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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Jul 28. 2023

(육아회고 8) 자랑스러운 아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강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착한 아들, 좋은 남편,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픈 욕심이 있었고 그러한 마음의 부담 때문에 제가 가진 것보다는 조금 더 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제 그릇이 작아서 이 세가지도 잘하기가 힘이 달리는 것을 곧 깨닫고, 이 중 좋은 아빠라도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게게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아빠로 보이고 싶다 보니, 아이에게는 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잘하는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는 제가 좋은 본을 보여주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좋은 본을 보고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TV를 보지 않고 책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책과 더 가까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아이의 실수를 더 받아들일 수 있으면, 아이도 조금 더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일등을 하고 우등생이 되라고는 얘기한 적이 없지만, 늘 노력을 하고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면, 매일 조금씩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1등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서 자신이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는 분야를 찾아서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 이러한 저의 노력이 어느 정도의 성과는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을 막 입학했을 때였습니다. 큰아이는 미국의 조그만 마을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적응도 잘하고 즐겁게 학교를 다녔는데, 초2 때 학교를 전학하고 나서 기가 죽어 보이고 교우관계에도 힘들어해서 마음이 많이 가는 아이였습니다. 그 후, 정규과목 이외의 여러 가지 단체활동도 하고 학교의 선생님들도 많이 도와주셔서 아이가 밝아지고 친구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게다가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본 수학경시대회에서 주의 여자아이 중 1등을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안심을 했었습니다. 제가 생각에, 그렇게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고 그러면 친구들의 관심도 받고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웬걸 아이는 학교의 친구들은 그 어느 누구도 수학경시대회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이는 점차 중학교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가 학교에서 오더니 레슬링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레슬링을 하면 만두귀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는 반대를 했습니다. 왠지 예쁘게만 자라 주었으면 하는 딸이, 힘들게 몸을 부딪치는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순진한 아빠의 마음이었지요. 어린 딸이 다칠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보통은 아빠 엄마의 말을 순종적으로 잘 듣던 아이가 너무나 서럽게 울면서 정말 꼭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는 자신은 아빠보다 수학이나 과학도 못하고, 엄마보다 음악이나 미술도 못하고 자신은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너무 서글프게 울더군요. 자신도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머리를 망치도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자 했던 노력이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짐이 되어 있었고, 아이의 비교 대상이 되어 있었고, 제가 만든 그늘이 아이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죠. 아이는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 때문에 아이는 고통받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아이의 앞을 막고 있었던 것이죠. 생각해 보면, 아이는 아빠와 엄마가 해보지 못한 레슬링을 해서, 자신이 비교당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아이가 레슬링에 소질이 있어서,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의 제일 좋은 클럽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습니다. 레슬링 특기생으로 대학을 가자고 꼬시는 코치들도 있었고요. 물론 좀 구식인 이 아빠의 만류로, 그리고 운동 특기생로 대학을 가는 것보다 공부해서 대학을 가는 것이 더 쉽다고 믿는 두 부모의 만류로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이 취미생활은 끝을 내었지만요. 하지만 매우 흥미롭게도 아이는 레슬링을 함으로써 학교에서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되었습니다. 친구도 엄청 많이 생기고,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다른 집 아이의 말을 빌자면 매일 수십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인사 한번 건네기도 힘든 학교유명인사가 되어 버린 것이죠. 덕분에 친구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학교생활에서 외로움을 겪었던 아이는 사라지고, 거꾸로 너무 친구가 많고 교우관계가 복잡해 보이는 아이가 되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아빠인 제가 보기에 너무 산만해 보여서 오히려 공부를 등한시할까 봐 걱정을 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공부를 할 때와 안 할 때의 점수차가 너무 많이 나서, 제 조언의 대부분은 그 편차를 줄이는 것에 집중했었습니다. 




육아의 걱정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만 그 반대급부로 또 다른 걱정이 생기고요. 하나의 장점은 다른 부분에서의 단점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레슬링 건으로 배운 것은, 어쨌든 간에 이건 아이의 인생이고, 아이가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선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잘한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른 것들에도 자신감을 갖고 밝은 아이로 바뀌더군요. 그리고 아이에게는 부모가 자신의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제 기억에 저는 제 부모님과 비교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 이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긴 합니다. 매일 느끼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과 성격을 가진 사람을 양육한다는 건 참 힘든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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