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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파티>

14. 답답함과 부끄러움

by 빛과 그림자

지나와 영주는 카페 유리문을 통해 거리의 상황을 보았다. 구급차와 경찰차들의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졌다. 뉴스 속보를 보니 사상자의 숫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지나와 영주는 미성과 선희에 대해 더욱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는 영주의 카페로 올 때 맞닥뜨렸던 수많은 인파들과 부딪혔던 감촉들이 온몸에 다시 살아났다. 꽤 아팠었다. 그때 누군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면 압사의 희생자가 본인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경찰서에 신고했어야 했어.'

지나는 괴로워 울고 싶었다. 바깥의 소음도 견딜 수 없이 커졌다. 이제는 비명소리에 알 수 없는 흐느낌, 사람들의 울부짖음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지나와 영주는 밖으로 나갔다. 가게에서 나오지 말라던 경찰들의 충고를 더 이상 따를 수가 없었다.


"맙소사. 아....아..."

지나와 영주는 동시에 소리치며 눈을 감았다.

차마 마주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넘어져 눌려진 사상자들을 세계 음식거리로 빼낸 모양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좁은 골목길은 사상자로 가득 차 있어서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올라오는 입구 쪽과 세계음식 거리에서 내려가는 지점에서 뭉쳐있는 사람들을 꺼내는 작업이 시작된 것 같았다. 죽었는지 다쳤는지 모를 사람들이 길바닥에 쭉 누워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CPR을 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축 늘어진 채로 들 것에 실려 구급차에 실어졌다. 구급차 문이 닫히고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출발했다. 구조 작업은 빠르고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길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20대인 오뭉치 또래로 보이는 여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지나와 영주에게 누워 있는 여자들의 얼굴이 미성이와 선희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안타까웠다. 혹시, 미성과 선희를 발견할까 봐 두렵고 무서웠다.


지나와 영주는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었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둘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CPR을 실행하는 소방관들 옆에서 망연자실해서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상상조차 못 했던 장면들이 사방에서 펼쳐졌다. 지나와 영주는 자신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방관자가 된 것 같았다. 사상자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구경꾼이 된 듯한 느낌을 참을 수 없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져서 지나와 영주는 카페로 돌아왔다. 바라만 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지나와 영주는 카페 안에서도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다. 지나와 영주는 카페 안을 서성거렸다.

지나가 갑자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것 같았다. 하마터면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지나야, 괜찮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신고해서 바리케이드 쳐야 한다고 말해야 했어. 광화문에서 그렇게 바리케이드랑 경찰들을 많이 봤는데. 나는 바보야. 아무 쓸모없는 멍청이."

지나는 처음에는 흐느끼듯 울다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미성이, 선희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던 애들이....."

지나는 제발 그들이 살아 있기만을 기도했다. 조금 전 본 거리의 상황은 악몽이었다. 일부 클럽에서는 핼러윈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바깥에서 일어난 사고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클럽의 젊은이들은 출입문을 나서면 보게 될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모를 것이다.


지나가 통곡을 시작하자 영주는 지나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했던 말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나야, 네 탓이 아니야. 내가 너보고 아무 걱정 말라고 말했었어. 대한민국 경찰들이 어떤 사람들이냐고. 코 앞에 경찰서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너보고 서둘러 일하라고 독촉했어. 그만 울어. 나도 이럴 줄은 몰랐어."

영주는 가슴이 찔리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심함에 모멸감을 느꼈다.

"나야말로 아무 대책 없는 긍정주의자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 네 말을 새겨 들었어야 했어.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골목로 접어드는 것을 막기만 했어도. 사고 난 골목길로 내려가지 못하게만 했어도..."

영주는 힘이 쭉 빠졌다. 서 있을 힘이 없어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다. 지나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들릴 듯 말 듯했다.

