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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r 19. 2024

노는 것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참 게으름에 성실한 친구네!



잘 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쟁 같았던 11년 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황폐해진 나를 가다듬고 다시 일으키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건 잘 빈둥대기였다.


처음엔 쉬는 것에 한이 맺혀서 무작정 뒹굴거렸다.

출근하던 버릇 때문에 해가 뜨면 눈이 떠졌고 따땃한 이불속에서 꼼지락 대다가 도파민을 찾아 각종 영상을 소비하며 헤매고 돌아다녔다.

거기에 먹고 누워있기를 반복하니 급속도로 살이 찌고 허리가 끊어지게 아파오며 눈까지 침침해졌다.


이게 제대로 쉬는 게 맞나 싶었고 무엇보다 쉬는데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쉬는 방법도 잘 모르고 편히 쉬지도 못하는 나 같은 만성불안 인간은

마음 편히 잘 쉬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노는 것도 쉽지 않구먼 이거



마음 편히 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쉴 수 있는 경제적 요건이 되거나 쉬어도 불안하지 않은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난 이 두 가지 모두에 다 해당되지 않아서 노는 게 참 힘들었다.


마음이 불안하면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기 때문에 ‘이건 쉰 것도 아니고 안 쉰 것도 아니여!’라고 하소연하게 되는 눈물 나게 억울한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무작정 쉬는 것 말고, 그날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보았다.


회사 다닐 때부터 좋지 않았던 눈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부터 다녔고 가벼운 운동을 하며 명상도 배웠다.

간간이 글을 쓰고 sns를 했고 마음이 답답할 땐 에세이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도 했다.


나는 아예 노는 것보다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무언가를 하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쌓아가야 덜 불안해한다는 걸 이때 알게 되었다.

나만의 타협점을 찾으며 내 성향을 조금씩 파악해 나갔다.









게으름에 더 성실해야 하는 이유



쉬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생각은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살아도 되는 건가라는 물음이었다.


목적 없는 뜀박질을 멈춘 순간 나를 지나치고 앞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한없이 불안했다.

질주하던 관성 때문에 계속 뛰어야 할 것 같아서 불안감은 커져갔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리기만 하다가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몇 배의 힘과 시간을 쓰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차라리 숨을 고르며 다시 나아가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꼭 즉각적인 성과가 나와야만 생산적인 것이 아니며 매생산만을 하며 수도 없다.

휴지기를 거친 밭에서 실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놀아주는 시간이 있어야 장기적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하루이틀 살게 아니기에 길게 가는 법을 찾고 싶었다.



한없이 게을러지는 시간도 분명 내게 필요했기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쫓기듯 일하며 계속 불안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도 항상 불안했고, 불안해서 더 미친 듯이 달렸으니까.


우선순위를 나에게 두고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는 여유를 알게 되면서 내게 맞는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거나 닦달하지 않게 됐다.



그 시간을 지나와보니 나 자신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쉬어갈 용기를 낸 것도,

나를 이해하고 기다려준 것도,

매번 버리지 않고 함께 해준 것도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인생에 재밌는 부분도 많다는 걸 알게 됐고 더 많이 웃게 됐다.

공장의 기계처럼 일할 때와는 다른 세상이 열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충분히 놀면서 살아갈 것이다.

게으름은 내가 누려야 할 가장 느긋한 행복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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