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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r 08. 2024

너 외국인 엑센트가 아예 없는데?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요?

몇 달 전, 미국 동부에 남편 큰아버님 부부가 며칠 간 큰 파티를 주최하셔서 갔었다. 집이 200년이 된 기념으로 일가친척을 전부 초대해서, 머물 곳 까지 집 숙소를 여러 채 빌려놓으신 상태. 우리는 근처 여행도 할 겸 (그 때 놀러다닌 얘기는 여기에 있다) 3-4일 일찍 도착해서 알려주신 숙소에 저녁즈음 체크인을 했다. 저녁을 함께 먹으려면 몇 시까지 오라고 하시긴 했는데, 뭐 굳이 그렇게까지 부담을 드리나 해서 우리끼리 밥을 먹기로 했다.


처음 와보는 동북부의 작은 마을. 숙소에서 조금 차를 타고 나가자 아기자기 귀엽고 작은 다운타운이 나왔다.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는데, 이제 막 피크시즌이 지난지라 식당들이 아예 다 문을 닫았거나 아주 소수만 운영하고 있었다. 첫 번 째 간 곳은 입구를 찾을 수 없었고, 두 번째 간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바로 나왔다.


캄캄한 작은 마을. 도시에서 어디나 언제나 무언가는 열린 식당이 있는 데에 익숙한 우리는 점차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옆에 운영을 하는 작은 식당이 하나 더 보여서 물어나 보기로 했다. 포근한 실내, 안쪽은 생각보다 공간이 더 넓었고,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나이드신 분들이 가득가득 아주 바빠보였다. 호스티스에게 물으니 4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죠, 하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이러다가 저녁 못 먹겠는데?"

우리는 식당 앞 조금 떨어진 길거리에 서서 구글맵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정 안되면 뭐, 마트라도 가서 뭘 사다 숙소로 가든가 해야지했다.



"(남편이름)?"


누가 뒤에서 남편을 불렀다. 여기서? 아는 사람이 있다고? 우리가 뒤돌아봤다. 나이드신 신사 한 분이 웃으며 서 계셨다.


"Hey! It was really you! M(큰어머님) said she saw you so I got out to see it was really you!"

와! 정말 너네? 아내가 널 봤다고 해서 진짜 너인가 보려고 나왔더니!"


"Oh my god, T (큰아버님)?!" 남편은 그 신사분을 반갑게 얼싸안았다.


그랬다. 우리가 식당 안에서 직원에게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다가 뒤돌아서 나오는 걸 안에서 식사하고 계셨던 남편의 큰어머니가 보셨고, 큰아버지는 설마설마 하며 확인하러 나오셨던 것이다. 우리는 식사를 하려고 하다가 자리가 없어서 나왔다고 했더니, 일단 들어가서 합석하자며 우리를 식당으로 밀어넣으셨다.


우리는 이런 우연이 있냐며, 반갑다고 인사를 나눴다. 몇 년 전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나가다 우연히 봰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연애할 때였나 어쨌나 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다. 나로서는 이번에 거의 처음 뵙는 분들이어서 조금 긴장이 됐다. 남편은 친척이 너무 많아서, 사실 모두와 친하게 가깝게 지내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두 분은 자기들을 만나러 이 멀리까지 비행기 타고 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정말 따듯하게 반겨주셨다. 결혼하고 처음 뵙는데, 큰어머님은 특히나 내게 궁금한 점이 많으신 듯 했다.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는지, 내가 무엇을 전공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결혼해서 어떻게 사는지 말을 많이 걸어주셨는데, 뭐라고 할까 그게 하나도 기분 나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포근함이 묻어났다. 나는 조부모님과 가깝지 않았지만, 살뜰한 할머니가 계셨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었다. 나도 감사해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해 드리는데, 문득 그러셨다.


"Wait, you are from Korea, right? You don't have any accent at all!"

(잠깐,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말하는데 억양이 하나도 없는데?)


