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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지켜라.

by 또 다른세상

그동안 나는 암 병원 2층 종양내과에서만 머물렀다. 방사선과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하 1층, 편의점 옆에 자리한 방사선과를 오가며 스쳐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왠지 ‘특별한 사람들’ 같았다.


이제는 그 특별함이 나에게로 왔다.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곳이었지만, 막상 내가 그 안에 있으니 비로소 느껴진다.


수술 후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방사선과 진료 예약이 잡혔다. 내 경우에는 총 16번의 방사선 치료가 예정돼 있다. 교수님은 방사선이 끝난 뒤 3주쯤 지나면 목과 가슴, 겨드랑이가 모두 검게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는 평일에만 가능했고, 마침 10월 초 연휴가 끼어 있어 거의 한 달 동안 ‘출근’하듯 다니게 될 것 같았다.


우선 ‘방사선 모의치료’라는 절차부터 예약됐다.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치료 기간 내내 동일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표식과 기구를 만드는 과정이다.


자세를 표시하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유성펜으로 선을 그리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이는 방식. 치료가 끝날 때까지 표시가 지워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전신 샤워가 어렵다.


둘째, 약 15개의 점 문신을 새기는 방식. 문신 시 통증이 있을 수 있고, 흔적이 오래 남을 수 있지만 치료 중 자유롭게 샤워할 수 있다.


셋째, 특수 카메라를 이용해 자동으로 자세를 인식하는 첨단 기법. 몸에 별도의 표시가 필요 없고 자유롭게 샤워할 수 있지만, 비용이 높다.


나는 첫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CT 촬영을 위해 상의를 벗고 누웠다. 양팔을 만세하듯 올려야 했는데, 왼쪽 겨드랑이가 당기며 통증이 왔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팔을 들어 올렸다. 겨우 자세를 취하자 간호사가 앞으로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윽고 가슴 위로 유성펜이 ‘쓱쓱’ 지나갔다. 내 몸이 도화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양쪽 모두 그려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표시된 교차선 위로 테이프가 붙었다. CT 촬영이 끝난 뒤에는 교차된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기록한다고 했다.


이렇게 방사선 치료를 위한 사전 준비가 마무리됐다. “수고하셨어요.” 간호사의 말과 함께 안내를 받으며 나오는데, 첫 방사선 치료 시간이 밤 11시 50분이라고 알려 주었다. 시간 변동이 있으면 미리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잘 받으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 시간, 친구는 트로델비 항암을 맞고 있었다. 네 시간 동안 투여받는다고 했다. “뭐 먹었어?”라는 내 질문에 “김밥”이라고 답했다. 살아가면서 특별한 음식을 먹을 일도 없고, 암 진단을 받았다고 특별한 걸 먹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친구에게 “잘했어, 뭐든 먹고 보자”라고 농담했다.


나는 친구에게 “나 오늘 도화지가 됐어. 예쁜 그림도 그리고 테이프까지 붙이고 집에 간다”고 말했다. 친구는 웃으며 “그림 잘 지켜라”라고 했다.


나는 대꾸했다. “우리가 가슴은 잘 지키지 못하고 그림을 지켜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방구냐?”
그리곤 둘 다 한참 웃었다.



‘트로델비’ ChatGPT에게 묻다.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준 약이 바로 트로델비입니다. 트로델비는 항체와 강력한 항암제를 하나로 묶은 ‘항체-약물 접합체(ADC)’입니다. 암세포 표면에 많이 나타나는 Trop-2 단백질을 정확히 찾아가서 결합한 뒤, 내부로 독성 항암 물질인 SN-38을 전달합니다. 이 SN-38은 기존 항암제 이리노테칸의 활성 대사체로, 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을 강하게 억제해 암세포를 죽이는 힘을 가집니다.


이 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전이된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게 생존기간과 반응률을 유의미하게 늘려주었다는 임상결과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3상 임상시험(ASCENT)에서는 표준 항암제 대비 무진행생존기간이 약 3배, 전체생존기간도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치료가 점점 한계에 부딪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셈입니다.


트로델비의 투여는 3주를 한 주기로, 1주차와 2주차에 정맥으로 주입합니다. 고용량 항암제인 만큼 **호중구 감소증(백혈구 감소)**이나 설사, 피로, 탈모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정기적인 혈액검사와 증상 관리를 함께 해야 합니다. 지사제나 백혈구 증가제(G-CSF) 같은 보조약을 병행해 부작용을 줄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2023년 허가를 받았고, 2025년 현재는 특정 조건(3차 이상 치료, 혹은 보조요법 종료 1년 이내 재발 등)을 만족하는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 번 투여하는 데 수백만 원이 들었지만, 급여가 적용되면서 본인 부담은 크게 줄어 치료 접근성이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트로델비는 삼중음성유방암 외에도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이나 다른 고형암에서도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아직 승인되지 않은 병용요법이나 새로운 적응증을 먼저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트로델비는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전이된 삼중음성유방암 환자에게 의미 있는 희망을 준 신약입니다. 표적을 정확히 겨냥한 항체-약물 접합체라는 점, 기존 항암제와 비교해 생존기간을 늘려준 임상결과, 한국에서 보험이 적용돼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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