지나는 거의 탈진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

"내 탓이야, 내 탓이야"

지나가 울음 중간중간 중얼거릴 때마다 영주는 칼에 찔리 듯 통증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다 넘어질 때 느꼈던 통증의 기억들까지 되살아났다.

영주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핼러윈 특수를 준비하느라 며칠 잠을 줄여 쿠키를 더 구웠고 손님들도 평소보다 많아 무척 바빴었다. 영주는 이 상태로 있다가는 기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도 차가운 바닥에 더 있다가는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영주는 부엌으로 가서 싱크대 하단 서랍에서 구즈 다운 침낭 두 개를 꺼내 울고 있는 지나에게 하나를 주었다.

"지나야, 그만 울어. 내일, 아니 오늘 해가 뜨면 우리가 도울 일이 생길 거야. 우리 저기 구석으로 가서 침낭 안에라도 있자. 바닥이 너무 차가워"

영주는 유리문과 최대한 떨어진 구석에 지나를 부축해서 침낭을 펴고 누워 있게 했다. 그리고는 카페 바닥에 잠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테이블과 의자들을 한쪽 벽으로 밀어붙이고, 두툼한 피크닉용 방수 돗자리를 카페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침낭을 편 후 지나를 이동시켰다. 지나는 기진맥진 해서 기어서 움직였다.


"카페 열고 처음에 일이 손에 안 익어서 힘들었어. 한 번씩 이렇게 카페에서 자곤 했는데."

영주는 침낭을 펴서 두른 채 벽에 기대어 돗자리 위에 앉았다. 누워 있는 지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나는 울음을 멈춘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주는 몇 시간 전으로만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지금 밖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미성이와 선희가 무사히 카페로 와서 노란, 파란 드레스를 갈아입고 혜리와 민주, 동현을 만났다면..... 다섯 명이서 어울려 이태원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뭉치가 거리를 돌아다니다 새벽에 카페로 돌아와서 지금처럼 폭신한 방수매트를 깔고 포근한 구즈다운 침낭을 펼쳐 이불처럼 덮고 오순도순 밤새 떠들었을 텐데...... 어제까지는 돗자리와 침낭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다. 지금처럼 잠자리를 카페에 마련했다면 오뭉치에게 새로운 추억거리였을 것 같았다.

돌이킬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꽤 흐른 후, 바깥 소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영주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했다. 사망자 수와 부상자 수가 실시간 속보로 떴다.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가 100명을 넘었고, 부상자도 마찬가지였다. 위독한 상태인 사람도 상당수였다. 영주와 지나는 카페 밖 상황을 떠올리며 멍하니 뉴스를 들었다. 믿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현실이었다


지나는 온몸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쳤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삼십 분쯤 되었다. 영주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잠이 들면서 벽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침낭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지나는 피곤해서 어쩌다 잠이 든 영주를 깨우지 않기 위해 부엌 공간을 지나 뒷문을 열어 1인용 남녀공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변기를 마주 보는 벽에 작은 사이즈의 손 씻는 세면대가 있고 위 벽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 지나는 변기에 앉았다.

혜리에게 전화를 해보려고 영주와의 카톡을 뒤졌다. 오뭉치와의 소통은 주로 영주와 혜리가 중간에서 연결해 주었었다. 지나는 영주가 비상시를 대비해 알려주었던 혜리의 전화번호를 연락처에 미처 저장하지 않았었다. 전화를 걸기 전에 고개를 들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유령처럼 보여 깜짝 놀랐다. 그날 밤에 돌아다니며 본 죽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모두 눈, 코, 입이 그대로 있는데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전화기 신호가 가는 동안 지나의 귀에 쿵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여보세요? 지나언니예요?”

“ 응, 어디니?”

“순천향 병원 응급실이에요. 여기 미성이 부모님, 희재 언니와 동현이, 저랑 민주 다 모여 있어요.”

혜리의 목소리가 힘없이 가늘게 떨렸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다.


