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롱헤롱@@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021년 12월 노량진.
회사 동기형들과의 모임일.
쿠궁쿠궁. 쿠궁쿠궁.
[이번역은 노량진, 노량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발걸음이 경쾌하다. 헬스를 한 것도 아닌데 어깨가 쭈욱 펴지고, 가슴이 탱글탱글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렇다.
나는 이제 예비 2주택자다.
노량진역의 가냘픈 육교를 사뿐사뿐 걸어간다. 매일 노량진역을 지나치며 '저기 노량진 수산시장은 언제 가보나..'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 곳으로 가고 있다.
오늘의 모임은 동기 모두가 모이는 것은 아니다. 동기회 안의 소모임이라고나 할까. 부자가 될 사람들.
부동산과 재테크에 관심 많은 소수 4명만 따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동기일지라도 누군가는 집값 얘기에 민감하고 불편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노량진 수산시장에 첫 발을 들인다.
음. 비릿한 향기.
향기라는 말이 웃기긴 하지만 이건 향기다. 이렇게 정신없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비릿한 냄새는 소주 맛을 더 돋구워 줄 것이 분명하니까.
오늘의 메뉴는 방어. 시장 아저씨가 팔뚝만한 방어를 들어 싱싱함을 어필한다. 이놈만한 놈은 없다며 연기도 잘 하신다.
"형들 저 놈으로 하시죠. 형들보다도 더 힘이 좋아보이네."
형들도 흔쾌히 OK한다. 우리 형들은 항상 막내인 내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슥슥석석.
동기형들과 방어 해체쇼를 넋 놓고 바라 본다.
새빨간 속살이 벌써 군침이 삭 돈다. 얼른 저 방어 뱃살에 소주를 들이키고 싶다. 그러고보니 어제 청주 오짬읍 아파트를 계약하고 제대로 된 축하주를 먹지도 못했다.
"자! 총각들! 방어 손질 다 됐습니다!"
총각은 무슨.
나는 유부남이고 여기 형들은 노총각들인데.
어쨌든 방어 손질과 포장까지 모두 끝났다.
그런데.. 이 방어를 어디 가서 먹는다는거지.
"근데 우리 어디가서 먹어요?"
동기 활영이형이 대답한다.
"아! 허허허 북꿈아 여기 내가 자주 가는 초장 집 있어. 거기 가서 먹자. 전망 좋은 집이라는 곳인데 뷰는 기차 뷰야. KTX, 무궁화호, 1호선 다 다녀ㅋㅋㅋ"
철길 뷰가 뭐가 전망이 좋다는거지.
이 형 철덕인가.
그렇지만 이 형에게 말 대답을 할 순 없다. 왜냐면 생김새는 러시아 마피아처럼 생겼고 주먹은 또 최홍만과 비슷하기 때문에.
별 시덥찮은 농담으로 받아쳐본다.
"전망 좋은 집? 그거 야한 영화 아니에요?
활영이형이 장난으로 미간을 찌뿌리며 이야기한다.
"아갈 묵념"
흠칫.
"넵.."
[ 한 잔 두 잔 술술 넘어 갈 마다 꼬였던 날들이 풀리고 기분이 끝내줘 눈이 풀리고 oh ♬ ]
BGM 마저 완벽하다.
아니 그런데 한 잔이 아니지.
소주 4병.. 맥주 7병..
현재시각 오후 4시..
꽤 많이 먹은듯 하지만 술은 아직 취하지 않는다. 부자가 될 사람들이라 그런지 생산적인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아참, 오늘 이 모임은 기연이형도 함께한다. 기연이형이라 함은 한 달 전 내가 포항 아파트 계약하려 할 때 구로역까지 나를 찾아와서 말려줬던 그 동기 형.
그런데 이 형.
오늘 좀 취한 것 같다.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져있다.
"키야~ 조오타! 아 맞다. 북꿈이 너 저번에 포항에 집 사려할 때 식겁했다 진짜. 오죽하면 내가 구로역까지 갔겠냐고."
