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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헤 Jul 05. 2024

드디어 여행 시작

다소 얼떨떨한 도착, 그리고 한인민박

...드디어!!!



5개월 전부터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


무한 예약과 검색의 나날들로 즐겁고 기대되고 골치 아프고 두근거렸던 시간들을 지나      


드     


디     


어     


여행 가는 날.     


여행 한 달 전부터 방 한쪽에 커다란 쇼핑백을 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여행 준비물들을 차곡차곡 챙겨 왔는데 막상 짐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다 챙겼다.      


오전 11시 비행기라 일찌감치 일어나 준비하고 인천공항에 당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비행시간이 좀 더 길어져 직항임에도 14시간 30분의 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에 시간이 긴 것도 상관없이 설렜다.      


*


사실 나는 비행 중인 시간을 참 좋아한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시간.      


물론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앉아있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는 진절머리 나게 몸이 불편해지는 순간들도 있지만-     

미리 긴 비행시간 동안 여러 가지 할 거리를 준비해서 간다.      

늘 비슷한 것들이지만 막상 일상에서는 잘 안 하게 되는 그런 것들.  

   


기내 할 거리 리스트

1. 읽을 책을 여러 권 다운받아간다.

2. 아이패드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다운받아두고 혹은 기내에 장르별로 리스트업 되어있는 영화를 보기도 한다.

3. 폰 사진첩에 대중없이 마구 캡처해둔 넘쳐나는 스크린 샷들을 정리, 분류, 삭제한다.

4. 그리고 폰 메모장에 있는 것들도.

5. 잠을 청해본다.


특히 3,4번을 작정하고 하는 편.

   

평상시에는 절대 시간 내서 못하는 일인데 나에게는 어쩐지 이 두 가지가 늘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해결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래서 이것들을 처리(?!)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두근거리기까지(정리 좀 좋아하는 편) 한다.      

     

*          


번외로 내가 기내에 필수로 챙겨가는 것들.     


기내가 보통 계절 상관없이 춥고 건조하기 때문에 인공눈물, 미니 바세린(입술, 손 등 다양하게 쓰기 좋음), 가습 마스크(목 보호),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양말, 슬리퍼를 챙긴다.   

   

나는 평소에도 하루에 최소 3L 정도의 물을 마시는 편인데 장시간의 비행에는 그냥 생수보다는 텀블러를 챙겨 가는 게 좋더라. 물 한 컵 달라고 하는 것보다 보통 물을 많이 담아주시기 때문.     


그리고 당연히 아이패드, 이어폰, 보조충전기.      


5시간이 넘어가는 비행일 때는 화장도 지우고 있는데, 마스크팩까지 야무지게 착 올려서 촉촉하게 피부 보습해주고 있으면 얼마나 개운한지 여자분들은 다 아실 듯.     

 

또 중요한 건 몸을 조이지 않는 편한 속옷과 옷.      


*     


보통 12시간 넘어가는 비행에서는 그래도 서너 시간은 자는데 이번 비행은 1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자고 내내 깨어 있었다.      


덕분에 기내에서 하루를 살 듯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조금 괴로웠지 아무래도) 12시간 이상 비행기에 타고 있으니 몸이 실시간으로 붓는 게 느껴졌다.


발목과 다리 부분이 특히나-

나는 아침에도 잘 안 붓는 편인데 말이지.     


*     


거의 대한항공만 이용하다 보니 늘 비슷한 기내식이 지겨워 ‘특별 기내식-저염식’으로 미리 신청 두었었다. 왜 블로그 후기를 보면서도 나는 몰랐을까.


그것이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내가 신청하고 왜 내가 차별받는 이 느낌...

환자 식사 같은 간결한 맛...

다시는 시키지 않을 것... 노트...      


*     


밀리의 서재에 다운받아온 <메리골드 마음세탁소>을 다 읽었다. 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들을 짜깁기해 놓은 듯한 소설이었지만 한 번도 책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었으니 몰입력은 좋았달까.     

 

한 권의 완독을 시작으로 긴 비행시간 동안 영화 세 편과 책 한 권을 읽었다.    

 

물론 사진첩과 메모장 정리도 꽤나 많이 해치웠다.               


성공적.      





런던 도착



먼 나라로의 여행의 시작은 집에서부터.     


도착지까지의 시간이 20시간이 넘어가는 나라들은 여행지에 도착한 날 이미 모든 피로를 다 안고 시작하는 느낌.     


그래서 나는 도착시간은 되도록 이른 오전에 떨어지게 잡지 않는다. 여러 번의 경험상 점심과 저녁 사이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시차 적응하기 좋았다(사실 그냥 시차적응 바로 하는 편).     


물론 이건 일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일주일 이내면 그냥 최대한 빨리 가서 최대한 늦게 오는 비행 편을 예약해야죠?)     


점심과 저녁사이에 도착하면 숙소 체크인도 용이하고, 너무 피곤하면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이대로 흘려 보내긴 아쉬운 여행의 첫날을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며 약간의 여행 기분을 느끼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          


런던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      


한국에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영국에 도착하니 21시간째 움직이고 있었고, 본래 잠이 많은 편이라 한 14시간 정도 깨어 있을 때부터 졸려하고 20시간이 넘어가면 힘들어하는데 노는 거라 그런지 기가 막히게 멀쩡했다.     


