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사례
아마 이전 글을 읽으신 분이시라면,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그래, 어린이들을 위해서 다양성을 중시하고 이민자도 받아들인다고 치자. 그런데 실제로 그게 된다고? 잘 못 믿겠는데.'
'나는 경력이 하나도 없는데, 영어도 잘 못하는데. 정말로 취직해서 일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겪었던 몇가지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니셜은 다 가명이다.
1. 멕시코 출신 B 선생님.
이 분은 사실 이미 원에서 일하고 있던 한 교사의 고모다. 나이는 50대 정도로, 일손이 급히 부족하던 시기에 교사의 추천으로 들어왔다. 먼 옛날에 아동 필수과목을 이수한 게 있긴 한데, 증명을 떼는 데 어려움이 있어 거의 카운팅 받지 못했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몸을 정말 분주히 움직이며 자기보다 훨씬 어린 교사가 움직이기도 전에 바지런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셨고 우리는 그 태도를 정말 높이 샀다. 유아반은 아무래도 아이들과 말로 싸워(?)야 하니 어렵고, 우리는 그 분을 75%의 교사가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영아반 팀에 보조교사로 배치했다.
사실 언어는 그닥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어로 전달사항이 있을 시에는 보통 끄덕이며 알아들었다고 하셨지만 사실 못 이해한 부분은 주변 교사들이 문제 없이 설명하거나 도와주었다. 주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부모와 중요한 의사소통을 할 일이 없었고, 종종 학부모들이 스페인어를 하는 경우에는 라포를 잘 쌓았다.
주변 교사들과도 관계가 아주 좋았고, 아이들을 대하는 기본 존중 태도 ( 이건 배워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 가 잘 정립되어있어 아이들과의 라포형성도 쉬웠다. 모르는 것, 혹은 본인의 권한을 넘어선 것에서는 언제나 주교사나 주변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해 문제가 되는 것도 없었다. 떄문에 대부분의 보조교사가 다른 교실도 왔다갔다하며 도와주는 경우가 빈번한 것에 비해, 이 교사는 안정적으로 자기의 팀 (영아반 2개)를 고정서포트 했다.
불편한 점을 꼽자면 - 내규에 따라 친척인 교사가 일하는 교실에 함께 배치할 수 없었다는 점 정도. 하지만 빈번히 있었던 일이 아니니 전혀 문제될 점이 없었다.
2. 프랑스 출신 H 선생님
이 분은 미국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나이는 30대, 새로운 나라에서 어린 딸아이도 있어서 어떻게 어디서 일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친구 J선생님의 추천/소개로 면접을 보고 들어왔다. 아동과 관련한 아무 경력이나 학점도 없었으나, 프랑스에 있을 때 다른 업계에서 매니저까지 일한 경험이 있다.
영어는 일상대화가 어렵지 않은 수준에, 일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이 센터에서는 교사가 어린 아이가 있으면 상당한 할인 (당시 3/4 할인)을 받았으므로, 아이를 우리 원에 맡기고 자신도 일을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에 정말 감사해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당시 증상이 있으면 쿼런틴 해야하는 규정 때문에, 딸아이가 아프면 자기까지 같이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내가 신입 온보딩 담당이었으므로, 처음 들어와서 대화하고 도와주는 내내 이 교사는 외국에서 이렇게 아이도 맡기고 자신도 일 할 수 있는 기회에 항상 감사함을 표했다. 뭐든지 자신이 나서서 열심히 움직였고, 밝고 활달한 성격이라 학부모, 학부모와의 관계도 좋았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학위를 따서 커리어에서 더 성장하고 싶다고, 나나 원장을 가리키며 당신 같이 되고 싶다고 야무진 포부도 있었다. 경력교사에게 질문도 많이 하고 배우려는 의지와 에너지가 긍정적이었다. 주로 영아반을 도왔으나, 가끔 유아반도 열심히 서포트에서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다. 단점이라하면 자신의 아이가 있는 교실에는 배치가 어려웠다는 점 정도. 내가 그만 둔다고 이야기 할 때 자기 처음 들어와서 나에게 의지가 많이 됐다며 내 손을 붙잡고 울었다. 가끔 생각나는 분.
