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절제력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낮술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래된 기억을 기어이 꺼내어 들추는 추억팔이를 경계해야 하고 삶의 고됨을 안주삼아 한없이 자책하는 감성팔이도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옛날 말 틀린 거 하나 없듯이 아무 결의 없이 달려들다가는 한순간에 부모도 몰라보는 불효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혹시라도 나는 괜찮다는 생각에 무언(無言)을 규칙을 어기고 선을 넘었다가 다른 프로 낮술러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낮술은 그런 것이다. 감내하고 받아들이고 다 내어준 상태에서 그저 아쉽지만 그 쓴 맛 한 모금 넘기는 게 그저 낙이라면 낙인 것이다. 그 한잔 술에 당신의 진심이 어떤 술에 대한 예찬론보다도 담백하고 책임감 있어 보인다.
낮술은 밤술과는 분명히 다르다. 상당히 반항적이고 방탕하게 보이지만 상대에 집중하기보단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시간에 쫓기기보단 시간을 즐길 수 있고 귀를 닫고 입을 여는 술자리 보다 입을 닫고 눈과 귀를 여는데 더 능숙해지는 시간임을 느낄 수 있다. 애초에 술을 불신하는 사람이라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더 불신만 쌓일 테니까. 그냥 아는 사람만 아는 위화감 가득한 글이라고 치부했으면 한다. 세상에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해가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한 마디로 애들은 가라~)
요즘엔 아무래도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낮술 자리를 갖기는 쉽지 않다. 있다 해도 실행에 옮기는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빈도 자체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런데 주말에 실컷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두 아이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나에게 쏟아내고 그에 따른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닷없이 이른 시간에 곯아떨어지는 작은 설렘을 선사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기적처럼 나에게 아직 실낱같은 체력이 남아있음을 감지하고 아내와 함께 낮술을 하는 날이 가끔 있다.
그 시간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다. 조용하지도 않고, 심지어 창문을 열어 놓으면 차 다니는 소리,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까지 전부 들리는 시간이지만 서로의 말에 더 집중하고 서로가 가진 생각에 더 집중한다.
그렇게 한참을 재잘거리다가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고 밖을 보니 아직 못다 진 노을이 예쁘다.
아마 노을은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는 것 같다.
낮술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