“뭐.... 혹시 미성이, 선희와 연락됐니? 너무 밤이라....”

“언니...... 선희, 자는 것 같은데, 죽었대요. 의사가 조금 전에 사망진단을 내렸어요. 응급실이 하얀 천이 덮인 시체들로 가득 찼어요. 미성이는 여기로 못 올 것 같아요."

"미성이? 어떻게, 그럼?"

"모르겠어요. 다 모르겠대요. 사상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대요. 경찰관들이 그렇게 말했어요"


지나는 선희와 미성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변기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카페 안으로 걸어갔다. 영주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지나는 영주를 깨우고 싶었지만 참고 누워서 영주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지나가 눈을 떴을 때 카페 안은 불이 환하게 켜있었고 유리문 밖은 깜깜했다. 검은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영주는 테이블 하나를 벽에서 옮겨 의자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샌드위치 4조각과 커피를 담은 머그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지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영주를 쳐다보았다.


"내가 잠들었었어? 그 상황에서 자다니!”
지나는 침낭 위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두 무릎을 굽히고 양팔로 감싸 안았다. 무릎 위에 고개를 숙였다. 편하게 잠을 잤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시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미성이가 발견됐어. 경기도 어느 병원에서 연락이 왔나 봐. 미성이 부모님이 민주랑 서둘러 출발했대."

영주는 울먹이며 말했다.


"새벽 네 시에 혜리 어머니가 전화하셨어. 혜리는 부모님이 순천향 병원으로 데리러 왔대. 혜리 부모님은 새벽이 되어서야 뉴스속보를 봤나 봐"


지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영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젯밤 광경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희와 미성이도 같은 상태였을 꺼라는 생각이 들자 벌떡 고개를 들었다.


“선희 소식도 들었지?”

“응”

“혜리가 그러는데 잠든 것 같았대.”

지나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오늘 새벽에 혜리한테 선희 부고를 들었는데.... 어떻게 잠을 잤는지... 자괴감이 들어. 그 상황에서 지금까지 푹 잠들었는지.”

“피곤해서 기절한 거지. 나도 잠들었는 데.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산 사람은 잘 수밖에 없어.”

영주도 자책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리고 한참 뒤 지나와 눈을 맞추었다.


지나야, 산 사람은 먹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여기 테이블로 와서, 이거라도 좀 먹어. 벌써 10시야.”

“벌써? 나도 꽤 오래 잠들었네. 검은 천 때문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 줄을 몰랐네. 그럼, 희재와 동현이는 어디 있어?”

“희재가 동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갔나 봐. 동현이가 혼자 남양주 집까지 내려가는 게 신경 쓰였나 봐. 시험이나 볼 수 있으려나.”


영주의 대답에 지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라면 못 볼 것 같아. 시험이 뭐가 중요하겠어."

영주와 지나는 동현의 상황이 녹록지 않게 느껴졌다.


“참, 삶이 왜 이렇게 익숙해지지가 않니? 늘 새로운 상황이야. 이런 끔찍한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

지나는 다시 눈물이 나왔다. 퉁퉁 부은 얼굴이 눈물로 번들거렸다.

“미성이와 선희가... 목숨을 빼앗겼어. 다들 너무 해.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던 애들을. ....우리가 너무 한심해.

영주의 말에 지나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중얼거리 듯 말했다.

내 잘못이야. 위험하다는 걸 알았어. 알았으면 신고했어야 했어.”

우리 이제 그만 자책하자. 다른 사람들이 신고했었대.”

영주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지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얼른 샌드위치 먹고 유실물 센터라도 가보자. 일을 하려면 먹어야 해. 뭐라도 도와야지. 새벽에 엄마가 갖다 주고 갔어. 먹고 힘내서 할 일 하라고.”

