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성 May 27. 2023

술이 당기는 이유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 – 탈무드 中 -     




대학교 때 동아리 회장을 맡은 적이 있었다. 전통 있는 공대 학술동아리였다. 전공 스터디를 진행하고 배운 것을 토론하며 진로에 대해 탐색도 하는 그런 동아리였다.(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그러나 전통 있는 ‘술’ 동아리 이기도 했다. 학‘술’ 동아리에 술 좋아하는 회장까지 들어앉았으니 전통은 더욱 널리 퍼졌을 것이고 그 기세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졸업한 선배, 후배, 동기들 할거 없이 동아리 세력(勢力)은 넓어졌고 주력(酒力) 역시 극에 달했다.


공식적인 행사 이외에도 크고 작은 소모임을 자주 만들었다. 그곳에서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친화의 도구였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강압적인 분위기로 억지로 술을 마시고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나는 사건사고 속의 젊은이들의 술자리를 혹시라도 걱정한다면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술쟁이 곁에는 술쟁이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술쟁이는 그 자리를 해치는 일체의 어떠한 행위도 혐오한다.

      

동아리를 운영하며 있었던 일이다.

신입생 한 명이 동아리방(동방)에서 쭈뼛쭈뼛하며 공강시간에 전공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동방에 들러 컴퓨터를 하다가 처음 보는 신입생을 보고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 신입생이야?
신입생: 네
나: 근데 동기들이랑 술 안 마시고 뭐 하고 있어?(대낮이었다)
신입생: 시간이 남아서 책 좀 보고 있으려고요
나: 아. 술 좋아해?
신입생: 아뇨, 잘 마시지 못해서... 그리고 대학 가서 술 권하는 사람들 조심하라고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호호호호
나: 아... 진짜? 그럼 나가. 나는 술 안 좋아하는 신입회원 필요 없어
신입생: ...................;;;;
동방에 있던 후배들: 왜 저래... 오빠(형)! 적당히 해~!     


그 친구는 4년 후 훌륭한 곳에 취업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동아리의 온갖 술자리에 참석하며 자신만의 내공을 키웠다.      


술을 마시는 사람만이 인생을 안다는 둥, 삶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되지도 않는 주정뱅이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려고 애쓴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 정답을 못 찾아서 술로써 풀어내려는 사람들과의 자리는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자기 발에 잘 맞는 운동화 같은 느낌이다. 맨발로 걷다가 잘 맞아떨어지는 운동화를 신어보면 얼마나 느낌이 좋은지 알게 된다. 운동화의 기능성을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술자리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다른 의미들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딱 운동화 본래의 느낌만을 비유하고 싶다. 몸에 잘 맞는 운동화. 혹은 비싸진 않지만 착 맞아떨어지는 옷장 속에 하나정도 있는 옷 같은 느낌 말이다.

입으면 편해서 오래되도 딱히 버리기 싫은. 그런 모든 것들.      


술과 관련하여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동안 술로 이어진 나쁘지 않았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술로 이어진 인연 술로 끝나고, 돈으로 맺은 인연 돈 때문에 쫑난다는 부정 가득한 말이 꼭 그렇지 만도 않다고 느낀 게 오래갈 것 같았던, 질긴 술쟁이들의 인연도 먹고 사는 것보다 앞서지 않고, 가정의 평화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면서 다행이자 약간의 아쉬운 감정이 복잡하게 섞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래도.

그러니까.

술은 여전히 당긴다.

이전 05화 쓴술 - 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