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춤추러 갈까요?
내가 사랑하고 또 좋아하는 건 단언컨대, ‘춤’이야! 춤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장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스트릿댄스'를 제일 좋아해. 처음 스트릿댄스를 접한 건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라는 엠넷 프로그램에서였어. 본방송이 6개월쯤 지나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출연자들의 배틀 영상이나 코레오그래피(창작 안무)를 보게 됐는데, 그때부터 춤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됐어. 계속 춤 영상을 보다 보니까 나도 저렇게 멋지게 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댄서들의 수업을 들어서 멋진 춤들을 배워보고 싶어졌어!
나는 스스로 ‘몸치’라고 생각해. 춤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동작을 따라 하는 게 어렵고, 안무를 외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타고난 끼도 없고, 동작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어. 33년 동안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웠던 것은 무술밖에 없었던 데다, 한 번도 춤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춤을 시작하는 게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 처음에는 시작할 용기가 도무지 안 나더라. 용기보다는, "서른네 살인 내가 춤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과 두려움이 더 컸어. 그래서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몇 달 동안은 그냥 막연히 ‘언젠가는 배워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 고민 끝에 결국 댄스학원에 가게 된 계기가 된 건, 댄스크루 홀리뱅 ‘제인’ 님의 인터뷰를 보고 생겨난 용기였어. 그 인터뷰에서 제인 님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본인의 춤을 꼽자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어. 그렇게 10년 이상 경력자인 엄청난 전문 댄서도 스스로의 춤에 만족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나처럼 처음 춤을 배우는 사람이 시작도 해보지 않고 잘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건 너무 겸손하지 못한 생각 같다고 느꼈어.
그리고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어. 바로 나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었어. 누군가의 춤을 보고 그의 아름다움을 동경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나를 가꾸고 만들고 표현해 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어. 나는 신체적 특징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여성이야. 첫 번째로, 바디디스포리아(신체불편증) 때문에 가슴 부위에 대한 불편증을 2차 성징 이후부터 겪다가 4년 전에 결국 가슴 절제수술을 받았어. 이런 수술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트랜스젠더’라고 알려져 있는데, 나는 반대 성별로 성전환 수술을 하거나 호르몬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고,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이 자신의 성별과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 여성이야. 가슴이 없는 데다, 내 키는 170cm로 큰 편이고, 짧은 머리가 나답고 편해서 고수하는 탓에 단순히 남자 같은 여자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그게 너무 속상하더라. 머리길이가 성별도 아니고, 나는 나만의 매력이 있는 사람인데, 남자 혹은 여자로 분류가 되어야만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더라. 누구나 여자/남자로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표현하는 게 아닐 텐데.. 자신이 생각하는 고정된 성별기준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면, 조롱을 하거나 심지어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어. 성별표현도 암묵적으로 이분법 적으로 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나는 어딜 가나 항상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곤 했지. 조금 안 좋은 의미인 경우가 더 많았었어.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 "여러분도 스스로의 신체를 긍정하지 못한 적이 있었어? “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얼굴에 작은 트러블 하나만 생겨도 스트레스를 받고, 평소보다 살이 조금 찌거나 빠져도 자신감을 잃기 마련이잖아.
몸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도 머리를 자른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해. 사람은 외모에 아주 작은 변화만 생겨도 큰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지. 그만큼 보이는 것들로 많은 걸 판단하게 되고, 외모가 중요한 세상이니까.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잖아. 외모가 그만큼 권력이 되고,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적인 기준은 수천 년 전부터 계속 존재해 왔으니까. 시대에 따라 여러 체형에 대해 과하게 대상화하거나 비하하는 단어들이 정말 많아. 대두, 어좁이, 단신, 숏다리, 남상, 멸치남, 절벽녀, 베이글남/베이글녀, 꿀벅지, 초콜릿 복근 등등… 이런 외모 평가적인 단어들은 때로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가 되기도 하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해. 그만큼 외모에 집착하고, 외모에 열광하는 세상인 것 같아.
그래서 이상적인 미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긍정하기 어려워하지.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게 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때로는 과도한 미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 몸을 깎고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견디면서 몸을 혹사시키기도 해.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나는 성별 이분법으로 나뉜 외모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사람으로서, 다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재된 원인으로 불편감이나 사회적 차별도 견뎌야 했었지. 나는 사회적 기준인 여성성 혹은 남성성에 맞출 수 없는 사람이잖아.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나만의 추구미를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기로 결심했어. 나만의 개성을 살린 독보적인 추구미를 찾고 싶었고, 남자 같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나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 남자 같은 여자가 아니라, '중성적인 사람' 그 자체로, '나답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어
신체적 매력을 찾기 위해 스트릿댄스와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어. 그걸 통해서 내 몸을 긍정하고, 나만의 추구미를 찾아갈 수 있었지. 수없이 많은 날들 동안 거울 속 나와 싸우고, 연구하면서 내 최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했어. 내 특별한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났던 모든 댄서들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없이 친절하게 춤을 가르쳐 줬고, 지금의 나는 예전에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오히려 나만의 독보적인 표현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해.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 그 자체로. 또 동작을 표현하면서 '자유로움' 그 자체를 느끼게 되었어. 아직 춤을 잘 추게 되진 못했지만, 힙합도, 힐댄스도, 발레도, 스트릿을 비롯한 모든 장르의 춤들을 사랑하게 되었어. 춤을 춘다는 그 자체가 너무 즐겁고, 경계를 초월해서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사실 춤은 ‘성별 이분법적’이지 않아. 브레이킹이나 크럼프장르를 하는 여성 댄서들도 많고, 힐댄스나 왁킹을 하는 남성 댄서들도 많아. 사실, 성별 이분법적으로 나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제한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어. 춤은 정답도 경계도 없는 예술이야. 모두가 각자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아름다운 동작들을 자신만의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지. 춤을 추는 순간에는,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주인공인 내가 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어.
Shall We Dance?라는 나의 첫 에세이는, 춤을 통해 내 몸과 표현에 대해 스스로를 긍정해 온 일기이자 해방일지야. 이 글이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고, 독자분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댄서 '뚝딱 킹'이자 작가 '백안'이 되고 싶어.
사진 @jang_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