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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Feb 26. 2024

누드비치에 갔는데 말입니다

바르셀로나 근교 해안도시인 시체스라는 곳에 며칠간 머물게 되었다.

시체스?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드는 이름과는 다르게 정말 아기자기한 해안 마을이었다.

해안가에 있는 성당은 시체스의 상징이며,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국적이며 아름다워서 바르셀로나 근교투어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성당 주변에 예쁜 골목들이 많아서 혼자 조용히 걷기에 너무 좋았다.

곳곳이 아름다웠고 보호색을 띠고 있는 멍뭉이도 이곳과 너무 잘 어울렸다.







맛집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시체스는 게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는 사실과 게이들이 자주 가는 누드비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박, 게이 누드 비치라니!


연예인 누가 누드비치에서 탈의하고 놀았다는 기사나 봤었지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이 뿜뿜 생겼다. 게다가 게이비치는 너무 희소해서 더 궁금했다.


2월이었지만 볕이 좋은 날에는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 번 가봐도 좋겠다 싶어 누드비치로 향했다.

구글맵 켜고 한참 걸어왔는데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해변이 나왔다.


한쪽엔 중년남녀가 평상복차림으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고 다른 쪽에선 반려견과 원반 던지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뭐지? 여기가 아닌가?


선글라스도 챙겨 왔는데 뭔가 싶다. (선글라스 필수! 왜, 왜냐하면 해안가는 누, 눈부시니까요. 하핫)

잘못 찾아왔나 싶어서 해변 한쪽구석에 멍하니 앉아서 드넓은 지중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에서 한 백인남자분이 상의탈의를 하시고 하의까지 모두 벗는 게 눈에 들어왔다.

헛하고 흠칫 놀랐지만 태연한 척을 하며 고개를 쓱 돌렸다. (... 맞구나 여기.)

암석으로 굽이굽이 생긴 해변이라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조라서 누드로 일광욕하기에 딱 좋아 보였다.

게이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며 게이 비치라 그런지 올누드로 일광욕하는 게이커플꽤 있었다.


K-유교걸은 민망한 마음도 들고 구경할 목적으로 가까이 가는 게 무례한 일인 것 같아서 멀리 앉아있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없는 편이라 우리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새롭고 개방적인 문화가 너무 신선했다.


스페인에 이런 게이 누드비치가 있을 있는 건 개인 자유의 표현임과 동시에 타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삶을 오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며, 타인삶의 모양을 내 기준맞춰 주무르려 하지 않았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과 함께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아.
너에겐 그럴 자유가 있으니까.라고.





금전이나 시간, 주변 사정 때문에 자유가 제한되거나, 자유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허락된 자유는 선명히 존재했고, 마음을 열고 찾을수록 더 많아졌다.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 재밌는 것들이 무수히 많고, 나에겐 그걸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 숨이 탁 트인다. 이 모든 순간이 바로 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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