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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19. 2024

인간의 존엄할 권리 (1)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아침부터 기상 알람소리는 엄청나게 컸다. 타악기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지만 형석은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알람은 혼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석은 그 음악에 전혀 반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알람과 형석의 대결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아침이 그러하듯이 알람과 ‘5분이라도 더 자겠다’는 의지가 기싸움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둥!”


드럼소리로 무장한 알람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젠장. 일어나기 싫다고!”


그러나 현실은 형석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웠다. 의사도 직장인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오늘 하루쯤은 직장을 쉬고 싶단 말이야’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두두둥! 두두둥! 두두둥!”


결국엔 알람의 집요함이 형석을 일으켜 세웠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대로 계셔야만 해요.”


간호사의 말에도 여자 환자는 고통이 심해서인지 몸을 흔들었다.


“아아. 아프다고요! 젠장. 너무 아파요!”


“출혈이 심해요.”


칼에 찔린 환자라서 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형석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가위를 움켜잡은 형석은 우선 혈압을 체크했다. 역시나 상태가 안 좋았다. 혈압은 급속도로 떨어져서 72/43인 상태였고, 맥박은 너무 약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경우에는 혈액형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O형 혈액을 최대한 빠르게 투입해주세요. 그리고 강철 선배 좀 불러요.”


“강철 선생님은 옆방에 있어요.”


그 말은 결국 칼에 찔린 환자가 두 명이란 소리였다. 사실 두 사람이 서로 난투극을 벌였던 건지, 아니면 두 사람 모두 피해자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형석은 형사가 아니라 의사였다. 그저 환자를 치료하는 일만 허락된 상황이었다.



‘이거 찬 난감할 노릇이군.’


형석은 아무래도 외과의사를 옆에 두면 자신이 실수를 할 가능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항상 강철 선배나 은경 선배를 옆에 두고 싶어했다. 아니 다른 외과의사, 아니 꼭 외과의사가 아니더라도 같은 과 민정 선배라도 있으면 안심이 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원하는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혼자서 해내야 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한편 옆방에서는 강철 선배가 30대의 남자 환자를 살펴보고 있었다.


“일단 CT부터 찍어봅시다. 아무래도 은경이가 필요한데. 간호사 선생님, 은경 선생님 어딨어요?”


“아마 진료중이실 건데요.”


“아, 좀 불러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조력자가 필요한 건 천하의 강철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강철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아픈데… 혹시 저 이대로 죽는 건가요, 선생님?”


“그건 절대로 아닐 겁니다. 걱정마시고 힘내세요”


강철은 남자 환자를 안심시켰다.


“일단은 뭔가에 찔렸던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파상풍 주사를 놓을 겁니다. 그 다음에 CT를 촬영하러 방사선과에 가실 거고요.”


선홍빛의 피가 철철 넘치는 수술실에서 이런 차분한 설명이 환자의 귀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다.


“뭐라고요? 방사선에 노출이 된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방사선 촬영을 한다고요. CT 촬영이요.”


때마침 은경이 수술실로 들어왔다. 강철은 구원을 얻은 느낌이었다. 혼자로서는 아무래도 벅찬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서야, 형석은 여전히 남아있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근데 말이에요. 그 칼부림 환자들 서로 찌른 건가요?”


형석은 궁금해서 강철에게 살짝 물었다.


“무슨 소리야. 다 따로따로 온 경우라고.”


“네에?”


“너 무슨 상상을 한 거냐? 부부싸움 하다가 칼부림이라도 생겼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 그게…”


“너도 참.”


“아니, 제 생각이 더 일반적이지 않나요?”


“글쎄다. 뭐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말이야. 세상일은 진짜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강철 선배는 뭐 저런 멋진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한단 말인가, 형석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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