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사랑 May 17. 2023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면

생존을 위한 방화

영어로 나무는 sessile organisms이라고 불립니다. Sessile은 고착화되어 있는 이라는 뜻이니 어느 한 곳에 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의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물론 이 단어가 잎자루가 없는 잎이나 “경”이 있는 종양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입니다만, 영어수업이 아니므로 깊게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mobile organisms입니다.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을 말하니 저희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많은 생물종들이 이 카테고리에 속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 곳에서 머물러야만 하는 식물은 움직일 수 있는 동물과는 다르게 외부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그 험함을 몸으로 꼿꼿이 이기고 견뎌내야만 합니다. 무더운 여름도 살을 에는 추위도 그렇게 한자리에 앉아서 견뎌내어야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사탕단풍과 캐나다 솔송나무의 이야기에서 들려드렸듯이 나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그 종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려고 여러 가지 메커니즘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한 몸을 불살라서 종의 보존과 번영을 위해 노력하곤 하죠.


수사학적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불사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방화범으로 돌변하는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기사나 뉴스를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불에 타서 죽은 나무와 피해 복구, 산불 재해 이런 종류의 단어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산불이 나무의 적인 것처럼요. 하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전부터 나무들은 지구상에서 살고 있었고, 그때도 이 나무들은 종종 산불을 내었지만, 그 불에 타서 없어지지 않고 그 불과 같이 살아남았습니다. 식물이 살고 있는 토양을 파보면 거의 모든 곳에서 산불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만약에 나무들이 불과 함께 살아갈 혹은 불을 견디어 내면서 종을 유지할 좋은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저희는 지구상에서 나무들을 보지 못하거나 겨우 몇 종의 나무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지구에서 산소의 농도가 너무 높아져 문제가 될 때, 많은 산불이 났고 그 산불이 지구의 산소농도로 낮아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후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현재도 산불은 많은 숲의 탄소순환에 매우 중요한 메커니즘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불은 지역적 혹은 전 지구적 조절자 (regulator) 역할을 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라는 의미입니다.




한 종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양분이 풍부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살 수 있죠. 굳이 척박한 곳에서 살 필요가 없으니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기작은 발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면 다른 방법들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그중 하나의 방법이 종자를 많이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종자를 만드는 방법을 쓰는 종들은 호두나 도토리처럼 에너지가 많이 드는 비싸고 큰 종자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비싸면 많이 만들 수가 없으니까요. 작은 씨앗을 넓게 빨리 퍼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씨앗을 퍼뜨리기 전에 그리고 싹을 틔우기 전에 퍼뜨려야죠. 민들레나 사시나무가 이러한 방법으로 살아남고 종족을 번식시킵니다. 봄에 보시면 정말 많은 수의 민들레나 사시나무 씨앗들이 솜사탕처럼 생긴 주머니에 싸여서 날아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puff라고 불리는 솜뭉치처럼 생긴 것이 이 종자들이 바람에 실려서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게 해 주죠. 또는 어떤 나무들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그냥 잠을 잡니다. 또는 많은 수의 씨앗을 땅과 나무 위에 재워놓고 씨앗을 틔울 수 있는 환경이 오면 발아를 해서 종을 번식시킵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밤나무의 경우는 화학물질을 뿌려서 주위의 식물을 죽이고 자신의 종자가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밤나무만 있는 밤나무 군락을 만나시거나 지명중에 밤나무골 같은 지명을 보실 수 있는 겁니다. 또한 나무는 다른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은 살 수 있지만 남은 죽는 환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한 나무가 하나의 전략만이 아니고 여러 가지 전략을 한꺼번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릴 생존방법은 경쟁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같은 장소에서 경쟁하는 나머지 종들은 없애버리는 것이죠.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화학물질을 방법도 있겠지만, 오늘은 화끈하게 불을 이용해서 살아남는 전략을 가지 두 종의 ‘산불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링에 입장하는 두 수종은 로지폴 소나무(lodgepole pine)와 사시나무(quaking aspen이나 trembling aspen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입니다.


왼쪽부터 로지폴, 솔방울, 사시나무

(Source: http://www.oceanlight.com/spotlight.php?img=07045; https://www.forestpests.org/vd/430.html; https://bouldercountyopenspace.org/i/science/quaking-aspen/)


이 두 수종은 산불로 서로를 공격하고 우세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시나무가 불에 타는 경우 이 산불은 약 600도 정도가 됩니다. 이 온도에서는 하부의 줄기가 타거나 해를 입어서 대부분의 수종은 죽게 되고 특히나 경쟁상대인 로지폴 소나무는 (특히 사시나무 숲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는 큰 피해를 입어서 죽게 되죠. 하지만 이 정도 온도는 사시나무의 지하부에 큰 피해를 주지 않게 됩니다. 사시나무는 뿌리가 잘 발달하고 이 뿌리에서 줄기가 나와서 자라기 때문에 이 뿌리만 죽지 않으면 쉽게 살아나고 줄기가 죽더라도 뿌리가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뿌리를 먼저 발달시키고 지상부를 발달시켜야 하는 다른 수종에 비해서 시간상 에너지상에서 큰 장점을 갖게 되죠. 그래서 이렇게 낮은 온도의 산불은 사시나무가 타 수종을 제치고 우점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로지폴 소나무가 타게 되면 900-1,200도 정도의 고온을 만들어 냅니다. 일반적으로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들은 더 높은 온도의 산불은 만들고, 이러한 산불들은 지표면과 지하부에도 피해를 주어, 사시나무를 포함한 경합가능성이 있는 모든 타 수종과 그들의 종자들을 죽여버리게 되지요. 사시나무와의 공정한 (?) 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는 로지폴 소나무는 자신과 사시나무 모두 다 태워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대신 로지폴 소나무는 이러한 불에서 자신의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화’ 솔방울을 만듭니다. 그래서 산불에서 안전하게 보호된 이 솔방울은 (위에 그림을 보시면 솔방울이 닫혀 있지요?) 산불 후 솔방울을 열어 종자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리고 그 종자들은 경쟁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산불로 만들어진 비옥한 토양에 (화전처럼요. 화전 역시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것 아시죠?) 수많은 아기 나무들이 자라게 됩니다. 빼곡히 들어서야 다른 종들의 씨앗이 자라날 확률이 적어지는 이것 또한 생존의 지혜입니다. 말 못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지만, 이러한 종 번식 전략들을 볼 때면 탄복에 탄복을 거듭할 뿐입니다.


이전 02화 사탕단풍과 솔송나무의 소리 없는 아우성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