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어떤 날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질문을 붙들고 살아왔는지
생각한다.
답을 얻기 위해서였을까.
아니, 사실은 그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답이 없는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늘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어 했지만, 삶은 좀처럼 정리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마음은 예고 없이 흔들렸고,
관계는 말 한마디로 미묘하게 달라졌고,
일은 끝을 냈다고 생각해도
또 다른 이름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처음에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질문의 밤은 더 선명해졌고, 조용한 시간엔 더 크게 울렸다.
- 나는 왜 이러지?
- 나는 왜 늘 불안하지?
- 나는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지?
질문은 내 약함을 확인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질문 자체를 무시하고 싶었다.
의심이 사라지면, 마음도 편해질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질문을 없애는 일이야말로
내게 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질문은 내가 특별히 예민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어서 생기는 것이었다.
사랑을 했으니 상처를 묻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으니 고독을 묻고,
누군가의 리듬에 맞추려 하자 내 리듬의 자취를 묻게 되었다.
질문은 늘 내 삶의 뒤편에서 생겨났고,
그 생겨남 자체가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지나왔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잃어가는 감각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일하는 동안 사라져 가던 내 시간의 감각,
관계 속에서 흐려지던 감정의 윤곽,
말보다 글을 택해야만 했던 이유.
그것들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나왔다.
-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존재하는가.
말은 너무 빠르고 관계는 너무 민감해서,
내 감정은 그 안에서 자주 형태를 잃곤 했다.
그러나 글은 조금 느렸고,
그래서 안전하게 나를 숨기는 방패가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견뎠는지,
내가 어디에서 멈칫했는지를 천천히 드러내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관계 속에서는 결국 말이 필요했고,
말보다 먼저 ‘감정’을 인정해야 했다.
감정을 설명 가능한 형태로 바꾸기 전에,
그 감정이 내 안에서 어떤 색으로 존재하는지부터 바라보는 일.
어느덧 그 연습이
나만의 형태를 빚어내는 일에 일조하고 있었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일 자체가 아니라,
일하는 동안 사라져 가던 나의 감각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확신은 없다.
무엇이 정답인지,
어떤 방식이 오래갈지,
내가 원하는 삶을 끝내 만들어낼 수 있을지.
다만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나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것.
그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나를 부족하다고 느끼게 했던 것들.
나는 오래도록 그것들을 ‘고쳐야 할 것’으로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결핍은 나를 작게 만들기만 한 게 아니라,
나를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무엇이 나를 숨게 했는지,
무엇이 나를 다시 일으켰는지.
결핍은 내게 질문을 남겼고,
그 질문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질문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질문이 사라져야 안정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쪽이 내게는 더 자연스럽다.
답을 내리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은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조금 더 천천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
단지, 나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비슷한 질문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일에 대해,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누군가는 질문이 많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미숙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질문을 다르게 본다.
질문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러 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묻는다.
다만 예전처럼 결론을 재촉하지는 않는다.
한 번에 완성되려 하지도 않는다.
오늘의 나를 오늘만큼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조용히 허락해 본다.
삶은 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나에게 가까워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