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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Feb 22. 2024

미국에 살면 영어가 막 느는게 느껴지나요?

막 솰라솰라 해요?


미국에 산 지 9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 살 때도 아주 영어 젬병이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미드를 하도 봐서 그런가 그럭저럭 약간은 알아듣는 편이었다. 영어를 제일 열심히 공부해 봤던 건 수능영어 뿐. 토익도 학원 없이 그냥 중상 정도인 어정찐 점수를 받았었다.


사실 한국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고 발음도 좋은 편이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 고 빼지만 아는 영어단어가 이백 개는 족히 넘고, 간단한 표현은 알아듣는다.특히나 학교에서 영어 교육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자란 젊은(?)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있다. 매번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욕하긴 하지만, 그 주입식 교육이 알게 모르게 기본은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주변에 고인물이 너무 많고 한국인의 자아성찰적 특성상 자기는 못한다고 생각해왔던 것 뿐. 발음도 엄청 잘해야 한다고 푸시를 받고 자라서 사실 발음도 꽤 좋다. 미국에 살다보면 모국어의 엑센트가 굉장히 센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고 본인들은 고칠 생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못 알아들으면 화내면서 뭐가 문제냐고 되려 짜증을 내기도 한다. (많이 겪어봤다)



한국사람들은 '원어민'이 되길 꿈꾼다. 특히나 영어는 더 그렇다. '영어권 국가에 살면 영어를 원어민 처럼 엄청 잘 하게 되겠지?' 하며 어학연수를 다녀온다. 마치 영어권 국가에 살면 게임할 때 레벨 오르는 것 처럼, 혹은 침침한 눈에 안경을 쓴 것 처럼 영어 실력이 쑥쑥! 오를 것만 같다.



흠, 그래.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가 아마 늘었을 것이다. 처음에도 막 엄청 불편하다는 생각은 사실 잘 못했다. 믿거나 말거나, 발음 좋다고, 영어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영어를 정말 못하는 오페어들도 많았고, 사실 일상생활 언어라는게 정치 경제 사회를 토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어려울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9년동안 오페어를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니 영어를 못 할 수는 없다.


처음 영어가 늘었다고 느꼈던 때는 사실 미국 온 초반이었다. 두 가지 경우였다. 먼저 첫번째는 구어체 외의 일반문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보육교사와 중등정교사 자격을 캘리포니아의 교사 자격으로 지원해서 받고 싶었는데, 첫 해에는 캘리포니아 교육자 홈페이지가 이해가 안갔다. 미국 정부 홈페이지 자체가 그렇게 유저프렌들리도 아닐 뿐더러, 법/자격관련 서류와 할 일을 읽자니 문장 하나 하나는 무슨 말인 지 알 것 같은데 합쳐서 놓으면 대체 뭘 해야하는 건지 이해가 안갔다. 그래서 포기했었다.


2년차에 다시 홈페이지를 둘러보는데, 왠지 할 만 한 것 같았다. "오? 이것봐라?" 싶어서 단계를 차근차근 따라갔고, 아무런 도움 없이 외국 대학 학점 카운팅도 받고, 서류까지 접수해서 다 보낸 후에 캘리포니아 영유아 교사자격과 중등교사자격을 둘 다 받는데 성공했다.


다른 하나는 엑센트 심한 대화를 듣고 이해하는 것. 사실 한국 영어가 미국식 영어위주이기 때문에 다른 억양에 익숙하지 않다. 처음에 가장 못 알아들었던 것은 강한 스페인어/포르투칼어 억양, 그 다음은 중국어 억양의 영어였다. 뭐, 그런건 일상생활에서니까 대부분 이래저래 다시 묻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의외로 TV를 보는게 힘들었다.


그 당시 왕좌의 게임 새 시즌이 나왔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자막을 만들어 그걸 보려면 한참 걸릴 터였다. 그래서 그냥 봤는데, 알다시피 거기엔 북부지방 액센트라든가, 격양된 상태의 연기에서 (죽고 죽이는..) 하는 말은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대충 보고 잊어버렸다가, 일 년 쯤 지나서 어쩌다가 다시 봤다.


엥? 이번에는 들렸다. 존 스노우나 벽 너머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지방 엑센트를 강하게 얘기하는데, 그것도 들렸다. 이게 왜 들리지? 신기했다. 딱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산다고 이게 늘긴 느는구나 싶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게 되는 구나 싶어서, 아무런 도움 없이 대학원을 지원해보기로 했다. 2년차에는 대학원 홈페이지 모집 요강이 크게 어렵지 않았고, 보아하니 토플 점수가 필요한 듯 했다. 다행히 첫 해에 오페어 수업 크레딧 용으로 그냥 토플 수업을 하나 들었었는데 (공부 안하고 그냥 출석만 함..공부 좀 할 걸) 그 때 사 놨던 책이 있어서 그걸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작한 건 늦 봄 즈음. 대학원 지원 데드라인에 맞추려면 8-9월 사이에는 시험을 보고 합격선을 넘는 점수를 받아야했다. 주어진 시간은 3-4개월. 토플시험 한 번도 쳐 본적이 없고, 수능 이후로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 본 적 없던 나에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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