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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Oct 17. 2023

외할머니 고향 요도가와

2013. 8. 3.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며칠 지나서야 그 소식을 아버지를 통해 들었다. 엄마께서 내가 신경 쓸까 봐 일부러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나는 조부모님과는 친분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6남매 중 막내이시고, 엄마께서도 7남매 중 다섯째이셔서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께서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시골에 계셔서 자주 뵙지 못했었고, 외할머니께서는 대구에 계셨지만 별로 친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께서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셨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어렸을 때 오사카에서 사시다가 한국으로 건너오셨다고 한다. 내가 생각한 외할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전형적인 정겨운 할머니상은 아니었다. 한자를 많이 아시 서예를 하셔서 그런지(?) 근엄한 느낌이었다. 외할머니는 성함도 ‘정혜분’이라서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 시대에 태어난 다른 할머니들 성함에 비하면 세련된 편이었다.

  외할머니와 친하진 않았지만 외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외할머니께서 요양원에 계실 때 공책을 사다 드린 적이 있다. 그때도 친하진 않았기에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가서 엄마를 통해 공책을 대신 전해 드린 뒤 멀찍이 서 있었는데, 누가 사 왔냐 물으시더니 나를 보며 잘 사 왔다고 하셨다. 나는 거기에 외할머니 인생에 대해 써 주시면 좋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됐는데 아무 말도 안 했었다.

  두 달 전쯤 엄마께서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 사진과 함께, 외할머니께서 어렸을 때 사셨던 오사카 집 주소를 적은 종이도 사진으로 보내준 적이 있었다. 다시 한번 오사카에 와보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때 옛날 주소라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거길 한번 찾아가서 사진이라도 보여드릴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외할머니께서 어렸을 때 사셨던 오사카 집 주소를 적은 종이

  그래서 혼자 그 주소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외할머니께서 적으신 주소의 동네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리고 그 주변 구약소를 세 군데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옛날 주소라 행정구역명이 바뀌어서 어딘지 모르겠다, 찾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주소이니 그럴 만했다. 마지막으로 간 구약소 공무원이 종이에 적힌 옛날 주소가 지금쯤 위치가 대략 어디쯤 일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공무원이 알려준 위치로 찾아갔는데 새 아파트와 놀이터가 있었고 강이 있었다.

  오사카는 크게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내가 사는 모모다니는 남부이고 할머니께서 사셨던 우메다는 북부인데, 북부는 부자 동네이다. 회사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북쪽은 잘 사는 동네이고, 남쪽으로 갈수록 치안이 좋지 않은 편이라고 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강 주변에서 혼자 풍경 사진을 찍었다. 멀리서 자전거를 탄 고등학생들이 줄지어 가고 있었는데,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는 한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지나갔다.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줄지어 가고 있다.
학생들이 멀리서 사진 찍는 나를 향해 V자를 그리며 갔다.
학생들이 멀리서 사진 찍는 나를 향해 V자를 그리며 갔다.
내가 타고 온 자전거(일본에서 생활하려면 자전거가 필수인데, 게스트하우스 유엔에 머물렀던 한 일본인 아저씨께서 세계 여행을 떠나며 타던 자전거를 내게 선물로 주고 가신 것이다.)
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문인화가 우리집 거실 벽에 걸려 있다.


  일본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술을 마시는 건 음주운전이라 불법인데,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츄하이(과일주, 호로요이 다음으로 인기가 많다.)를 무심결에 마시면서 가다가 맞은편에서 경찰이랑 마주쳤다. 경찰은 나를 보더니 "다메데쇼~(だめでしょう,  되지요~)" 하고는 봐주겠다는 듯 나를 지나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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