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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ul 13. 2023

(육아회고 7) 말의 힘

후회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말의 힘'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입니다. 저도 말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 잘 가르치고 싶었지만, 저도 몰라서 잘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제가 받은 교육의 폐해가 매우 컸습니다. 학교와 집에서는 매일 제가 무엇을 잘했는지보다는, 못했는지에 대해 지적을 들었고, 학교에서는 남보다 우수하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혼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체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잘못하지 않아도 제가 잘못을 한 학생과 같은 줄에 앉아 있다는 자체로 체벌을 받았죠. 매일 친구들과 비교당하고, 선생님의 폭언과 폭행이 용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교육 환경이지만,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학급에 70명씩이나 되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으니 그때는 선생님도 어려움이 있었겠구나 하고 이해를 하고 넘어갑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남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살았죠.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학위 공부를 하면서도, 남과의 논쟁에서 이기고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데만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과의 대화에서 타인을 인정하는 말보다는 타인의 주장을 부정하는 말과 타인의 약점을 찾아내는데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을 못 하긴 해도) 제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아이를 교육하는데도 나타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잘못을 고쳐주려고 하고, 아이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흔쯤 되어서, 교회에서 홍집사님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같은 성경공부반에 있었고, 제가 그분의 따님의 주일학교 교사였기에 종종 뵐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과의 만남에서 참 기억에 깊게 남는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느 길로 운전을 하시면 더 쉽게 댁에 가실 수 있는지 알려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매우 경청해 들으시고 제가 드리는 말씀을 고맙게 여겨 주시는 것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그곳에서 뵐 일이 있어서, 제가 가르쳐 드린 길이 도움이 되셨냐고 여쭈어 보니, 그분의 말씀이 길눈이 어두워서 평소에 다니는 길로만 다니신다고 말씀답변을 하시더군요. 참 죄송했습니다. 전 괜한 오지랖을 부려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말씀을 그분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누가 내가 앞으로 사용하지 않을, 나에게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를 준다면 나는 그분처럼 귀를 기울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까? 아마도 저는 그 사람을 면박 주거나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몰라서 아이를 잘 가르치지 못했고, 제가 깨닫고 난 후 가르치려고 했지만, 제 나쁜 본을 보고 배운 아이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어서,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점이 참 후회가 됩니다. 제가 지금 아이를 키운다면 세 가지 말하는 방법을 다시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매우 다행히도 세 가지 중 한 가지는 알고 있어 서서 열심히 노력은 했습니다. 그래도 잘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 인정, 수용, 반응  

2) 주어는 나 

3) 저주의 힘 




1) 인정 (acknowledge), 수용 (acceptance), 반응 (response) 

세상을 살다 보니 남을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었을 때, 타인은 감정을 누그러뜨리게 되고, 더욱더 대화에 적극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아이가 어떤 말을 하던 먼저 인정을 해 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밥을 먹기 싫고 과자를 먹고 싶다고 하면, 예전의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엄마가 힘들게 차려준 밥이나 먹어. 너 자꾸 그러면 아빠한테 혼난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저는 "아 우리 XX가 과자 먹고 싶구나? 왜 오늘 과자를 못 먹었니?"라고 물어보겠습니다. 아이게게 아이의 주장이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그리고 아이가 "응 오늘 한 개도 못 먹었어"라고 대답한다면, 미래의 저는 "그렇구나, 나도 하루종일 과자를 못 먹으면 먹고 싶을 것 같아"라고 아이의 주장을 '수용'해 줄 것입니다.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이의 주장이 맞다고 '동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 나서, "하지만 우리 XX가 지금 밥을 먹지 않으면, 이걸 힘들게 차린 엄마는 속상할 것 같아. 그리고 다시 밥을 차리기도 힘들고. 그러니깐 평소보다 밥을 한 수저 적게 먹고, 밥을 먹고 나서 과자를 먹을까? 아빠가 엄마에게 얘기해 줄게"라고 마지막으로 제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다. 


2) 주어는 나 

아이를 키우다 보면 혼낼 일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지적하고 그것이 왜 잘못인지를 설명하는 절차를 거쳐서 아이에게 혼을 참 많이 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와 잘못이 동일인격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잘잘못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수정을 강요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의 잘못이 내 감정을 어떻게 상하게 했는지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아이의 "잘못"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아이와 잘못을 구별하고 객관화시켜주려 하여도, 어린아이는 자신과 잘못을 구별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위의 과자의 예를 들자면, "밥을 안 먹고 과자만 먹는 것은 나빠!"가 아니라 "아빠는 XX가 밥 대신에 과자만 먹어서 몸에 병이 날까 봐 걱정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럼 아이는 아빠가 왜 밥대신 과자를 먹는 것을 말리는지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3) 저주의 힘 

저는 말은 저주의 힘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말을 쓰지 않으려고 늘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같은 잘못을 했을 때, "야 이 바보 멍청이야, 넌 어떻게 하는 게 다 그 모양 그 꼴이냐?"라고 제가 아이에게 말을 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바보고 멍청이며, 앞으로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은 다 엉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는 아이는 오히려 더 많은 실수와 잘못을 하고 스스로의 행동에 자신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은 자명하고요. 전 자신의 능력을 규정지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을 정말 수없이 봐왔습니다. 하기 전에 자신이 못할 것이라고 규정지으며, 시도를 해도 못합니다. 아이에게 실패를 한 것에 대해서 혼낼 것이 아니라, 시도를 한 것에 대해서 칭찬하고,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깨우쳐 주는 것이 더 밝고 희망찬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배움이 부족해서, 아이들에게 '말의 힘'을 잘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저보다 더 현명하시니 저보다 더 잘 가르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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