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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pr 26. 2023

스텐포드 교육원에서 D+ 받은 이야기 1

붉은색 지붕, 노란 빛 베이지 벽, 초록 잔디. 여기서 뭘 해 봤으면.

그러니까 미국에 온 첫 해였다. 나는 샌프란 시스코 조금 더 남쪽의 근교에 살았고, 날씨가 아주 좋았다. 짐을 풀고 1-2주 쯤이 지나자 혼자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는데, 스탠포드 대학교가 그 첫 대상이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한국에서 들어만 왔던 전설의(?) 대학교가 근처인데, 가 봐야지 그럼. 구글 맵에 의지해 칼트레인을 타고 약간은 헤매면서 다녀온 그 캠퍼스는 굉장히 매력적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최고급 필터로 작용한 것 같기는 같지만, 어쨌든 붉은 기와지붕, 노란 빛이 도는 베이지색 건물 벽, 푸르른 잔디가 어우러진 스패니시 풍의 캠퍼스는 눈이 부셨다. 사람들이 이리로 저리로 걸어다니고, 카페 테이블에, 길가 벤치에, 초록 잔디밭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이 좋았다 (그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겠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그렇게 보였다). 건물 모퉁이나 길가의 게시판에는 각종 공고, 이벤트 안내, 행사 안내지가 아무렇게나 붙어있었다. 이 학교를 다니면 정말 좋겠지만, 학비가 엄청 비싸겠지. 아니 애초에 대학원 입학이나 되겠어- 하고 쓴 침을 삼켰다. 여기서 무언가를 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후, 그 당시 나는 오페어 프로그램 중이었는데, 프로그램 수료 필수사항이 현지에서 6학점을 이수하는 것이었다. 무슨 수업을 어디에서 들을 지는 개인에게 달려있었지만, 보통은 주변 CC(커뮤니티 컬리지-각 지역에 있는 2-3년제 대학)나 고등학교에 함께 있는 평생교육원에서 ESL(외국인으로서 영어 수업)을 듣는 게 흔했고, 에이전시도 그걸 권했다. 이 근방 오페어 참여자의 절반 이상은 남미 출신의 이십 대 초반, 아직 기초 영어대화가 서툰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추천이었다. 글쎄, 이런 스타일의 영어수업은 대학 다닐 때 들었던 각종 수업/프로그램이나 나 짧게 갔던 하와이 연수 같은 곳에서 하이 하왈유 웨얼알유프롬을 수도 없이 뱉어 봤었던 터라 좀 맥이 빠졌다. 뭔가 다른 영어 수업은 없을까? 좀 더 현지인 들을 대상으로 한. 주변 대학교 홈페이지를 뒤지며 영어수업을 탐색하던 중, 스텐포드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있는 것을 찾았다. 딱히 ESL 수업은 없고, 눈에 띈 것은 Memoir(자서전) 쓰기. 그래, 나는 영어 쓰기가 참 약하지. 나에 대해서 쓰는 것이니 뭐라도 쓸 것이 있을 것이다 싶었다. 타 대학교 수업에 비해 가격이 좀 있긴 했지만,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스텐포드에서 뭐라도 들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등록했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은 꽤나 설레었다. 매 주 하루씩 퇴근 후 스탠포드에 가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윤기가 좔좔 흐르는 치즈케익을 쳐다보는 것 만큼이나 좋았다. 캠퍼스를 뱅뱅 돌다 주차를 하고, 강의실을 찾아 들어가니 1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회의실 처럼 ㅁ자로 배치된 책상에 빙 둘러 앉아있었다. 강사는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고, 수강생 각자에게 소개를 권했다. 나는 곧 깨달았다. 오메, 내가 뭘 한 거지?




오페어 관련 궁금하신 분들께서 질문을 주시곤 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채널을 개설해보았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이야기 나누어 보아요.  - 하이데어 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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