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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un 29. 2023

(육아회고 6) 운전과 육아

한 번에 한 발씩 

제가 사는 곳은 14살이 되면 수습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이 수습면허를 따면 면허를 가지고 있는 성인이 동승 시, 운전을 할 수 있으며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지난 후 정식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합니다. 혼자서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동반경을 넓게 하고 더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이기에, 그리고 운전이라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기에, 아이가 언제 면허를 따게 해 줄 것인지, 운전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등 운전과 관련된 일들은 이곳의 부모들에게는 큰 결정입니다.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다를지 모르지만, 아이가 틴에이저 일 때, 저에게는 참 큰 결정이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부부간, 가족 간에는 운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서로 간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하게 연결되어있다 보니, 과도한 기대와 교육욕심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딸아이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공기관에 속한 차량을 몰기 위해서, 추가 운전교육과 도로 연수를 받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식도 있었고 또 과거에 면허만 있고 운전경력이 없던 집사람의 도로연수도 직접 해주었던 터라 제가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서로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는 것을 느꼈기 대문에, 아이와 둘만 오붓하게 같이 시간을 쓸 수 있는 "quality time"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두 딸아이와의 운전 연습은 잘 진행되고 있고요. 이제 큰 아이는 운전이 많이 능숙해져서 이제 같이 나다닐 때는, 아이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기고 다닙니다. 이렇게 운전을 가르치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과 아이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것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큰다는 것은 “인생”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차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고 달려가는 것과 같은 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아이가 어리다 보니 부모가 그 차의 운전대를 대신 잡고 운전해 줄 수 있지만, 이건 그렇게 오랜 기간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점차 나이가 들어 자신의 운전석을 차지하게 되면, 부모는 어떤 차선으로 가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일일이 지시를 내리게 되지만, 이것도 역시 잠시인 것 같습니다. 점차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데로 차를 몰고, 부모의 말을 점차 듣지 않게, 혹은 안 듣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대신 운전해주고 싶은 때가 너무나 많지만, 인생이라는 차는 부모가 대신 운전해 줄수도 없고, 부모인 내가 대신하려고 해도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아이의 인생은 아이가 살아야 하는 자신만의 인생이고, 내가 오히려 아이가 값진 경험을 할 기회를 뺃을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킵니다. 이는 운전을 할 때,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위험해 보인다고 핸들을 마음대로 꺾었다가는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나고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더 조심하는 것입니다. 