3. 태국출신 S 선생님
이 분은 미국에 오페어로 왔다가 결혼을 해서 정착했다. 나이는 30대, 사실 판데믹으로 원을 문 닫기 직전에 고용이 되어서 내가 온보딩 하면서 교실 보여주고 관찰 도와주고 하다가 판데믹 셧다운 때문에 원이 문을 닫게 되면서 무산됐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였다.
이 분은 이미 코어과목 기준을 모두 충족한 상태여서, 보조가 아닌 준교사로 채용했다. 영어도 의사소통이나 문서 작업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근무태도나 근태가 무척 성실하여 원장과 내가 항상 감사하던 교사였다. 판데믹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2세반 교실에 아주 잘하는 지도교사와 파트너를 맺어 배정했는데 금세 적응해서 교실이 안정되었다.
엄청 활달하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학부모와의 관계도 좋고 본인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만 2세는 영유아기의 사춘기라고 할 만큼 어려워서 피하려고 하는 교사들도 많은 편인데 이렇게 금방 안정적이게 교실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은 스킬이다. 언제든 경력이 쌓이면 주교사로 승진도 염두하고 있었다.
4. 출신이 생각나지 않는 J 선생님
왜인지 모르겠는데 출신이 생각나지 않는다. 남미였던가 중동이었던가..? 20대 초반의 굉장히 젊고 예쁜, 열정히 넘치는 교사였다. 면접이 기억나는게 밖에서 공원에서 줌을 받길래 나는 첫 인상에 조금 망설였으나, 어려서(?) 그러려니 했다. 역시 아무런 노 학점 노 경력인 도화지 같았던 교사. 앞서 프랑스출신의 H교사에게 여기 일하기 좋다고 적극 영업을 했던 J교사가 바로 이 사람이다.
움직임이 빠르고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도 원만했으므로 일단 보조교사로 여러 반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회사에서는 교사에게 무료로 자격증과정과 학사과정을 지원했는데, 이 교사는 빠르게 움직여 CDA (영유아 교사 자격과정) 를 수강했다.
일 년 즈음 후에는 CDA를 거의 마쳤다.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자격이 있으면 영유아를 단독으로 지도할 수 있기 떄문에, 비로소 교사로서 진정한 1인분을 해 낼 수 있게 된다. (보조교사의 경우 반드시 지도 교사가 함께 상주해야하기 때문에 간간히 교사인원 배치에 부담이 된다)
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CDA를 마쳤다는 것은 그 만큼 commitment (어떤 것에 확신을 가지고 계속 하겠다는 약속과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원 운영상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 우리 원에서는 완료 서류를 내면 거의 바로 승진을 시켜줬다. 연봉도 3-5% 올라간다. 만약 계속해서 학점을 따서 전문학사 학위라도 따면, 또 연봉 3%인상을 받을 수 있다.
아무 경력도, 교육도 없이 들어와서 의지만으로 성장하는 J교사를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어느 날에는 자기 엄마가 본국에서 놀러왔는데, 엄마를 모시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자기가 밥을 샀다고 자랑하는데 내가 다 언니처럼 뿌듯했다.
내가 떠난다고 하던 날 이 교사는 휴식을 가다가 내가 얘기하는 걸 듣고 도로 문을 닫고 들어와서 왜 그만두냐고 따지며 울었다. 처음 들어와서 잘 챙겨주던게 엊그제 같은데 가면 자기는 어떡하냐고. 나는 그저 미안하다고, 잘 하고 있으니 계속 열심히 해서 성장하시라고 했다.
모두가 다르지만 함께 모여 일 할 수 있는 곳. 나는 이들과 이렇게 멋진 라포를 형성할 줄 몰랐고, 나를 이렇게 믿어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당신의 나이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열정, 일머리, 근태, 그리고 친근하고 열린 마음만 있다면 어느샌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믿고 의지하게 된다. 아, 그러고 보니 이들이 보고싶다.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1:1 채널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에 새 터전을 잡고 영유아 교사의 길을 찾고 계신 분, 학부생인데 미국에서 아동관련 경험을 알아보고 계신 분, 미국에서 교사 면접을 연습해 보고 싶으신 분 등등 께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1:1 멘토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