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0.
록음악을 좋아해서 일본에는 록페스티벌이 없나 알아보다가 서머소닉록페스티벌을 알게 되었다. 일본 4대 록페스티벌 중 하나로 2000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록페스티벌은 부산국제록페스티벌로 이 또한 2000년부터 시작됐다.
나는 부산락페를 떠올렸다. 처음 락페를 갔던 건 대학 1학년 때 선배들과 갔던 것이다. 지금은 계절도 여름이 아닌 가을로, 장소도 바닷가가 아닌 잔디 광장으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여름에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락페가 열렸는데, 기타를 메고 와서 모래사장에 텐트를 쳐 놓고 밤 새던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그 이후로 부산 락페를 매년 갔던 건 아니지만, 대학 때 아싸였기 때문에 연락하고 지내는 몇 안 되는 동기 중 하나와, 누가 봐도 모범생인 고등학교 친구와, 인터넷에 락페 같이 갈 사람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학원 보충을 빼 먹고 왔다던 부산 사는 잘생긴 고등학생과 다녀왔다.
락페가 끝나고 좌석이 없어 입석을 끊고 기차를 탔을 때 나와 비슷한 상태의 사람들, 살수차가 뿌려주는 물을 맞아 머리카락과 옷이 덜 마른 채로, 바닷모래가 몸에 덕지덕지 붙은 채로 통로에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과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기차에 탄 게 아니라 실려 가듯 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방송을 못 들어 대구역을 지나쳤을까 싶어 미어캣이 됐을 때, 몇몇 사람들 시선이 나를 향하더니 내가 묻기도 전에 대구역은 다음이라고 알려주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렸다.
어쨌든 서머소닉록페스티벌에 대해 알아보니 올해 라인업에 내가 좋아하는 밴드 ‘뮤즈’가 있었다.
‘뮤즈라니!’
나는 무조건 가기로 마음먹고 같이 갈 사람을 구했다. 유엔 스텝의 허락을 받아 유엔에 서머소닉 같이 갈 사람을 구한다는 벽보를 붙였다. 그런데 록음악을 좋아하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고, 1만3천 엔이라는 비싼 요금 때문인지 선뜻 같이 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또 썸머소닉을 간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서로 가고자하는 날짜가 달랐다. 그러던 중에 마오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서머소닉 당일 마오와 함께 전철을 타고 내렸는데 전철역 안에 사람이 빈틈없이 가득 차서 천천히 이동해야 했다.
‘사람 너무 많아!’
전철역을 나와서도 공연장으로 이동하기까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몇 시간을 줄을 서서 이동했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몇 시간을 아스팔트 위에서 기다린 건 중학교 때 에쵸티 보려고 기다린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마오는 마른 체형인데 그날따라 더 힘들어 보였다.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공연장에 입장했고, 마오와 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연장은 전철역 안을 가득 메웠던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잔디밭이었다. 마오와 나는 무대와는 멀리 떨어져 잔디밭 아무 곳에나 자리 잡고 앉았다.
뮤즈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밴드답게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뮤즈가 등장하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 나갔던 것 같다.
피아라는 밴드를 좋아해서 그들의 공연을 몇 번 쫓아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 공연에서 그 날도 찌질한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어쩌다보니 무대 맨 앞에 서게 됐다. 그 때 내 눈 앞에 보컬이 허리 숙여 열창하고 있었는데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 보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던 적이 있다. 뮤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는 못했다. 그래도 CD, MP3로 노래만 듣다가 실제 공연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마오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마오를 찾을 수 없었고 휴대폰 배터리도 다 돼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다음날 마오가 내가 갑자기 텐션 올라서 뛰쳐나가는 바람에 나를 못 찾았다고 했다.
마오가 좋아하는 아이돌그룹의 콘서트를 나라면 같이 가줄 수 있었을까? 마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