, 일에 관한 것이든 그렇게 뭔가를 생각하고 버리고 보태는 과정이 절대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더 살았다고 해서, 엄마라고 해서 다 맞는 게 아니듯이 인생이 딱 맞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님을 스스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또 인생의 맛 아니겠는가!
자식의 미래가 불 보듯 뻔해서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내 가슴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두고 볼 수밖에. 내 곁에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손을 쓸 수 없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훗날 분명히 후회할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때 딱 젠처럼 시간여행자가 되면 좋겠다. 아들의 말랑한 손을 다시 만져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가 만약 잠을 자고 난 후 과거로 돌아와 있다면 어떨까? 어떤 기분일까? 이미 결과를 아는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뭐부터 시작할까?
과거로만 갈 수 있으므로 오늘 내가 굳이 애써 뭘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물리적으로 가깝고 심리적으로는 아주 먼 거리의 아들과 놓치고 지나친 아주 사소하지만 빛나는 순간을 잘 포착해서 비었던 순간을 꽉 차게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내가 미처 못 봤던 반짝이는 아들의 두 눈동자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젠처럼.
뒤늦은 깨달음의 역설을 뒤엎어버릴 정도로 아주 참신한 결과가 여행 마지막 다음 날 대기하고 있다면 좋겠다. 합리화도 못할 만큼. 상상도 못 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