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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un 14. 2023

(육아회고 4) 받아들이기

생물의 우선순위

모든 생명체에게 가징 중요한 명제는 “생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 혹은 자신이 생존의 확률이 희박하다고 생각되면, “번식”에 집중합니다. 자신이 우점(다른 생물보다 생존에 우월하게 되어)하게 된 경우 경쟁에서 이겨서 남는 그 잉여 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종을 보존하고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서 번식을 하게 되고, 후자처럼 더 이상 살 수가 없게 된 생물이 종의 보존과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모두 번식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는 빨리 커서 다른 나무들의 머리 위에서 모든 빛을 가려서 다른 나무들이 더 이상 자신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적당한 수의 종자를 생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자들은 부모에게 충분한 영향을 받아, 튼튼하고도 큽니다. 거꾸로 다 죽게 된 소나무들이 여윈 몸 위에 솔잎도 몇 개 달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솔방울을 주렁주렁 만듭니다. 모든 에너지를 다 짜내어서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요. 


저는 인류도 생물이기 때문에 인류도 이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유아와 아동은 식물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도 그 생존을 부모에게 훨씬 많이 그리고 장시간동안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을 봐도 인간보다 생존을 부모에게 더 많이 더 오래 의존하는 생물은 찾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옷을 입고 밥을 먹는 등의 최소한의 의식주를 혼자서 해결하는데 최소 5년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발달된 사회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려면 최소한 18년(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정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슴이나 코끼리의 새끼가 엄마배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걸을 수 있고, 단지 일이 년이면 스스로 먹이를 찾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매우 긴 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더욱더 양육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렇기 배고픈 갓난아이는 자기의 목청이 터져라 우는 것일 것입니다. 배고픔은 자신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누군가가 자신을 먹여주기 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목숨을 걸고 그렇게 우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의 생명이 이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을 그 누군가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영혼에 새겨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모의 감정과 생각을 읽는데 최선을 다하고, 제가 읽은 책들의 몇몇 저자들은 이러한 갓난아기들은 부모의 감정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어린아이들도 전혀 기대치 않게 부모 마음에 쏙 드는 부모가 원하는, 하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대답을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리고, 부모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을 배워버린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자신의 생명이 더 이상 부모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닷게 되고 난 후, 자신의 의견을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관철시키는 “미운” 아이로 돌변하는 것  역시도 종종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아이에게 바라는 저의 속마음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마음을 초능력자인 아이가 읽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아이는 제 마음을 흡족하기 위해서 연기를 하거나 노력을 할 것이며, 그에 따라 아이의 본질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숨기는 데는 크게 재능이 없는 저였기에, 아이에게 정말로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가 되는 것을 진심으로 비는 것이지요. 저를 위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행복한 사람이요. 그러므로 저는 아이에게 "아이 존재에 자체에 대한 (to be) 사랑"을  주는 것이지 "아이가 하는 행위나 아이가 소유한 것(to do or to have)"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의 행위는 고맙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것과 아이에 대한 사랑은 다르다는 것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 주려고 노력했죠. 


아이를 키우면서 후에 느낀 것이지만,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을, 그리고 부모의 생각을 읽으려는 노력을 훨씬 더 오래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중학교 2학년때로 기억합니다. 하루는 아이가 자신이 여름방학에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더군요. 전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야, 원하는 전공을 하고 싶으면 그 전공학과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하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혹은 일등을 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아이가 학원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왜 학원에 다니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냥"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네가 원하면 다녀, 하지만 다니기로 했으면 열심히 해야 해"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몇 주일쯤 있다가 어느 학원에 등록을 해줄까라고 물었더니 안 다닌다고 하더군요. 몇 달 후 아이에게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말인즉슨 모든 동양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고, 아빠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니 자신이 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아빠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자신이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더 이상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때 다시 한번, 부모의 사소한 행동과 말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빠에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하고 그 대화를 끝냈습니다. 




저는 독실한 기독인은 아니자만, 조그만 믿음을 가진 신앙인으로서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다고 믿습니다. 내가 보기엔 내가 남보다 가진 것이 적어 보이고 남보다 재능도 적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균등한 잣대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고 않고 똑같이 주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작점에 같은 양을 가지고 시작할지라도 우리가 가꾸고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가 후에 가질 수 있는 것의 양과 질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아이의 재능을 잘 판단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는 아이가 모자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끈기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도록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재능이 없다는 것은 "느리다"는 것이지 "안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배웠거든요. 저 같은 경우 거의 모든 공부재능을 수학으로 받고 어학 재능은 0에 수렴하는 경우였는데요. 수학은 참고서를 한번 다 풀면 그 참고서의 99% 정도를 기억하지만, 영어는 단어를 외우고 일어서면 까먹고 문법책은 읽어도 백지상태에 머무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이 어학의 재능은 평생 저를 괴롭혔지만, 영어권으로 유학을 가고 연구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를 해야 했습니다. 매일 4시간씩 약 5년 동안 영어공부도 하고, 작은 책장으로 하나정도 영어회화책을 외우니,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대화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게 되더군요. 이 경험을 통해서 인내를 배웠고, 아이들의 모든 재능이 제 영어정도라고 생각을 하니 인내를 가지고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영어속담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라는 말입니다. 이 속담은 아래서 보기에는 흑색의 진한 먹구름일지언정 그 위에는 해님이 더 반짝거리는 (구름에 수분 알갱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더 반사가 되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단점은 강점의 다른 면일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아이의 강점을 개발해 주면 그에 따르는 단점도 같이 커질 것이고 단점을 줄여주면 그에 따른 장점도 같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부모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단점을 부모가 억지로 없애려고 하는 노력도 또한 장점을 크게 하려고 하는 노력도 나름의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희는 늘 남의 것이 더 커 보이는 불완전한 눈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거나 "옆집의 잔디가 더 짙은 초록색인 것 같다" 등의 속담을 보면 이는 사람의 본성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아이를 온전하게 볼 수 있도록, 조력자로서 재능을 발견하고 같이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육아를 시작했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제가 아이를 육아하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제가 말하는 "받아들인다"는 표현이 어떤 생각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설명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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