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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Jul 18. 2024

계좌.. #2-19

매도인, 눈치 좀 챙기세요!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음 날, 

청주시 오짬읍.



「 별빛이 흐르는 저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 」



아니지. 가사가 너의 아파트가 뭐람.

이제 곧 나의 아파트가 될 건데 큭큭.



콧구멍으로 새어나오는 콧노래를 막을 방법이 없다. 등에는 날개가 달리기라도 한 건지 발걸음도 매우 가볍다.



어제 와이프의 승인도 받았고, 

동생 개꿈이의 명의도 구해놨다. 

거기에 계약금까지 모두 준비 완료.

오늘의 나는 더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부동산 아주머니, 매도인과도 미리 약속을 잡아놨다. 날 밝을 때 집을 다시 한 번 보기로.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도 끝내준다.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따스한 햇살과 쾌청한 하늘.

하늘도 나를 돕는구나.



스르륵.

16층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어쩌면 내 집이 될 수도 있는 아파트 현관문이 열린다.



킁킁. 

달콤한 디퓨저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이 집은 냄새도 좋네.. 포근하다..'



몇 발자국 걸으니 거실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본 거실의 전경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샤랄랄라라 ♥

어제보다 더 깨끗하고, 밝고, 예쁘다.



순간 나긋하게 '사랑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이 집과 벌써 사랑에 빠진 것만 같다. 이런 푼수떼기.



주방과 안방, 욕실을 거쳐 다시 현관으로 나온다. 굳이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없다. 이미 머릿속에는 계약은 물론, 훗날 매도할 때 양도세를 투덜거리고 있는 상상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집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정 후에 연락드릴게요^^"



뚜벅뚜벅.

집 밖을 나와 부동산 아주머니와 단지 안을 걷는다. 



"총각, 바쁘세요? 안 바쁘면 사무실 들러서 따듯한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세상 친절한 부동산 아주머니. 이 아주머니에게 고마워서라도 계약을 하고 싶을 정도다. 



"좋죠"




뜨거운 믹스커피 한 잔이 나온다. 

물이 살짝 많긴 하지만 아무렴 뭐 어떤가.



그러고보니 나는 분명 믹스커피를 먹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동산만 오면 이 믹스커피를 먹고 있다. 



심지어 맛있기까지.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 가는건가.





자, 이제 커피도 나왔겠다 본격적으로 계약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차례.



"소장님, 이 집 계약하고 싶습니다. 혹시 매매가격 조절 가능할까요?"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매매계약 의사를 밝히며 매매가격 협상을 부탁해본다. 



"조율은 일단 해봐야죠. 제가 매도인과 통화해볼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부동산 아주머니가 망설이지 않고 매도인에게 전화를 건다. 매도인 역시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의 매도인 목소리와 부동산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콜라보를 이루어 부동산 사무실 전체에 울려퍼진다. 짬짜면 이후 최고의 콜라보.



"그래도 서로 서운하지 않게 이 정도는..^^.. 아~~ 예^^ 감사합니다. 손님에게 전달할게요"



어느정도 협상이 진행된듯 하다. 

전화가 끊기고 부동산 아주머니가 입을 연다. 



"매도인이 조율 해주지 않으려 하는거 제가 부탁 좀 했네요..^^ 서로 서운하지 않게 200정도 조율해서 계약하시는거 어떨까요?" 



오 옛스. 

됐다. 



한 푼도 안 깎아줄 줄 알았는데 협상에 성공했다.

사실 안 깎아줬어도 계약 했을텐데. 크킄. 



이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다섯 글자를 이야기 할 차례다. 



호롭. 



믹스커피 한 잔으로 목 좀 축이고.

떨림 없이 최대한 낮고 근엄하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드럽게.

십이지장에서부터 목소리를 끌어올려 이야기한다.





"계좌 주세요"





[2021. 12월 어느 날]

매도인과 협의한 계약일.



동생 개꿈이의 인감을 챙겨 오짬읍으로 향한다. 

오늘이 바로 본 계약일이기 때문에.



짤랑-

"안녕하세요!"



부동산에는 이미 매도인이 도착해있다. 집 보여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오늘은 어딘가 어색하다. 원래 계약할 때는 이렇게 어색한 게 정상인건지.



한마디 말없이 도장을 마구마구 찍어 내려간다.



턱.

턱.

턱.



[특약]

* 매수인이 매매 후 전세를 임대하는 것으로, 매도자는 전세 계약에 협조하여 주고 전세 계약금은 매매 중도금으로 한다. 



특약 문구를 확인한 매도인의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낸다. 

"이 집 전세주려고 하시는거에요? 갭투자 비슷한건가?"



나를 투기꾼으로 보는듯한 눈빛.

약간은 공격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말투에 기죽을 내가 아니다.

거짓말을 섞어 대답한다.

"갭투자는 아니지만 지금 당장 살지는 못해서 일단 전세 주려구요."



매도인의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숨도 안 쉬고 받아친다. 

"앞으로 집값이 올라갈 것 같으세요?"



이런 호로자슥. 

집 사는 사람 앞에서 이게 무슨 말이래. 그럼 올라갈 것 같으니까 집을 사지, 떨어질 것 같으면 내가 집을 왜 사냐?



당황하지 않고, 

왼쪽 정강이를 로우킥으로 가격 후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 팔꿈치로 머리를 똬악-

끝.



을 외치고 싶지만.

후 참자.



다시 한번 가면을 장착하고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사 놓고 싶어서요"



매도인의 남편이 또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부동산 아주머니가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자른다. 이영표급 인터셉트.



"이것으로 오늘 매매계약은 모두 끝났어요^^ 매도인 분은 매수인이 전세 세입자 구하는 것에 잘 협조 부탁드릴게요^^"



생각보다 간단했던 매매계약이 끝이 났다.


.

.

.


가슴 벅차다.

나도 이제 2주택자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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