똥씹.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 포항 집 저번보다 1000만원은 더 올라 있거든요? 그때 그냥 계약만 했어도 오늘 여기는 내가 사는건데.''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수많은 말들을 삼킨채 묵묵히 소주잔을 든다. 그리고 잔을 들이댄다.
짠-
.
.
.
소주 5병.. 맥주 8병..
헤롱.. 헤롱..
기연이형의 목소리 톤이 더 올라간다.
"김북ㄱ꿈! 너 진짜 나하테 고마워 해야 해.. 너 그거 포항 사쓰면.. 크닐 날 뻔 했다니까 진짜.."
이 형 조금 취했다.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아우 저 포항에서 대화 주제 좀 돌려 봐야겠다.
"형은 그럼 집을 몇 채 가지고 있는거에요?"
기연이형이 소주를 한 모금 털어 넣고 이야기한다. 이 형 오늘 죽을라나보다.
"나는 서울에 한 채, 지방 쥐포신도시에 한 채.. 그리고 저기 서해쪽에 땅 조금.."
쥐포신도시?
이름은 들어본 적 있는데 왜 거기에 투자한거지.
"쥐포신도시에는 왜 투자했어요? 거기 깡시골 아닌가?"
기연이형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마저 이야기 한다.
"분양가가 저렴하기도 하고, 앞으로 서해선 KTX 뚫리면 거기서 실거주 할 셍각도 하고 있숴.. 결호ㄴ 하면 거기에 정착하려규우."
아니 여자친구도 없는 사람이 무슨 벌써 결혼생각. 제대로 맛이 갔네.
기연이형도 대화 주제를 돌리려는지 나에게 질문을 한다.
"북꿈이, 너 요즈메도.. 부동샨에 관심 갖고 쥡보러 다니냐?"
마침 잘 됐다.
"네. 며칠 전에는 퇴근하다 청주 오짬읍에도 다녀 왔어요."
내 이야기를 들은 기연이형이 소주를 또 한 모금 들이킨다. 그러고는 기특하다는 듯 이야기 한다.
"너는 대전에ㅔ서 서우울로.. 큼. 출퇴근 하기도 힘들텐데 뭘 그렇게 돌아 다니냐ㅏ.. 안 피곤하냐. 너를ㄹ 보면 언젠가는 꼭 성공해서 부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드러. ㄱㅡ런데.. 항상 뭔가 좀 불안하고 급해보인단 말이지? 오짬읍은 어땠는데.."
혀가 꼬부라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인정 받은 것 같으니 기분이 좋다.
큼.
이제는 이야기 해야겠다.
소주를 입 안에 머금고 가글을 한다.
그리고는 꿀꺽..
심호흡도 한 번.
후
정적-
그리고 형들 모두 동시에.
뭐 그리 다들 놀라는지.
하긴.. 이제 막 30세에 2주택자가 된 것이면 놀랄만도 하지.
"추..축하해!"
"이야. .역시 갓북꿈 쏴리 질러어--"
"하. 내가 이 새키 사고 칠 줄 알았어."
그래도 형들이 이제 2주택자인 나를 축하해준다.
"북꿈이 너 잔 비워! 이모! 여기 막걸리 한 병 주세요!"
활영이형은 뜬금없이 막걸리를 한 병 더 시킨다.
그러고는 빈 잔에
소주
맥주
막걸리
다 섞은 폭탄주를 제조한다.
진짜 비율 개똥망.
"북꿈이 원샷해라! 원샷 못 하면 집값 떨어진다!!!!!"
장난?
그럴 순 없지.
벌컥벌커러럭.
푸우..
.
.
.
소주 8병.. 맥주 14병.. 막걸리 1병..
앞에 있는 형들이 동생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더이상은 무리다..
누가 몸을 땅에서 잡아 당기나.
몸이 왜 이렇게 무겁지.
온몸에는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푸우.
게슴츠레한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사람에게 문자 한 통을 남겨본다. 사실 아까부터 신경쓰였다.
[ 소장님, 전세ㅔㅔ 세입자ㅏ.는.. 앚직 안 구해져ㅆ쎠여? ]
그리고는 장렬히 전사한다.
푸우.. 푸르르으읍.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