지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마음 같아서는 자지도 먹지도 않고 싶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


희재는 동현을 감싸 안 듯이 집으로 데리고 왔다. 희재는 화진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화진이 지속적으로 집에 오라는 카톡을 보내왔지만 무시했었다. 희재는 응급실에 빽빽하게 놓인 흰 천으로 덮인 희생자들의 침대들을 보자 쓰러질 것 같았다. 압박감과 공포감이 전기 흐르듯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선희의 죽은 모습을 보자 죽은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희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새파랗게 질린 동현의 얼굴을 보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줄이 끊어질 것 같았다. 희재와 동현은 미성의 부모님, 민주, 혜리에게 연락하겠다는 인사를 하고 한남동 순천향 병원을 나왔다.


미성의 위치를 알리는 전화가 온 것은 선희를 발견하고 한 시간쯤 후였다. 혜리가 선희의 이름과 다니는 직장을 경찰관에게 알렸다. 혜리는 횡설수설했다.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경찰관에게 신세한탄하듯 늘어놓았다. 민주는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애가 정말 공부를 잘했어요. 이렇게 좋은 공기업을 두 번만에 붙었어요. 취업한 지 이제 보름밖에 안 됐어요. 어제도 연수 끝나고 춘천에 있는 부모님 댁에 들렀다 오느라고 늦은 거예요.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조금만 일찍 이태원에 도착했어도....”


경찰관은 넋두리를 듣는데 익숙한 듯 가만히 듣고 있다 필요한 정보를 재차 물었다.


“공기업이름과 근무 부서 이름을 알고 계신가요? 성을 포함한 전체 이름을 알려주세요.”

“네네. 배선희입니다. OO공사, OO부서예요. 정말 아무나 못 가는 직장이죠.”

혜리는 대답을 하면서 부질없이 던지는 자신의 말을 주어 담아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상황이 같다는 것을 깨닫자 비참해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혜리는 냉엄한 현실에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선희의 몸만 남았다. 선희의 영혼이 몸을 떠났다. 핼러윈인 오늘 선희의 영혼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앞날이 창창한 친구 선희가 잠자듯이 눈을 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천을 덮고 누워 있었다.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대로의 몸이었다.


*

“혜리야, 정신 차려. 뭘 그렇게 골몰하게 생각하고 있니?”

혜리가 병원 출입구 앞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연락도 없이. 전화도 안 받고. 미쳤어? 어제 오빠가 뉴스 보고 걱정돼서 연락했는데 여기라고 했다며. 엄마 아빠는 일찍 자서 조금 전에 알았어."


헤리는 엄마의 손을 말없이 잡았다. 지치고 슬픈 표정이었다.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화장이 다 지워지고 얼룩만 남아 더 초췌해 보였다. 옷은 이상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혜리 엄마는 안도감에 순간 웃을 뻔했다.

'우스꽝스러운 어린애 같은 옷차림이라니. 하지만 얼굴이 말이 아니네. 눈빛 하며.'


혜리는 어깨를 말고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엄마, 나 미성이 부모님, 민주와 같이 경기도 OO병원으로 가봐야 해요, 미성이 어린 왕자 목걸이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간호사가 연락했대요. 미성이 세 살 때 어린이집 가는 기념으로 미성이 엄마가 선물한 목걸이었대요.”

"미성이 부모님은 어디 계셔? 민주는? "

"경찰관에게 뭔가 물으려 가셨어요, 앞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지 알아야겠다며. 민주도 따라갔어요."

“혜리야, 너는 나랑 집에 가자. 일단, 좀 쉬고 다시 나와. 아빠가 주차 못해서 병원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빨리 가자. 민주한테 빨리 전화해.”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요.”

“그럼 내가 영주 언니한테 전화해서 민주한테 알리라고 할 게.”


혜리는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동차 뒷좌석에서 몸을 구긴 채 잠이 들었다.


