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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Apr 28. 2023

사탕단풍과 솔송나무의 소리 없는 아우성

사탕단풍과 솔송나무의 대리전쟁 


자연은 서로 사랑하고 나무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이전화에서 말씀드렸듯이 나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얼마나 처절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미국 위스콘신주의 북부에 있는 숲 중에 사탕단풍(sugar maple)과 캐나다 솔송나무 (eastern hemlock) 숲의 예를 사용하여 설명드려 볼까 합니다. 


그 해는 우리가 보통 송충이라고 부르는 나방 애벌레(tent carterpillar)들이 창궐한 해였습니다. 땅 위를 빼곡히 채우고 지면을 기어서 움직이는 모습이 군대의 행진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군대 벌래”라고도 불리는 벌레죠. 이 애벌레들이 얼마나 많았냐 하면, 숲 안에 들어가면 이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과장이 아니고 실제로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숲에서 보냈지만,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소리는 처음 들었고 그 소리가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놀랍고도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고 밖에는 설명드릴 방법이 없네요. 숲 안에서 수천만 혹은 수십억 마리의 애벌레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죠. 특히나 제가 연구하던 숲은 wilderness로 지정된 숲으로서, 자연의 원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동기(motor)와 바퀴(wheel)는 숲 안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이 엄청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감상해야 했죠. 


(source: https://lilianausvat.wordpress.com/2013/11/02/maple-forests/

가을에 붉은색으로 물든 사탕단풍의 잎은 참 아름답습니다. 사탕단풍은 캐나다의 국기로도 잘 알려져 있죠.)


한 번쯤은 드셔보셨겠지만, 사탕단풍의 수액은 메이플 시럽(maple syrup)이라고 해서 설탕의 대용품으로 쓰입니다. 제가 먹어보진 않았지만 사탕단풍의 잎에서도 단맛이 나기 때문일까요? 이 애벌레들도 편식을 하더군요. 영양이 많고 맛있어 보이는 사탕단풍의 맛을 즐기면서 더욱더 폭발적으로 그 수가 늘어났습니다. 잎이 하나도 없이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는 사탕단풍의 가지들을 보면서 불쌍함과 아련함이 솟아났습니다. 이 애벌레 군대의 지대한 영향으로 사탕단풍이 캐나다 솔송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겠구나 하는 것이 제 속마음이었습니다. 광합성을 해야 하는 잎을 모두 잃어버린 사탕단풍은 더 이상의 힘이 남아있지 않을 테니깐요. 


(source: https://www.coniferousforest.com/eastern-hemlock-canadian-hemlock.htm

삼각형 모양의 캐나다 솔송나무의 형태를 잘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 생각이 틀렸음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언제나 말씀드리는 종의 “생존”에 대한 열망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렇게 더욱 많은 수로 불어난 나방 애벌레들은 생존을 위해서 편식의 습관을 버리고 캐나다 솔송나무의 잎을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솔송나무도 무성한 잎을 다 잃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했죠. 


그럼 이 사건은 누구에게 더 이득이 되었을까요? 여기서는 활엽수와 침엽수의 성질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활엽수는 잎을 잃더라도 언제라도 잎을 만들어 내서 그 손식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에는 필요 없는 잎을 버리고 햇볕이 따뜻한 여름에 많은 수의 잎을 유지하곤 하죠. 하지만 침엽수는 가을에 잎을 만들어서 잎눈(leaf bud) 안에 곱게 모셔놓고, 이를 봄에 키운 후, 몇 년간 이를 이용합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침엽들은 3년 정도를 나무에 붙어있고 (다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떨어지긴 합니다), 이보다 추운 캐나다는 2년 정도, 지역과 수종에 따라서는 8년 이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작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 솔송나무는 이해 충분한 양의 양분을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해에 잎눈을 만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평소만큼의 잎눈을 만들더라도 그다음 해에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⅓ 정도의 잎밖에는 못 가지게 되는 것이죠. 결과론적일 수 있지만, 사탕단풍은 사탕의 달콤한 맛으로 나방애벌레들을 꼬시고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해서 이 애벌레들을 증식시킨 후, 자신의 경쟁자를 약화시킨 것이죠. 


이러한 자연의 복잡한 작동 기제 (mechanism)을 보면 볼수록 저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줍니다. 그리고 종족의 번식을 위해서 자신의 희생조차 감당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부모님의 사랑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또 나도 내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채찍질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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