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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Apr 28. 2023

생태학의 제일 친한 친구가 경제학이라구요?

- 경제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태계

환경이라는 단어는 모두 다 알고 계시다시피 영어로 environment이라고 씁니다. 이 단어는 viron이라는 어간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단어이고, viron은 ‘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고리 환 (環)’자를 사용해서 환경이라는 단어가 되었죠.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환경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좋은 것은 좋은 환경이 되고 불편한 것은 나쁜 환경이라는 식으로 환경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죠.


이와는 좀 다르게, 생태학을 나타내는 ecology는 eco라는 단어를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eco라는 단어는 ‘집’은 나타내는 그리스어 oikos에서 나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집에 대한 공부(-ology)가 바로 생태학인 것이죠. 자연이라는 한 집에 사는 것들에 대한 공부입니다. 저희 집에는 고양이도 있고, 식물도 있고 가구도 있으니, 제 집에 대한 공부는 저와 고양이, 고양이와 가구, 고양이와 식물 등등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죠. 생태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은 경제학 (economics)입니다. 쉽게 말해서 nomy이라는 말이 규칙과 질서를 뜻하니, 경제학은 한 집안(혹은 지역이나 나라)에서 일어나는 규칙과 질서에 대한 연구입니다. 겨우 단어 하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학문이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태계라는 것이 얼마나 경제학의 원리를 따르는지 아시게 되면 또 다른 것들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잘 아는 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나무는 굉장히 엄한 '경영자'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은 호흡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호흡은 살아있는 세포라면 꼭 해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나무의 경우 살아있는 세포는 1%가 안 됩니다. 나무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죽임’으로서 자신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산림생태학자들은 나무를 정말 살아있다고 간주해도 되느냐라고 반문을 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큰 나무의 경우 99% 이상이 죽어 있는 세포이니까요. 만약 사람의 세포 중 99%의 세포가 죽어 있다면, 사람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이 악덕업주(?)인 나무는 죽어 있는 부분도 철저하게 이용합니다. 이들이 물을 나르게 하고 바람과 태양에 대한 보호막이 역할을 하게 하면서 말이죠. 집에 있는 수도관이나, 우리가 입는 옷들도 이미 죽어 있는 것들이니 사람과 비슷하긴 하지만, 자신의 몸의 일부를 죽여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의 눈으로는 참 잔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나무의 경영전략은 나뭇잎에도 잘 나타납니다. 숲에서 가장 얻기 힘든 양분은 질소인데 이 질소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데 꼭 필요한 원소일 뿐만 아니라 DNA를 만드는데도 매우 중요한 원소입니다. 광합성을 위해서 식물은 최대한 많은 질소를 잎에 보내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이 잎들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나무는 이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나무보다 더 높게 자 더 많은 햇빛을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들은 점차 생산효율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 여느 때와 같이 나무는 이 나뭇잎들을 언제 해고할지 고민을 합니다. 특히 질소를 잎까지 운반하는데 매우 많은 에너지가 들었고 귀한 자원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고를 할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약 흙에 질소가 많아서 내년에도 쉽게 질소를 구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잎에서 질소를 조금만 빼앗습니다. 그리고 흙에 질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잎에 있는 질소를 최대한 많이 뺏습니다. 잎에 있는 엽록소를 철저히 분해해서 가지로 옮기기 시작하죠. 내년에 또 옮겨야 하니 많이 운반하면 손해니깐요. 이렇게 엽록소를 빼앗기는 잔인하고 처절한 과정을 저희는 ‘단풍’이라고 부릅니다. 동네의 환경에 따라서 단풍의 색이 조금씩 달라지는 이유가 좀 이해되시죠? 그리고 충분히 질소를 옮겨왔을 때, 그리고 잎이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많을 때, 그걸 땅으로 떨어뜨리죠. 그래서 저는 가끔 낙엽을 보면서 생기를 다 빨린 미라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이건 제가 감성이 메말라 버려서 일 것 같습니다.


보신 바와 같이 이렇게 나무는 자신의 세포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그 이용이 끝나면 그 부분을 죽여서 손해를 최소화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죽인 부분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몸에서 그 부분을 잘라 내기도 합니다. 생존에 정말 진심인 나무, 기업의 성장과 이익에 진심인 기업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저는 가끔은 식물이 사람보다 더 잔인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생태학과 경제학 정말 비슷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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