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저 미소.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온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의 큰소리로 와이프를 부른다. 와이프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인다.
하긴, 내가 무언가에 들떠서 집에 오는 날이면 와이프는 늘 불안해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거니까.
조금은 진중한 태도로 와이프를 식탁에 앉힌다.
"잠깐 여기 좀 앉아봐. 나 할 얘기가 있어."
가슴이 콩닥거린다.
얼른 이야기하고 싶다.
드디어 우리가 1 주택자를 탈출할 만한 집을 찾았다고.
마음은 촐랑촐랑 신이 나 있는데 티를 낼 순 없다. 나는 지금 꽤나 진중한 남편이어야 하기에.
큼큼.
목소리도 좀 깔고.
"오늘 퇴근길에 청주 오짬읍에 있는 집 좀 보고 왔어. 동네도 괜찮고 그 집엔 신혼부부가 살고 있더라구. 인테리어도 화이트 톤으로 완벽하게 잘 되어 있어. 나는 그 집이 꽤 마음에 드는 상태야. 그래서 여보랑 상의 후에 매수해 볼까 하는데.."
와이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꾸가 없다.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여보 생각은 어때? 우리 다주택자가 되어 보는 거에 대해."
와이프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드디어 입을 연다.
"나는 조금 무섭긴 해. 옛날에 TV에서 역전세 같은 기사도 많이 봤고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야. 투기꾼 같기도 하고. 그런데 여보가 그렇게 해보고 싶으면 해 봐. 이런 것도 다 경험이니까."
귀엽다. 역전세가 걱정된다니. 앞으로 역전세라는 단어가 또 쓰이는 날이 오긴 올까.
"그런데 많고 많은 지역 중에 왜 하필 청주야? 그리고 동도 아니고 오짬 '읍'은 또 뭐람.."
순진한 내 와이프.
오짬읍을 단순한 읍으로만 보다니.
이곳이 호재가 얼마나 많은 곳인데.
흙 속의 진주를 못 알아보네.
"여보, 오짬읍은 단순한 읍이 아니야. 청주에서 연령대도 가장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그런 동네라구.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고서 하나 작성해서 줄 테니 나중에 한 번 읽어봐."
투자 보고서라도 하나 작성해서 와이프에게 줘야겠다. 호기로운 나의 첫 투자 계획을.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 건데?"
와이프가 중요한 질문을 한다.
역시 이 여자. 평소에 부동산에 관심은 없는듯하지만 꽤 예리하다.
"일단 매매가는 2억 5000 정도고.. 전세는 새로 놔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인테리어도 잘 되어있어서 잘하면 2억 3000에 전세 세팅 가능할 것 같기도 해. 그럼 결론적으로 갭 2000에 기타 부대비용들 정도?"
"그래. 2000이면 괜찮네. 최악의 경우 리스크는?"
리스크까지 체크한다. 진짜 야무지네.
"최악의 경우는 역전세를 생각해야지. 그런데 설마 역전세라는 단어가 또 쓰이는 날이 오겠어? 그래. 혹시라도 역전세가 발생한다 치자. 그래봐야 3000만 원 정도 아닐까? 즉, 최악의 경우 2년 뒤 3000만 원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상황"
와이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름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라는 판단이 드나 보다.
와이프가 한숨을 한 번 뱉더니 이내 대답한다.
'오예'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영-차-를 외치며 허리춤을 흔들 뻔했다.
"아 맞다 여보. 우리 대전에 집 가지고 있어도 집을 또 사도 되는 거야? 세금 같은 거 더 안내?"
아차차. 취득세.
"일단 취득세가 8% 이긴 한데.."
청주는 조정 대상 지역.
조정 대상 지역의 2 주택은 취득세가 8%.
내가 놓칠 뻔한 것들을 오히려 와이프가 챙겨준다.
"나 잠깐 나가서 전화 좀 하고 올게.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
옷걸이에 걸려있는 롱패딩 하나를 머리끄덩이 잡아끌 듯 챙겨 입는다. 잠옷에 롱패딩이 조금 웃기긴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며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010-0000-1103
[내 동생 김개꿈] ☎
띠이- 띠이- 띠이-
컬러링이라고는 없는 담백한 연결음이 몇 번이나 울렸을까. 동생 개꿈이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왜"
"사랑하는 동생 뭐하슈?"
"뭐 하긴. NCS 공부하지. 술 마셨냐?"
"술 안 먹었거든~ 열심히 하네. 공부는 잘 돼가고?"
"뭔데. 왜 전화했는데."
"부탁할게 하나 있어서. 세금 때문에 그러는데 네 이름으로 집 하나 사도 됨? 너 귀찮은 일 없도록 하고 나중에 수익 나면 수수료 좀 떼줄게."
"허허. 드디어 미쳤구먼. 맘대로 해."
"오 개떙큐! 복 받을겨! 공부 열심히 해라. 돈 필요하면 엄마한테 얘기하고."
퉁명스러운 동생 김개꿈과의 통화가 짧게 끝난다.
취업 준비로 마음고생이 심할 텐데 형의 말을 믿고 알아서 하라는 저 마음씨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생에게 이런 부탁을 한 나 자신이 조금 밉기도 하다.
또 한 번 주먹을 불끈 쥔다.
'꼭 잘 돼서 동생에게도 보답해야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다시 올라간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참 이상하게도 생겼다.
잠옷 바람에 롱패딩 하나 걸친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삑삑삑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와이프가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다.
"금방 다녀왔네? 방법은 찾은 거야?"
"응. 우리 개꿈이 명의로 사자! 그럼 취득세도 1%야. 개꿈이도 맘대로 하라고 하네."
말은 이렇게 당당하게 했지만 혹시라도 와이프가 안 된다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그러나 와이프는 내가 걱정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대답한다.
"그래. 그렇게 해봐! 나는 우리 도련님 믿어. 북꿈이네는 형제끼리 돈이 오가도 의가 상할 관계가 아니야. 대신, 내일 밝을 때 부동산에 가서 집도 다시 보여달라 하고 동네도 다시 봐봐. 그래도 확신이 들면 이야기해요."
와이프가 인자하게 웃으며 나를 믿어준다.
와이프는 언제나 내 편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와이프의 웃음이 어딘가 미묘하다.
가만 보니 저런 웃음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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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엄마한테 자전거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엄마는 늘 다친다며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듯 엄마는 결국 나에게 자전거를 사줬다. 남들 다 있는 자전거 내 새끼만 없는 것은 또 싫었기에. 자식 기죽게 하기는 싫었으니까.
그때 엄마가 나에게
"다치지 말고 조심히 타."
하며 오묘하게 미소 지었던 그 표정이 있는데
지금 와이프의 미소가,
그때 엄마의 미소와 비슷하다.
다칠 것이 뻔히 눈에 보인다는 그 알 수 없는 미소.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