운전을 가르칠 때, 대신 운전을 해줄 수는 없지만 안전하게 운전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은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의 운전 능력에 맞는 환경에서 운전을 하도록 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오늘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서 연습을 하는지 연습의 목적을 알려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물리적인 환경을 관리해 주기에 앞서서, 정신적인 관점에서도 관리를 해주는 것도 중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와 운전하기 전에 ‘차가 망가져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다른 차를 부셔도 상관이 없다. 초보이기 때문에 실수는 당연한 것이니 실수를 무서워하지 말아. 단지 실수를 줄이고 사람이 다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들만 조심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말을 해주면 아이가 긴장을 풀고 더 쉽게 운전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긴장을 하면 근육의 반응이 늦어지기 마련이며, 또한 근육이 긴장을 하면 평소에 하던 일도 잘 못하고, 때로는 근육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반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푸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이기고 성공하는 습관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좋은 기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억이 있어야 더 집중하게 되고, 또 그러한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며, 더욱더 많은 자신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프로 선수들을 봐도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있을 때와 자신감이 없을 때의 능력이 문외한인 제 눈에도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이는 매우 중요한 인자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맨 처음 운전을 가르칠 때,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시작을 한다. 기어를 가장 낮은 단수로 놓고 단순히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는 연습만 시키는 것이다. 맨 처음에는 차가 서고 가고를 반복할 때마다, 멀미가 날 정도로 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오히려 이 때는 수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습니다. 아이도 자신이 웃전을 못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에 화를 내지 않고 기분이 좋은 아빠를 보면 긴장이 서서히 풀어집니다. 그러다 자신이 엑셀과 브레이크를 좀 더 여유 있고 스무스하게 밟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죠. 맞습니다. 하나의 좋은 기억이 쌓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의 성취를 해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그리고 그에 맞추어 저는 무엇이 늘었는지 칭찬을 해줍니다. 그러고 나서는 차를 오른쪽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회전하는 연습을 합니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게 돌지 않기 위해서 연습을 하는 것이죠. 차를 멈추어 두고 목표한 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내려서 살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운전에 자신감을 갖도록 한다. 이러한 연습 속에서 적당한 칭찬과 비평은 필수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빠가 무조건 혼내는 것이 아니라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알려주어서 자신을 나아지게 한다는 것을 아이가 믿도록 도와주는 과정인 것입니다. 육아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정확히 제시해 주고 그 목표를 완성했을 때 칭찬을 해주며, 그 작은 목표로 나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고칠 수 있도록 성취가능한 교정(correction)점을 주고 그것을 고칠 때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지루한 연습이 끝나면 한적한 도로에서 도로주행을 하게 되는데, 아빠로서는 이때가 정말 살 떨리는 순간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무섭기 때문입니다!” 차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꼭 잡고, 손바닥의 땀을 연신 닦으면서 고도의 스릴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을 맞기도 하죠. 큰 아이의 첫 도로주행에는 차선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시내 순환고속도로를 타기도 했고, 그 후에도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와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비명을 지를 만큼 놀랄만한 일도 종종 생기고,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아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지금 여러 장면들이 눈앞을 스쳐가시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몫만큼의 실수를 해야 하고, 제가 그 실수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는 그 실수가 일어나지 않게 조언하고 또 실수가 미치는 영향이 작을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실수를 원만히 헤쳐나가면 그만큼의 신뢰가 더 쌓이는 것 같습니다. 첫째가 후에 말하기를 시내 순환고속도로를 타고나서 아빠가 엄청나게 화를 낼 줄 았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모습으로 어떻게 고속도로에서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면서 긴장 풀어주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압니다. 그렇게 잘못을 했을 때, 부모의 반응에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전 아이들이 그런 상황에서 놀라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 대학원을 다닐 때, 과외를 오래 했습니다. 별로 잘 가르친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좋은 선생님도 아닌 것 같지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여러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그중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때는 사촌 동생을 가르쳤을 때인 것 같습니다. 애정을 갖고 가르치는데 따라오지 못하는 동생이 속상하기도 하고, 내 맘처럼 열심히 해주지 않는 동생이 안타깝기도 했죠.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까 하고 많은 고민을 해서 내가 공부할 때 앓아보지 못한 두통도 앓았었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고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 사촌동생도 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형이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도, 그 기대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열심히 공부해도 마음처럼 오르지 않는 성적도 그 친구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경험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몇 가지 배웠습니다. 첫째는 내 애정이나 내 감정이 앞선다는 것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르치는 것은 참을성을 가지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면서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 나의 동그라미가 있는데, 그 동그라미가 너무 많이 겹쳐서도 또는 너무 적게 겹쳐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아이의 동그라미는 매우 작고, 나의 동그라미는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제 동그라미가 아이의 동그라미를 완전히 덮어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야만 합니다. 밥 먹는 것 대소변을 포함한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 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와 같은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조차도 계속해서 돌보아 주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해를 지내다 보면 부모는 어느 순간 부모의 동그라미가 아이의 동그라미를 완전히 덮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고 육아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저희 부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교 첫날, 엄마 아빠의 손을 놓고 씩씩하게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상실감을 느꼈던 적도 있고 아기가 자기의 주장을 하기 시작할 때 당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제가 왜 서운한지, 상실감을 느끼는지, 당황해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를 키워가면서 내가 아이의 삶에서 한 발씩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만, 언제 얼마나 빨리 또 얼마만큼 물러나야 하는지는 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아이에게 운전을 가르칠 때 어느 정도까지 위험에 노출시켜도 되는지, 언제 혼자 차를 가지고 나가도록 차키를 주어도 되는지와 같은 어려운 문제보다도 수십 배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빠 노릇은 처음이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고 그리고 모든 아이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또 아이의 동그라미가 균일하게 커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책임감에 그 동그라미의 크기에 맞게 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일률적으로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단지 끊임없이 아이를 관찰하고 조용히 대화하면서 아이의 크기를 알아갈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제 거리도 계속 조정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정확히는 못 맞추지만 나도 너희의 삶에서 한 발씩 멀어지면서 너희들에게 더 큰 자유와 책임감을 주려고 한다고 얘기를 하고 그렇게 맞추어 나가는 것 외에는 이 평범한 아빠에게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자라나는 아이와 처음으로 아빠노릇 하는 불완전한 두 당사자가 상대방의 어려움과 부족함과 노력을 이해했을 때, 성공의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It takes two to t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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