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쩌다 편의점>이 출간 한 달 만인 4월, 교보문고 에세이 분야 'New & Hot'에 뽑혔단다.
'와우!'
너무 갑작스러운 행운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와우!'뿐이었다.편집자님께 내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순간 뚝딱이가 되어 감정에 충실한 리액션이 나오질 않았다. 실은 나 아주 격정적이었는데.. 4월 1일부터 15일까지 보름간 전국 20여 개 교보문고의 'New & Hot'에 책이 진열될 거라고 했다.
'우와!'
와우나 우와나.. 편집자님이 '이 양반 챗봇인가?'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매월 교보문고의 'New & Hot'은 서점 MD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평생 잊지 못할 어마어마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New & Hot'에 뽑힌 책은-다른 책들은 다 누워 있는데-투명 아크릴통 안에서 띠지를 두르고 서서 '오늘 책 주인공은 나야 나!' 하며 사람들과 눈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신간에겐 인지도와 판매량 측면에서 엄청난 어드벤티지다(실제 직전주 보다 80위가량 순위가 상승함). 신인 작가로서 내 책이 대형 서점의 평대에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무명 배우가 '청룡영화상' 시상식 자리에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데 'New & Hot'은 나에게 신인상 트로피-이 정도 의미 부여는 너무 오만한 것 같아서-의 케이스라도 만져본 것이라 할 만하다.
'New & Hot'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출판사의 평판과 노력, 초반 이슈성(기사 등)과 판매량이 작용하는 것도 있겠으나 편집자님의 말씀으로는 결국 책의 힘이 있어야 한단다. 서점 MD들이 불특정 독자들에게 '이 책 괜찮아요'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도록 예쁘고 튼튼하게 잘 지어진 집 같은 책. 개인적으로 그런 책은 출판사의 픽을 받아 출간이 결정된 이후부터는 교정 과정에서 그 퀄리티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실제, 나 역시 출간 과정 중 초고 집필만큼이나 교정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교보문고 New&Hot과 함께 예스24 페이백 이벤트도 함께 걸렸다
편집자님과 1~2주 간격으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책의 콘셉트, 제목, 목차 구성 등에 대한 의견 조율을 진행하면서 나는 별도로 최초 원고에 대한 자체 교정을 두 차례나 진행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쓸 때 한 문장, 한 문단씩 꾹꾹 눌러쓰는 편이라 속도가 무척 느린데 본격 교정에 들어가면 일정에 못 따라갈까 봐 미리 스타트를 끊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찬찬히 글을 뜯어보는데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방금 시속 200km의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의 머리처럼 군데군데 너저분하기 짝이 없었고 전체적으로 이제 막 기점을 출발한 버스처럼 알맹이 없이 의욕적인 공기만 차득 차 보였다. 그때 느낀 허탈과 공포란.. 이대로 책을 낼 수 없어 나는 남아 있는 교정 작업에 이를 꽉 깨물었다. 아래는 독자의 눈을 가진 작가로서 세운 교정 4원칙이다.
1. (과감하게) 글의 거품을 걷어낸다.
: 이것이 바로 교정의 기본이자 시작과 끝. 욕심을 버리고 명료함을 드러내면 글은 자연히 뾰족해지리라.
2. (확고하게) 글의 핵심과 아이덴티티를 지켜야 한다.
: 처음 설계와 달리 다른 주제로 빠지거나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리모델링은 금물. 핵심은 지키되 전체적인 톤 앤 매너는 유지하자!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진중하지만 무겁지 않게, 명확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3. (분명하게) 나만의 인사이트를 담는다.
: 이는 단순 일기와 에세이를 구분 짓는 가장 명쾌한 기준일 것이다. 다양한 방식과 기교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가의 태도와 관점이 매력적으로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4. (다채롭게) 글맛을 최대한 살린다.
: 글에 담긴 작가의 개성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 특히 초보 작가에겐 더욱더! 가수로 치면 음색이라고나 할까. 귀가 즐거운 음악이 청중을 이끌 듯 눈이 즐거운 글이 독자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정식 교정에 들어가기 전, 편집자님으로부터 타임테이블을 공유받았다. 3개월에 걸친 빼곡한 스케줄 중 정식 교정은 총 6주에 걸쳐 총 3교를 진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각 교정마다 편집자님이 주도하며 주말 포함 약 8~10일의 기간이 소요되었고 나 역시 동일한 기간을 부여받아 확인 및 추가 피드백을 했다. 출판사의 교정은 약간의 글을 덜고 더함을 작가에게 요청(또는 양해)하는 수준이었으며-내심 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기대했으나-초고에 대한 큰 변경 없이 일부 문단의 순서, 단어의 교체 정도의 정밀한 윤문 중심으로 진행됐다. 오히려 매 교정마다 물고 뜯고 씹고 고친 건 나였다. 인자하신 편집자님은 나의 변덕과 의견을 항상 적극 수용해 주셨다(교정 중에 파국으로 치닫는 작가-편집자 사이도 있다카던디). 우리의 단일화된 목표는 좋은 책을 만들자였으므로.
우리는 계획된 3교에 사소한 수정 등을 반영한 버전 2를 더해 총 5교로 마무리 지었다. 사소한 수정이라 함은 막판에 인용문의 저작권 이용 확보가 안돼 일부 글을 수정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었다. 사실 나는 3교를 넘어 5교로 끝난 것이 매우 흡족했다. 이번 교정을 보면서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더 좋아진다'는 말(그전엔 어설프게 손보다간 낭패가 되지 않겠냐며 반신반의했지만)에 100%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인 만큼 글에 잔근육이 생기고 그 힘으로 독자들의 손을 타는 책으로 인기를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리뷰 중 특히 필력에 대한 칭찬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가당치도 않게 결코 필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교정에 진심이었던 나에게 필력=노력으로 읽혀서다.
얼마 전 출입기자와 미팅에서 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출간을 축하한다는 인사로 시작된 대화는 상대방의 호기심을 따라 책에 담긴 다양한 에피소드로 확장되어 갔다. 그중 내가 어떤 부분에 대한 얘기를 꺼냈는데 마침 커피를 마시고 있던 기자 분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 얼굴에 그대로 푸우우우~하고 커피를 뿜었다. 정통으로! 시트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다(하필 내가 그 주인공). 커피를 먹지 않고 내 피부에 양보한 그분의입은 마치 고성능 스프링클러 같았다. 아마 햇빛이 비췄다면 무지개가 떴을 것이다. 비록 커피 분사를 맞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책이 재밌다는 거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교정의 수확이고 교정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