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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Jul 03. 2024

나는 고통받고 싶었다



백수생활 벌써 1년, 솔직히 말하면


퇴사 이후 나는 회사에 나가서 소처럼 일하는 꿈을 자주 꿨다.

남자들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을 악몽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전 회사에 다시 출근한다는 건 지독한 악몽이었다.


백수로 지낸 지 1년이 넘어가니 악몽의 내용도 개편이 됐다.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회사에 나갔다.

바뀐 점이 있다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뿌듯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었고,

늦깎이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나이 어린 선임들한테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밝게 지냈지만, 꿈은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걸 찾지 못해 불안했다.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도 컸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그리고 인정하기 싫었던) 솔직한 내 마음이 꿈을 통해서 영화처럼 펼쳐졌다.  

솔직함의 정도로 관람등급을 나눌 수 있다면 누구에게 말하기 부끄러워 타인관람불가 딱지가 붙은 최상위 등급이었고, 나는 밤마다 필터 없이 상영되는 내 진심과 마주했다.







나는 고통받고 싶었다


직장인일 때는 '나는 출근하는 기계다, 일하는 기계다'라고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었고, 아닌 걸 알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괴로웠다.


나에 대해 알아가며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말 생산적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헤매고 답답하고 괴로울지라도 나와 내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며 답이 없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더군다나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필연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라는 물음과 끊임없이 싸우며 초점 잃은 눈으로 사는 괴로움 보는 훨씬 건강한 고통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아픔이라면 기꺼이 앓고 싶었다.







이 얼마나 내가 원하고 원했던 고통인가


백수가 되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함에 잠식되어 괴로워하고 있을 때 문득, 이게 바로 내가 그토록 바랐던 고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얼마나 바라고 바랐는지를 잊고 있었다.

불과 1년 전의 내가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 아픔인가, 얼마나 행복한 괴로움인가.
이 시간이 거쳐야만 내가 나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곧 해가 뜰걸 알기에 새벽은 신비롭다.

내가 원했던 미래가 바로 지금이라는 걸 알게 되니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던 고통은 여명으로 바뀌었다.

희미했지만, 분명 밝아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노을입니다! 브런치북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매주 글을 발행하는 게 은근 부담이 되어서 연재는 당분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태해지는 스스로를 보다 못해 '나란 놈은 답은 연재다'싶어서 다시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네요!

강제적인걸 못 견디는 게 인간이지만, 또 나태한 심신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강제성인 것 같아요 ㅎ

변덕스러운 여름날씨에 건강 챙기시길 바라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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