*


화진은 희재의 전화를 친구 아파트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천향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희재에게 지속적으로 집으로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말풍선 옆 1은 사라져도 대답이 없었다. 새벽 세 시가 되자 위치 추적앱으로 희재가 여전히 한남동 순천향 병원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희재를 차에 태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화진은 친구 아파트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희재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동현이 얼굴이 새파래졌어요, 쓰러지기 직전이에요. 같이 가도 될까요?"

"되지. 희준이 방 비어 있잖아. 군대 휴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고. 일단, 거기서 자면 돼."

"희재야, 병원 근처 OO 아파트 주차장으로 와. 지도 보낼게."

"네."

희재와 동현은 화진이 운전하는 차 뒷 좌석에 앉았다. 동현이 태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화진에게 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동현은 희재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 저 시험 안 보려고요, "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하자."

동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미성의 옷이 벗겨져 있었다. 오물들이 심하게 묻어 있어서 위생상의 문제로 제거했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따님이 여러 층 아래 깔려 있었어요. 몸의 여러 부분에 골절이 생겼습니다. 갈비뼈들이 다 부러져 장기를 찔렀습니다. 그래서 가스가 복부에 가득 차 배가 부풀어 오른 상태예요. 팔과 다리에도 압박에 의한 골절이 발견됩니다. 부러진 뼈에 의해 피부가 찢겼어요.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질 때 제일 아래쪽에 위치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얼굴에 있는 울긋불긋한 반점들도 외부의 압박에 의해 피부 속 혈관들이 다발성으로 터진 상태에서 나타났습니다.”


미성의 부모님은 말없이 미성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다 흘러내렸다. 민주도 그들 곁에 간신히 서 있었다. 시체의 손상 정도가 심해서 보호자의 사인을 받고 당장 냉동고에 넣어야 할 상태였다. 부검을 원하는 지도 물었다.


“아뇨.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

“글쎄요. 장례식 절차를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대규모 압사 사고인 만큼 지켜보시는 게 어떨까요?”

사망진단을 내린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네, 그럼 일단 이 병원에 제 딸을 두겠습니다. 당장 장례식을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미성의 부모님은 민주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 주차장에 세워진 차로 왔다. 미성의 아버지는 손이 떨려 운전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리 기사를 불렀다. 그러면서, 민주에게 어디 사냐고 물었다. 민주는 근무하고 있는 미술학원의 위치를 말했다.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아 일요일에도 오후 네 시부터 수업을 해야 했다. 내일 새벽에 개인 교습하는 학생도 있었다. 무척 열심히 수업을 받는 학생이었다. 오전 5시 30분에 수업이 시작되었다.


“민주야, 고마워.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차 안에 정막만 흘렀다. 20분 뒤 대리 기사가 도착했다.

“홍대 입구 OOOO 학원 앞에 가 주세요. 그다음 올림픽 공원 근처 OOO아파트로 가주세요.”


서울로 접어들자 미성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멀리 왔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말썽 한번 부렸던 기억이 나지 않아.”


운전자 조수석에 앉은 미성의 아버지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아, 어제저녁에 봤던 그 더미 맨 아래에 우리 미성이가 있었네.”


민주는 멍한 상태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소리들이 웅웅 울리며 들렸다. 가슴을 누군가 누르는 듯 답답했다. 미성이한테 연못 있는 집을 되찾으면 제일 먼저 초대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미성이가 냉동고에 있다. 착한 미성이의 영혼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몸은 얼마나 아팠을까?"


“민주야, 고마워. 또, 연락할게.”

“네, 곧 다시 뵙겠습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민주는 고개를 떨구어 인사한 뒤 차에서 내렸다. 민주는 고개가 들어지지 않았다. 자꾸만 땅을 보고 걷고 싶었다. 어깨가 말려 구부정한 자세로 팔을 힘없이 흔들었다. 비틀비틀 걸어서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민주는 그제야 깨달았다. 미성이가 디자인하고 주문 제작해 준 옷이었다. 해골 마스크를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소설 등장인물들은 제가 소설을 쓰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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