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운전면허 발급의 미치고 팔짝 뛰는 향연

귀에 딱지 얹게 들었겠지만 한국만큼 빠른 곳은 없어요

by Presidio Library


몇 년 전 디즈니 픽사의 주토피아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동물 도시를 매우 디테일하게 잘 살려낸 그 창의성에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중 하나이다. 이 영화를 보면 중간 즈음에 DMV(미국 차량국, Department of Motor Vehicles)가 나온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어른들은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야말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그 장면. 직원들 캐릭터가 나무늘보에, 기다리는 동물들의 당황한 표정 (표범? 캐릭터가 한 손으로 입과 얼굴을 싸매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크리에이터들의 위트가 돋보일 수 밖에 없는데에는, 모든 이들이 거쳐갈 수 밖에 없었던 저마다의 DMV의 악몽이 떠오를 것이라는 공통적인 믿음이 있다.


저번 글에서와 같이, 일단 가장 큰 문제점은 예약을 잡기가 어렵고 예약 없이 드롭인으로 갔을 때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에 있다.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25


게다가 일단 운전면허를 딴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운전면허는 유효기간이 있다. 특히나 외국인이라고 하면 각자의 비자 상황에 따라 그 유효기간이 더 짧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때 마다 갱신을 해야하는데,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니라면 현재로서 온라인갱신은 어렵고 그 때마다 서류를 전부 싸들고 직접 가야한다. 어찌어찌 예약에 성공하고, 싸들고 간 서류로 갱신을 했다고 치자. 운전면허가 내 손에 들어올 때 까지 방심할 수 없다. 나는 비자의 연장, 변경 등으로 네 번 정도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그렇다. 어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내가 경험했던 그 미치고 팔짝뛰는 경우다.



6개월이 지났는데 왜 운전면허 안 줘요?ㅠㅠ


그러니까 서류를 다 잘 들고가서 갱신을 했다. 운전면허가 우편으로 배달 될 때까지 2주 정도 걸릴테니 쓰라고 임시면허 종이쪼가리를 주었다. 뭐 미국에선 뭐든지 2주 혹은 10 business days (주말을 제외한 업무일수)가 걸리니까 그건 불만이 없다. 문제는 운전면허가 한 두 달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을 때이다. 이 종이쪼가리는 최대 두 달인가 정도의 유효기간이 있다. 이 유효기간이 지나기 전에 운전면허가 도착하지 않으면, 디엠비에 다시 가서 줄서서 상황을 설명하고 새로운 종이를 받아와야 한다. 물론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절대 없다. 한 4개월 쯤 지났을 때, 너무 속이터져서 디엠비에 전화를 했다. 이 전화도 상담원과 연결하려면 대기시간이 어마어마 하다. 그 대기시간을 뚫고 연결된 상담원에게 아니 몇 달이 지났는데 대체 내 운전면허는 언제 나오는 건지 물었더니, 굉장히 화를 냈다. 자기네 잘못이 아니고, 유시스(USCIS, 미국 이민국)에서 처리가 안 났는데 어쩌라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업데이트라도 들을 수 있냐고 물었지만 계속해서 화를 냈고, 나는 그 의미없는 전화를 끊었다. 그 때는 미국에 오래 있을 게 아니었기 때문에 1년 연장이었는데, 1년짜리 중에 4개월이 지났는데도 안 나오면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때 깨달은게, 아, 외국인 운전면허의 경우에는 USICS+DMV의 대환장 콜라보라는 사실이다. 유시스도 속도가 더디기로 아주아주 유명한데, 거기로 보내서 확인까지 해야되는 것이면 운이 없으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운전면허는 몇 달이 더 지나서 나오긴 나왔다. 6개월 후에 만료되는 것이긴 했지만.




이거슨 시스템에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여


그 1년짜리의 반쪽 밖에 이용해 먹지 못한 6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어쩌다보니 대학원에 진학하여 비자 서류를 내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 사이에 운전면허 만료가 다가왔다. 미국에서는 비자 1이 만료되기 전에 비자 2를 접수하고, 이게 유시스에 접수가 되었다면 그 기다리는 동안에는 비자 1이 만료되었어도 합법적으로 체류가 가능하다.


느낌이 오는가? 비자 1은 만료여서 운전면허 증빙서류로 쓸 수 없고 비자 2는 아직 처리중이다. 지금 약간 중간에 뜬 상황. 나는 불안감에 직면하여 불꽃구글링을 했으나 명확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엔 디엠비에 비자 1 만료서류와 모든 비자 2 접수서류, 접수 완료 확인서에 대학원 합격/등록서류까지 모조리 들고 찾아갔다.


창구의 직원은 보통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있다. 발랄한 사람도 있지만 화를 내고 집에 가라며 아무 것도 안 해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한국처럼 관공서에서 "내가 낸데!" 하고 소리를 쳤다간 경비원에게 끌려나가서 문전박대당할 수 있다. 나는 직원에게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나는 합법적이고 유시스가 추천하는 타임라인 대로 서류를 진행중이다. 이거 다 봐라. 다음 비자 다 문제없이 나올거고, 그냥 지금 기다리는 중일 뿐이다. 자, 내가 운전면허를 갱신할 수 있겠니?


