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꿈이네 Jul 07. 2024

서랍매물 #2-17

매의 눈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어머, 마침 아직 네이버에 올리지 않은 매물 있는데 집 한 번 보실래요? 그 집도 신혼부부가 올리모델링 해서 살던 집인데 오늘 내놨어요"



올리모델링. 거기에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는 노출되지 않은 서랍 매물.



오늘 이곳에 잠시 들러보길 잘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네. 집 한 번 볼게요."



퇴근길에 이게 무슨 일인지. 집에 얌전히 도착해서 저녁 먹고 있어야 하는 시간에 어두컴컴한 타지에서 낯선 단지를 걷고 있다.



터벅터벅.

어색한 난기류가 아파트 단지 전체에 흐르고 있다.



"지금 살고 계신 분들은 왜 집을 파는거에요?"



매도인이 무슨 일로 집을 매도하려는지 물어본다. 집을 파는 이유도 중요하다고 유튜브에서 본 것 같다.



"아, 남편분이 천안으로 발령이 났대요. 그래서 이 집을 매도하고 천안 상상동에 있는 아파트를 매수하려고 한다네요."



나쁜 일로 이사를 가는 것은 아닌듯하다.



"잘 돼서 이사 가시나 보네요. 몇 동 몇 호에요?"

"203동 1601호에요."



"층은 참 좋네요. 그런데 1호 라인이면 사이드 아닌가요?"



사이드 집에 살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어른들로부터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사이드 집은 피해야 한다고. 겨울에 춥고 결로도 잘 생긴다고.



"네 맞아요, 그런데 사이드라고 해도 집마다 제각각이에요. 어떤 집은 결로가 잘 생기는 반면 또 어떤 집은 깨끗해요. 저도 아직 집을 보지는 못했는데 올라가서 같이 확인해 보시죠.."



두 눈을 부릅뜨고 정확하게 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호구 같은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굳은 다짐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삑. 16층. 문이 닫힙니다.



위이잉

스르르륵.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복도에는 오짬호수공원의 야경이 펼쳐지고 있다.





띵동-

"부동산입니다~ 집 보러 왔어요~"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새댁이 우리를 반겨준다.



"안녕하세요^^ 편하게 둘러보세요^^"



새댁의 눈웃음에 긴장을 놓지 않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매의 눈으로 냉철하게 집을 볼 것이다. 내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단점만을 바라볼 것이다.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집 안에 들어간다.



러브하우스의 BGM 대신 조성모의 [다짐]이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 빠라바빠바 빠바. 오~ 그때 내가 아니야~♬ ]





데구르르. 데구르르.

눈알이 요리조리 움직인다.






[현관]

전실 확장, 신발장 깨끗.

"오..''



[거실]

화이트톤의 인테리어.

대리석 질감의 바닥재.

새로 교체한 샷시.

'와...'



[주방]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는 식기류.

감성적인 식탁등.

'진짜..'



[베란다]

약간의 곰팡이 흔적.

'그래. 이 정도쯤이야...'



"@&#(!@*#*(!"



옆에서 부동산 아주머니가 뭐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이 집의 주인이 되고 싶다.



"집 진짜 예쁘게 잘 꾸며놓으셨네요. 살림을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와버렸다. 더 튀어나오기 전에 얼른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 이러다 매도인 콧대라도 올라갈라.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집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이프와 상의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온다.



쿵쾅 쿵쾅.

심장이 빨리 뛰고 있다.



나 지금 이 집을 사랑하게 된 건가.

나 설마 너 좋아하냐.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이 집은 곧 팔릴 것이 분명하다.



"소장님. 와이프와 상의해 보고 내일까지 긍정적으로 답변드릴게요. 다른 사람한테 이 집 보여주지 마세요. 일단 찜 해놓고 싶어요."



부동산 아주머니가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 ^^..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그런데?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가격은 안 물어보고 사시게요..?^^"



아차차.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고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지 않았다.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아 그렇네요. 내 정신 좀 봐.. 얼마에 내놨어요?"



부동산 아주머니가 침을 한번 삼키더니 대답한다.

"2억 5천이요!"



2억 5천?

2억 5천이면 역대급 신고가다.

내가 가장 비싸게 주고 사는 거란 말이다.



그런데 요즘 오픈톡방을 보면 본인이 신고가 찍으며 입성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요즘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인가 보다.



그리고 더군다나.. 이 집의 컨디션이면 내가 최고가를 찍어줄 만하다.



"2억 5천이면 신고가인데.. 집 가서 와이프랑 상의해 보고 내일 답변드릴게요.."



"네 기다릴게요^^"



코끝이 살짝 시린 이 초겨울의 날씨에도 마음만은 뜨끈뜨끈하다. 아니다. 뜨끈뜨끈이 아니라 두근두근인 건가.



왠지 느낌이 좋다. 퇴근길에 즉흥적으로 청주 오짬읍에 와본 것이 훗날 나의 투자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끼이이이익.

철컥.


 

깃털만큼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전 가는 KTX에 올라탄다.







다음화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정이 가는 동네 #2-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