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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y 12. 2023

사탕단풍과 솔송나무의 소리 없는 아우성 (2)

사탕단풍과 솔송나무의 애증관계 

전에 사탕단풍과 캐나다 솔송나무의 총성 없는 전쟁에 대해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전 편에서는 텐트나방 애벌레를 이용한 대리전(?)을 설명드렸다면, 오늘은 이 두 종의 공생과 직접적인 전쟁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볼까 합니다. 손자병법은 전쟁을 이해하려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으니, 먼저 이 나무들이 살고 있는 위스콘신 북부의 플라지팬 (flagipan)을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플라지팬은 정말 정말 특이한 토양층을 지칭합니다. 아직도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이 토양층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하다가 딱딱해지다가 하는 특이한 토양층입니다. 더 특이한 것은 토양층은 매우 조밀한 구조로 되어있어 물이 통과를 못하고 뿌리 역시 통과를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화성탐사 시 토양채취용으로 개발된 금속관을 오함마를 이용해 이 토양에 박아 넣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 금속관만 쭈그러지고 이 토층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단단합니다. 이 토양층은 보통 지면에서 30cm - 1m의 깊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숲에는 물이 고여있는 곳이 많으며 나무들 역시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도복(주: 나무의 뿌리가 나무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여 뿌리가 뽑혀서 넘어지는 현상)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 두 나무는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캐나다 솔송나무는 알뜰한 엄마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이 그리 많은 돈(양분)을 벌지는 않지만 그걸 흙속에 차곡차곡 모아두죠.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가면서 무럭무럭 자라나게 됩니다. 햇빛을 받는 경쟁에서 이겨서 키가 훌쩍 크고, 주위의 나무들을 압도하면서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게 되죠. 하지만 그렇게 나무가 크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이곳의 환경 때문에 뿌리가 나무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게 되어서, 이 나무는 넘어져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넘어져서 죽은 이 나무는 이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죠. 위에 있는 비옥한 토양이 아래에 양분이 작은 토양을 덮어버려서 마치 농부가 밭을 가는 것처럼 토양이 섞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생물들에게 큰 기회를 줍니다.  


이렇게 무거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캐나다 솔송나무 덕분에, 숲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분해자’들은 막 배달된 맛있는 먹거리에 달려들죠. 나무는 숲에서 매우 많은 고급양분을 저장하고 있는 곳이라 부잣집 곳간문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겁니다. 게다가 일부 중요한 양이온은 일주일 안에 50% 이상이 비에 쓸려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분해자들은 열심을 일을 합니다. 


이렇게 쓰러져 버린 캐나다 솔송나무는 이제껏 열심히 저장해 놓은 양분을 가진 비옥한 토양을 남기고, 이제까지 이 캐나다 솔송나무의 큰 수관(주: 나무의 초록 부분)에 가려져 있던 많은 양의 햇빛까지도 사용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복 받은 땅에 다시 캐나다 솔송나무와 사탕단풍이 이 땅을 차지하려고 경합을 하게 되죠. 하지만 결국 이 비옥한 땅은 빨리 자랄 수 있고 넓은 잎을 크게 벌릴 수 있는 사탕단풍이 차지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탕단풍은 캐나다 솔송나무와는 다르게 소비를 좋아합니다. 양분은 저장하기보다는 이미 모여있는 양분을 쓰기에 바쁘죠. 이렇게 자라던 사탕단풍은 점차 양분이 줄어들어 힘이 약화되고 또 뿌리가 쥘 수 있는 흙의 양도 작기에 결국 도복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럼 이렇게 양분을 빼앗겨 버린 곳에는 누가 살게 될까요? 맞습니다. 이번에는 캐나다 솔송나무가 이곳을 차지하게 되죠. 이 두 종의 관계가 참 신기하지 않나요? 


이렇게 두 나무는 아극상 상태에서 평화로운 전쟁을 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이 숲을 지탱해 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두 나무는 경쟁하고 뺏고 싸우지만, 또 거꾸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살아가죠. 일면 인간사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욕심내어 보았자 저승 갈 때는 못 가지고 간다는 옛 어르신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열심히 모아서 남 좋은 일만 시켜준 캐나다 솔송나무가 쪼금 불쌍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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