대답은 아니 안 돼 였다. 현재 체류를 증빙할 유효한 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캘리포니아에는 'Undocumented(서류가 없는)' 이민자, 속히 말해 불법이민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위한 'Undocumented 운전면허' 발급이 가능했다. 이게 뭔 말이야 싶겠지만, 사실 좋은 생각이다. 아예 서류 없이 불법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로 사는 것 보다는 운전면허라도 줘서 주거지와 연락처 등을 등록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집에서 해결책을 위해 불꽃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물었다. "아, 그럼 내 document가 나올 때 까지 undocument로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을까?"


대답은 어땠을 것 같은가?

"No, you have docmuneted on our system so you can't have the undocumented DL" (아니, 너는 시스템에 서류가 있기 때문에 서류 없는 운전면허는 발급이 안 돼.)


blind spot- 사각지대. 그야말로 딱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너는 서류가 없지만 우리가 서류가 있어서 안 돼가 도대체 무슨 말장난 같은 말인가ㅋㅋㅋㅋㅋㅋ


뭐 어떻게 지금 할 수 있는 거 없어? 하고 물어도 무표정으로 없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뭐 상황을 도와준다든가, 대신 알아봐준다든가 이딴 건 없다. 너의 인생은 너의 문제일 뿐. 아는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어도 사실 이런 상황에서 현지인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본인이 그런 상황에 닥쳐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막상 나도 한국에서 외국인이 운전면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는 걸. 나는 빠르게 포기하고 디엠비를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전 남친 현 남편과 통화를 했다. "서류가 없어서 운전면허는 못 주지만 서류가 있기 때문에 서류 없는 면허는 못 준대." 그는 그게 대체 머선 말이냐며 황당해 했다.


운전 면허증 실물이 없는 게 왜 대체 그렇게 큰 걱정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일단 미국에서는 운전이 주 이동수단이므로 운전을 할 수 없다면 먹을 걸 사오고 학교를 다니는 기본적인 삶이 부쩍 어려워진다. 가게에서 술을 사더라도 이 운전면허를 기계에 넣어서 스캔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주민등록증이 없는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을 대신하고, 미국 국내비행기 탑승시에도 여권을 들고 다닐 것이 아니라면 이 신분증을 쓴다. 운전면허가 없다면 대체신분증또한 DMV에서 발급해 주므로 그게 그거다.


뭐, 세상에 언제나 길은 있다. 이가 안되면 잇몸으로.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빠르게 연락해서 국제면허 대리발급을 요청했다. 국제면허가 발급되는 즉시 급행우편으로 받았고, 중간에 뜬 동안에 국제면허가 유효하니 마음 편히다녔다. 비자 2가 잘 나오자 마자 캘리 운전면허를 잘 발급받았고 처음으로 3년 정도로 유효기간이 긴 운전면허를 받았다. 아! 디엠비 3년은 안 가도 된다는게 얼마나 기뻤는지.







작년인가에 한국에 갔을 때, 한국 운전면허 만료가 다가와서 갱신을 해야했다. 직접 가서 받아오고 싶어서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각오하고 찾아갔다. 평일이라 한산했고, 창구에서 불러서 서류를 다 내고 나니, 시간이 조금 걸리니 부를 때 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오 좀 시간이 걸리나보다, 하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거의 바로 불렀다. 뭐를 안 냈나? 하고 갔더니 따끈따끈 갓 만들어진 새 운전면허를 건네주었다. 사진도 내가 맘에 들게 찍어간 깔끔한 반명함판. 얼굴이 번들번들한 범죄자 사진이 아니다.


오오, 영롱했다. 국뽕이 차오른다는 게 화려한 데에서 오는 게 아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자국민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온라인에서도 가능하고 그다지 어려운 경우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단순비교만으로 "미국은 다 절대적으로 구려" 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왜 외국인들 보면 비자 갱신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호소하는 유투버 많지 않은가? 타지에서 살면 나라는 사람이 합법임을 계속 증명해야 하니 어려운 점이 배가 된다. 언제 내가, 내 배우자/부모/자식/형제자매/친구가 어디에서 외국인이 될 지, 혹은 외국인이 나의 배우자와 가족과 친구가 될 지 모르는 일이니, 우리 주변의 모두에게 친절한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뭐, 외국인 상황을 감안 하더라도 한국 관공서 서비스가 빠른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 한국 관공서의 빠른 서비스에도 감사하고, 미국에서 운전면허 잘 들고 살아남은 것도 감사하다. 허허허





오페어 및 해외생활 관련 궁금하신 분들께서 질문을 주시곤 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을 개설해보았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이야기 나누어 보아요. - 하이데어 멘토링


keyword
이전 11화캘리포니아에서 운전면허 한방에 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