"I don't? I guess, I went to graduate school here and had jobs too, so maybe that"

(아 없어요? 아마 여기서 대학원다니고 일하고 그래서 그런가봐요")


"No, not at all! Wow, that's really amazing!"

(응, 전혀 없어! 우와 정말 대단하다!)


하며 어떻게 외국인이 제 2외국어를 하는데 모국어 억양이 없을 수 있는지 칭찬과 대화를 계속 이어가셨다. 큰아버님은 혹시 우리가 본인들 테이블을 이어받을 수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보셨고, 직원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두 분은 곧 저녁 잘 먹으라고 자리를 떠나시면서, 계산은 자기네가 미리 다 했으니 저녁 맛있는 걸로 먹고, 와인도 마시고, 디저트도 꼭 먹고 가라며 당부하셨다. 오늘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만나서 너무너무 반가웠다고. 그 날 먹은 나의 오리고기와 버섯을 곁들인 야생 쌀 요리는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ㅏ.

아 또 먹고 싶다..






"엑센트가 하나도 없네?"



그 큰 어머님 외에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중에 내가 한국에서 성인이 되어 미국에 왔다고 하면 자주 듣는 말이다. 대부분은 이렇게 흘러간다.

대화중에 한국 얘기가 나온다

- 한국에서 왔다고 알린다

- 그럼 아 부모님이 한국에서 왔고 여기에서 태어났냐고 한다

- 아니라고 답한다

- 아 그럼 어렸을 때 왔냐고 한다

- 아니 성인이 되어서 이십대 중후반에 왔다고 한다

- 그럼 저 대답이 나온다. "진짜? 엑센트가 하나도 없는데?"



나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누가 한국인인지 그 사람이 한국말을 하지 않더라도 거의 단박에 알 수 있다. 한국인 특유의 엑센트가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배운 제 2 외국어 스피커라면 대부분 이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2개국어로 자란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모국어의 액센트를 가지고 있고, 그걸 아예 없애버리기는 어렵다.



언제부터 저 말을 듣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3-4년차 쯤 부터였던 것 같다. 나 스스로는 한국어 억양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대체 왜 저런 말을 듣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더니, 왜 너만 모르냐고, 아주 정치경제사회와 같은 아주 깊은 대화를 심도있게 나누지 않는 이상에야, 캘리포니아 사람 같이 들린다고 했다.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영어를 잘 구사하고 말고 하는 것을 떠나, 어떻게 하여 억양이 잘 없는가?


아마 일상생활에서 한국말을 쓸 일이 9년동안 거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말을 하는 관련된 단체나 업체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인 교회를 다니지도 않으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나 직업을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취업이나 기타 도움을 구해야 하면 그냥 미국에서 아무나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찾지, 한국 관련한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지 않는다. 직장에도 한국어를 하는 직원은 한 명 도 없었으며, 한국말을 하는 경우는 여기서 살다가 만나서 친구가 된 소수의 한국인 친구들과 직장에서 클라이언트로 만나게 된 한국인들 밖에 없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집에 와도 한국말을 쓸 일은 없었다. 오페어로 미국인 가족과 함께 살았고, 그 이후에는 미국인 남편과 함께 살았으니. 한국어로 해도 복잡했을 것들 - 직장을 구한다거나, 법률 관련, 집 렌트/구매 같은 것들도 다 영어로 만이었기 때문에. 하다못해 남편과 싸워도 영어로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싸운다.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자신감을 찾곤 한다. 미국사회에서는 스스로 믿고 알리는 자가 성공하므로, 영어를 잘 한다고 믿고 싶은 나에게 달달한 당분을 충전해 준다. 그렇게 믿어야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내 발치에 대기타고 있던 먹구름이 나를 타고 올라와 나를 좀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어딜 가질 않고 거기 꼭 붙어있다. 내가 과연 똑똑한 사람 처럼 들리는지에 대한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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