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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r 22. 2024

월급을 포기하고 얻은 두 가지


괴로움 총량 보존의 법칙



퇴사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얼마 전에 친구와 전화를 하는데 친구의 첫마디가 이랬다.


"어이, 자유영혼~ 뭐 해?"



하, 사실 말이 자유영혼이지 별로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다.

아직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줄어가는 통장잔고는 평정심을 깨부수는 아주 강력한 무기였고, 

산산 조각난 마음에 자유를 누릴 여유 따윈 없었다.




과거엔 고정수입 때문에 자유를 저당 잡혔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구속에서 벗어난 대신 월급을 잃었다.

하나를 얻고 다른 하나를 내준 셈이다.

10년 넘게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니 불안함이 몰려왔다.

에이 괜찮아하며 애써 모른척하면 할수록 뭘 해도 안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커졌다.

회사 다닐 땐 일과 사람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이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생계문제로 옮겨갔다.

다른 차원의 색다른 괴로움이 숨통을 조여 온다.



이놈의 인생은 괴로움 총량 보존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인생사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참 얄궂게 느껴진다.

그렇게 크게 욕심내며 산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자유라 쓰고 불안이라 읽는다



퇴사를 한 이후에 종종 악몽에 시달렸다.

공부를 못한 채로 시험이 시작됐고 옆에선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데 나는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채 끙끙댔다. 시험기간을 잘못 알고 시험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밀치고 들어오는가 하면 동네에 전쟁이 나서 미사일이 눈앞에 떨어졌다.



악몽에서 깨고 나면 명치가 답답했고 소리 지르며 잠에서 깨는 날도 있었다.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는 다독임은 갈길을 잃고 수입이 없어진 현재의 불안을 이기지 못했다.



수시로 찾아와 엄청난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불안에 잠식당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안정을 도둑맞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불안은 내 몸과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방심하고 있는 나를 휘어잡고 마구 흔들었다.







불안하지만 행복합니다



회사에서 10년 넘게 사람을 대하면서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

상대방이 이성을 잃고 화를 낼 때 나도 같이 성질을 내면 서로 목소리가 커지면서 건기의 산불처럼 갈등상황이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


두려움과 상상이 합심하여 몰고 온 불안은 화를 내며 밀어낼수록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내가 혼자 만든 불안에 걸려 넘어지고 나서는 괜히 현실을 원망했다.

거기에 시커멓게 타버린 속을 다시 복구해야 해야 하는 수고까지 덤으로 얻었다.


불안함이 불같이 번져올수록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이 안정되어야 내가 안정되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다.




자율과 휴식을 찾아 퇴사를 하면서 어느 정도의 불안은 각오를 했었다.

그래서 예고된 불안에 수시로 흔들리는 백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행복했다.

월급을 놓아버리며 불안과 행복을 함께 얻었다.

행복의 영역을 늘리기 위해 불안이 찾아오는 순간마다 '나 또 불안하구나. 그런데 이건 순간의 감정이야. 또 지나가지.'라고 인식하며 조용히 기다려주는 여유를 찾아나갔다.



문제는 백수인 상황이 아니라 뭘 해도 항상 불안한 내 마음이었고

내 마음을 내가 다독이지 못한다면 평생을 불안에 치여 살 수밖에 없다.

불안정한 마음 위에는 그 어떤 것도 쌓을 수 없고 쌓는다 해도 금방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걸 알고 나서는 피하고만 싶었던 불안과 공생하며 내 방식대로 조련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을 내가 유연하게 운전하는 일이며 서툴지만 그걸 배워가는 과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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