나 자신 대견해.

눈치 기가 막혀.     

 

그렇게 하루의 여행 같은 시간을 지나 도착한 곳.     


*     


도착하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아 나 지금 영어 탑재 안 되어있는데’


너무 편안한 기분이었는지 영어가 바로 안 나왔다.      

프리토킹이 능한 편도 아닌데 요 몇 년 영어 쓸 일이 전혀 없다 보니 + 영국식 영어를 들으니 잠시간 머리가 작동을 멈췄다.      


해외에 혼자 나갈 때는 감각이 예리하게 좀 날이 서 있어야 하는데 텐션 없이 늘어진 기분.      


차라리 이태리어, 스페인어 이런 것들은 아예 생경하니 적응 아닌 적응이 됐었는데 익숙하다면 꽤 익숙한 영어가 악센트가 달라지니 다른 말 같아서 더 어리둥절해서 버퍼링이 걸렸다.      


*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까지 왔는데 지상으로 올라와서 길 찾기 실패. 보통은 지도보고 혼자 길 바로 잘 찾아서 여행할 때 문제가 없었는데 장시간 깨있었던 여파인지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거의 24시간째 깨어있던 터라 나는 그만 갈피를 못 잡고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런던의 한복판에서 아주 멍한 순간을 맞이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현장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런던 한복판에서 크게 들이쉬던 숨     


낯선 냄새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나의 첫 한인 민박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조차 안 가본 내가 한인 민박이라니...!!!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게스트하우스건, 룸 쉐어나 하우스 쉐어하는 에어비앤비건, 한인 민박이건 일체 가본 적 없는 나.     


그런데 영국 물가는 생각보다 높았고 7월 성수기에 좋은 위치에서 5박을 자자니 비용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이럴 때 혼자 여행자가 힘들다. 1/2만 해도 훨씬 갈만했을 텐데).      


여기저기 서칭을 해보다가 결국 허름한 호텔을 가느니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어있는 한인 민박을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스스로에게 많은 양보 끝에).     


그래도 룸 쉐어까지는 못하겠고 혼자 방을 쓸 수 있는 곳으로 골라서 결제를 했는데 무응답으로 취소당하고 차선책으로 예약했던 곳.      


그러다 여행 이틀 전에 더블 부킹이 되었다며 자신들이 다른 곳을 예약해 줄 테니 내가 숙소를 옮기면 안 되겠냐던 황당한 연락...(예...?). 실랑이 끝에 숙소를 옮기지 않기로 했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게 된 나의 첫 한인 민박.     


*     


숙소는 런던의 캠든(Camden)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홍대와 비슷한 느낌. 주로 젊고 힙한 사람들이 많고 낮에는 북적북적 사람들이 몰렸다가 저녁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한산해지는 곳이었다. 번화가에서 3-4블록 정도 들어온 곳에 숙소가 있어서 비교적 안전하게 느껴졌다.


꽤나 좋았던 영국의 날씨, 그리고 하늘


방이 3개, 주방과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이었는데 거의 1-2인실이라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게 조용했고 사람이 많지 않으니 씻는 시간이 달라 불편하지 않았다. 청소도 언제 귀신같이 왔다 가는지 늘 숙소가 청결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한인민박이 보통 조식을 주는 것과 달리 이곳은 조식도 없어서 그냥 한국인이 하는 에어비앤비의 느낌.     


5박에 80만 원 정도의 가격을 지불했으니 웬만한 호텔만큼의 금액을 지불한 곳. 이런 식의 하우스 쉐어라면 있을만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1박에 16만 원이라니요, 보통의 4성급 호텔에 버금 하는 금액인걸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운 것 빼고는 잘 있다가 왔다.      


방은 크지 않았으나 깔끔했고 작은 책상이 있어서 간단히 뭘 사 와서 먹기도 좋았고, 하루 끝에 아이패드에 그날 일기를 쓰기도 좋았다. 작은 빔 프로젝트가 있어서 화장하거나 준비할 때 음악 틀어놓고 갬성 있게 있었다. 다만 빔 프로젝트가 쏴지는 벽면이 침대 옆면이라 어떻게 해도 뭘 볼 수는 없었다는 게 함정 –그냥 인스타용 사진 느낌-     


옆으로 누워서 올려다봐야 겨우 보이던


아 나는 개인공간이 중요한데 이 숙소에는 방에 잠금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숙소에 물건을 두고 다닐 때 조금 신경이 쓰였고 잘 때도 조금 불안했다. 그나마 5일의 숙박 기간 동안 마주친 사람들이 거의 여자들이라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     


오랜만의 혼자 여행이라서 아예 낯선 호텔에 머무는 것보다는 한국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작은 덤이었다.      


그 부분 때문에 애초에 에어비앤비가 아닌 한인민박 키워드로 숙소를 잡았으니까.


썩 괜찮아서 큰 불만은 없었던 한인민박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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