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小寒)

by 개울건너


아침에 일어나 농막 창 너머로 밖을 보니 하늘이 축축하다.

남편이 말했다. 하늘이 내려앉게 생겼다고.


우리는 매장에 내기 위해 말린 무시래기를 줄에서 빼내 상자에 담아 탁자 위로 옮겼다.

나는 그것을 조금씩 손아귀로 잡아 야채 저울 위에 조심스레 올려 계량해서 그의 앞에 놓아주고, 그는 투명 비닐 포장봉지 안으로 그것을 넣었다.


봉지가 너무 좁아 잘 들어가지 않는 시래기를 그는 잎사귀 쪽부터 넣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줄기 쪽부터 넣으면 더 쉬울 텐데 일을 사서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불평했고, 그는 잎 쪽부터 넣어 포장해야 매 대에 진열했을 때 더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지난가을에 넓은 매장용 비닐을 사두지 않은 걸 후회했으나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농사철이 아니어서 농협에서 판매를 하지 않고 있으니.


몇 봉지 째 좁은 비닐에 넣느라 애를 먹던 그가 그예 성질이 났다.

시래기 잡고 있던 손을 푸닥닥 거리며 위아래로 마구 흔들어버려 봉지 입구가 찢어지고 잎사귀들이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며 탁자로 떨어졌다.



그가 기운 없이 병원에 누워 있던 작년 며칠의 상황보다는 기운이 나서 이렇게 푸닥닥 성질부리는 지금이 차라리 고마운 상황일까.

나는 그의 손에서 봉지를 뺏으며 말했다. 나 혼자 하는 게 낫지, 당신은 여기에 손대지 말라고, 이깟 시래기가 뭐라고 이 아침에 온 기분을 다 망치고 있느냐고,


봉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담겨있는 시래기 상자와 저울 등을 다 내려 바닥 한 편으로 치우는데 옆 밭 남자가 인기척을 내며 들어왔다.


그의 아내 김 여사는 감기가 심해 나오지 못하고 그만 혼자 왔다고 했다.

나이 들면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커지나 보다.

그는 탁자 의자에 앉자마자 자기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동창 모임까지 회장을 맡은 지 오래됐는데 동창들이 계속 맡아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맡아야겠단다. 동네 탁구 모임에서도 회장을 맡아달라고 하는데 고민 중이라고 하는 말 역시 자랑으로 들렸다.

내어준 커피와 찐 계란을 먹으면서 그가 또 말했다. 계란은 완전식품이긴 해도 감과는 상극이어서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나는 그것을 기억해 두고 계란과 감을 같이 먹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며 홧김에 치워두었던 시래기뭉치를 꺼내 이미 넣어놓은 몇 개의 봉지 입구를 실끈으로 묶었다.


남편은 몇 개 더 까서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앞 접시에 올려주고 다 마시고 비어있는 그의 커피 잔에 뜨거운 보리차를 따라주었다.


그는 어느새 화제를 정치 쪽으로 옮겨 열을 올렸다.

나라를 생각하면 걱정이 돼서 잠도 안 온다고. 정치인들도 한심하다고.

그 앞 자락으로 계란 입자가 조금씩 떨어졌다.


자랑도 흥분도 끝이 나게 마련이다.

나라는 어지럽지만 이런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김 여사 감기가 회복되는 대로 신년회 같이 하자고 말하며 그가 일어났다.




그를 배웅하고 들어온 남편이 그가 점점 아이 같아진다고 말했다.

나는 최 사장이 남기고 간 종이컵과 빈 접시를 치웠다.

남편은 시래기 상자를 탁자 위에 다시 올려놓고 나머지 작업을 시작했다. 줄기 쪽을 먼저 봉지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나는 그가 간신히 밀어 넣어 놓은 봉지 입구를 끈으로 묶어 바구니에 담았다.


작업을 마친 후 그는 비닐하우스에 널어놓은 건 아직도 안 말랐더라고, 포장해 둔 시래기가 걸려있던 농막 안의 빈 줄로 옮겨야겠다며 비닐하우스로 가서 바구니에 담아 가져와 걸었다.

난롯불로 따뜻한 이곳으로 옮겼으니 이제 또 금방 마르겠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와 내가 이만큼의 기운이 있는 한 이만큼의 다툼과 우회적 화해는 계속될 것이고, 서서히 기운이 쇠해 가며 다툼도 쇠해 가리라. 그러다가 종내에는 미세한 갈등조차도 없는 먼 먼 곳으로 사라지리라.

그도 나도.


소한(小寒) 절기에 눈이 푸짐히 쏟아지고 있다.


오는 가을엔 시래기용 무를 많이 심고 넓고 긴 봉지도 넉넉히 준비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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