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할 권리
병원에서 꼭 챙겨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질병의 치료이고, 또 하나는 사람의 감정이다. 처음에 병원에 들어왔을 때 형석이 질병의 치료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만으로 병원의 모든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을 봐야한다.”
강철 선생이 어느 날 강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을 때, 형석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그의 어깨에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가 겪어야하는 일이라는 걸 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형석은 고집이 절개를 조치한 말기암 환자의 가족을 만났다.
“아무래도 입원을 하셔야할 거 같군요.”
환자는 전형적인 식도암이었다. 식도 입구를 넓히기 위해 여러 가지 치료를 했던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 경우에는 영양 공급을 위해서 튜브를 이용하는 방법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 이야기는?”
“네, 삽관을 실시하고 이제는 입으로 식사를 하기 어려울 거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죠? 암이 낫는 게 아니잖아요?”
형석은 이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환자의 가족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요즘은 의학정보도 검색만으로도 많이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에, 환자 가족들의 질문도 상당히 전문적이고 의외의 질문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건 환자를 너무 고통스럽게 하는 거 아닌가요? 존엄한 삶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환자의 가족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혹시 연명치료를 거부하신다는 뜻인가요?”
“네 실은 그 서류를 작성하려고 부탁드리러 온 거에요.”
환자의 가족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인간이 인간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형석은 그 경계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형석이 만약 자신이 이 환자라면 연명치료 거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최악의 경우에는 인간적인 삶이 없는 비루하고 지옥 같은 삶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죽음보다도 가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