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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Nov 08. 2023

흙 찾으러 가자!

깜박깜박 ADHD엄마라서

우리 가족은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로 이사를 갔다.

시골 까지는 아니지만 대구 끝자락에 붙어있는 동네로 우리 아파트를 기점으로 그다음부터는 쭉 산과 들이 나온다. 예로부터 골짜기가 깊고 아름다운 곳이라 이름도 무려 무릉도원에서 유래된 '도원동'이라는 곳이다.


우선 나는 사실 크게 자연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다. 도리어 어릴 때부터 도시 중심지에서 쭉 나고 자라 흙보다 시멘트 바닥이 더 편한 뼛속까지 도시인이었다. (자연은 한 번씩 사진으로 보거나 차 타고 갈 때 창밖 풍경으로 구경만 해도 충분한~)

그런데 왜 갑자기 애들이랑 남편을 끌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고자 했냐 하면..

아이를 낳아 한 3년 정도 끼고 키우다 보니 딱!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뭐냐 하면 나는 엄마인 사람이 꼭 갖추어야 할 필요충분조건 중 첫 번째 항목인 '품어주기'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

꼭 내가 엄마일 때뿐 아니라 나와 다른 성인과의 관계에서도 이 능력이 있으면 나도 상대도 편하다. 그런데 봄에 새싹 돋아나듯 폭! 폭! 자라는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는 어린 생명들이 마음 놓고 피어날 수 있도록 주양육자가 보드라운 흙처럼 품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뿌리가 이리 삐죽~ 저리 삐죽~ 마음껏 자기 생긴 모양대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그런데.. 품. 어. 주. 다. 네 글자 말이 쉽지 솔직히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부분이었다. 기질적으로 솜처럼 포근하고 부드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엄마인 내가 덜 커서 아직도 이리저리 삐죽삐죽 자라는 중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타인을 지켜보고,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는 것에 나는 거의 젬병인 거다.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이뻐하는 것이랑 품어주는 것이랑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


그럼에도 그나마 참 다행인 부분은 내가 빨리 알아채고, 바로 실행한다는 점이다.

특히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님의 위대한 말씀을 잘 새겨듣고 내 꼴을 재빨리 눈치채고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나의 성향이나 기질을 바꾸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가능하다 하더라고 일 년에 한 방울씩 평생이 걸릴 텐데. 그럼 우리 애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쯤에나 겨우 "아이고~~ 우리 엄마,

100살쯤 되시니 이제 쬐~끔 푸근해졌네!" 할 텐데.

주양육자인 내게 부족한 부분을 아이들에게 채워줄 무언가가 무얼까? 아빠도 할머니들도 물론 나보다는 훨씬 푸근한 사람들이지만 아이들을 온종일 매일같이 상대하는 건 나였다.


그럼 나 대신 한결 같이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건 뭘까? 새싹 같은 우리 애들을...

그래! 흙!!

진. 짜. 흙 찾으러 가자!!!!!!! 

그래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한 발짝만 밖으로 나서면 보들보들 흙과 살랑살랑 초록잎들과 찰랑찰랑 호수가 있는 곳, 수많은 나무들이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 여름의 쨍한 햇빛도 겨울의 시린 바람도 맞으며 자라는 곳,

모든 것이 살아있어서 조금씩 계속 바뀌면서도, 늘 변치 않고 모든 생명들을 품어주는 숲이 있는… 이곳 '도원동'으로.


우리는 날씨만 괜찮으면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꼬물이 손 잡고, 말랑이 유모차에 간식이랑 물이랑 싣고 산이랑 개울이랑 여기저기 쏘다니며 다니다가 해 질 무렵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셋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꼬질꼬질 똥강아지처럼 되어서~




날씨가 좋으니 육아도 좋다.

9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어느 가을날

아침기온 20도, 오후기온 26도, 습도 30%,

미세먼지 20, 초미세먼지 10

대......................................................... 박!

유치원 마치고 공원에 스쿠터 끌고 나와서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데,

꼬물이랑 말랑이는 집에서 인형 하나씩 가지고 나와 자기들끼리 무슨무슨 놀이를 하면서 잘~논다.

나뭇가지랑 풀이랑 돌이랑 내 고무슬리퍼만 갖고도 2시간쯤 거뜬하다.

모기들이 한 번씩 귀찮게도 하지만 뭐 이쯤이야.

뭐든지 과잉이 되기 쉬운 요즘

미니멀 육아를 실천하기 가장 좋은 곳은

장난감도 책도 미술도구도 과자도 없는 바깥인 듯.

뭐가 있어야 어지르지 ㅋㅋ

요즘은 가을이 짧아져서 아깝네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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