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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r 26. 2024

이제 좀 인간답게 살아볼까 해



팔랑귀는 웁니다



나는 프로걱정러였고,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작은 일에도 고민이 많았다.

마트에서 과자를 고르는 것부터 진로와 직장선택에 이르기까지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부지런히 고민했다.



내가 선택의 순간에서 가장 많이 참고했던 건 다수의 의견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후회할 확률이 낮아 보였고 혹시 잘 안되더라도 최소한 중간은 가겠지 싶었다. 

식당에선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메뉴를 시켰고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항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힐끔거리며 휩쓸리듯 따라갔다. 

모든 선택에 나는 없었고 타인의 욕망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 믿으며 순간순간을 배팅했다. 



그렇게 나는 마음에 없는 일을 하며 11년을 다닌 회사에서 퇴사를 했고 길을 잃었다.

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는데 내가 뭘 좋아하며 뭘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 판단의 기준은 남이 좋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 기준을 나로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가 않았다.








누구냐, 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고 모든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거라고 받아들이기엔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네 결정이었는데 어떻게 너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게 책임회피인가 싶었고 미성숙한 방어기제 같기도 했다.

 '그때 왜 날 말리지 않았어?' 하는 마음으로 어이없이 남 탓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의 말을 따라가며 만들어진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네 거 인 듯 네 거 아닌 네 거 같은 내 모습을 보며 억울함이 밀려왔던 것이다.

내 삶의 선택권을 남에게 미뤘으니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F5새로고침을 눌러야 할 순간



그때부터 앞으로의 선택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세상이 바라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나와 깊이 상의해서 결정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내가 주도권을 잡고 내린 선택은 후회로 끝날지언정 적어도 납득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회보다 더 괴로운 감정은 바로 억울함, 남을 탓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기에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항상 옳은 선택은 할 수 없을지라도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은 가능해 보였다.

내가 주체적으로 쌓아 올린 경험과 데이터는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소중한 지도라는 걸 알게 됐다.




SBS집사부일체에서 뇌과학자 정재승박사는 ‘후회는 고등한 뇌의 기능이다. 후회를 한다는 것은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후회를 안 한다는 건 인간답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여 후회하고 그로 인해 현명한 다음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퇴사 이후 내 삶은 아직도 헤맴과 혼란의 연속이지만,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후회하는 과정 속에서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정말 나다운 나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후회 없는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예전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지만, 충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완벽한 선택은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충분히 잘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스스로 선택하고 후회하며 나를 알아가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오늘을 걸어 나갈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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