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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안빈낙도

by 놀마드놀



5평


나는 5평 원룸에 혼자 살며 글을 쓰는 반백수이다. 2025년부터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부모님 댁과 멀지 않은 곳에서 동생과 살다가, 멀리 이사 와서 혼자 산 지는 한 달이 넘었다. 굳이 ‘반’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돈벌이는 안 되지만 글을 쓴다는 구실 덕분이다. 물론 백수 3년 차 만에 글 쓰는 반백수가 됐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예전엔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걸쳐 입고, 대충 묶은 추노 머리로 유튜브를 봤다면, 지금은 그 모습 그대로 글을 쓴다.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있고 도전한다는 위안 하나 얻었을 뿐, 모양새가 작가보다는 반백수와 더 찰떡같이 어울린다. 언젠가는 글로 돈벌이하는 온전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0원


내 고정 수입은 0원이다. 0원이 영원이 될까 봐 속이 탄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며 삐딱하게 노래하던 지드래곤을 믿기엔 0원의 힘이 너무 강력하다. 어쩌다 예금이자나 펀드 수익이 생기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어쩌다’이다.


여름 내내 팥빙수가 먹고 싶은데, 밥 한 끼보다 비싼 빙수를 사 먹는 게 말이 되냐며 양심이 삿대질하며 따진다. 뼈아프게 맞는 말이라, 에어컨 없이 폭염을 견디다 못해 카페로 피신을 간 날, 4,500원짜리 컵 빙수 하나를 겨우 얻어냈다. 알바를 알아보던 차에 타이밍도 좋게 족저근막염이 생겼다. 설거지하느라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발바닥이 욱신거려서, 강아지처럼 매일 하던 산책도 기약 없는 멈춤 상태이다. 몸 쓰는 일도 이젠 몸이 협조를 안 해준다. 폭염으로 날씨까지 더해주니, 그럴듯한 핑계도 있겠다, 생계를 위한 알바는 천천히 구하기로 나와 합의를 본다.



1인


1인 가구에서 1인을 맡고 있어서 모든 의사 결정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결정에 따르는 권리와 책임과 자유 또한 모두 내 차지라는 게, 초보 1인 가구에겐 좀 낯설다. 이건 거의 부모님이 장기간 집을 비워 혼자 남은 중학생이요, 상사가 휴가를 가서 눈치 볼 게 없는 신규 직원이다. 처음엔 나를 제한했던 것들에서 벗어난 기쁨이 컸지만,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가볍지 않은 미션이 생겼다.


잘하면 자기 주도하에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최적의 환경’이라는 게 건강하고 건설적이라는 보장은 없기에, 자유는 곧 ‘제 멋대로’가 되어 모든 규칙과 질서를 무너뜨리기 쉽다. 백수 1인 가구면 문제가 더 심각해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 무법천지 카오스로 빠지기 딱 좋다. 고삐 풀린 자유를 어르고 달래며 관리할 수 있는 자만이 1인 가구 체제에서 건강하게 살아남는다.



11년


이렇게 살면서도 버틸 수 있는 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견디던 11년 직장 생활의 기억이 있어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긴 대로 살지 못하며,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 보통 내 얼굴은 나보다 남들이 더 많이 보고, 내 이름도 나보단 남들이 더 많이 불러준다. 그래서인지 정작 나를 찬찬히 살피며 알아갈 충분한 시간이나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힘들게 알더라도 생긴 대로 살도록 세상이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는다.


지금은 내 내면의 생김새를 들여다볼 수 있고, 생긴 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쌓이는 기쁨이 쏠쏠하다. ATM기에서 찾을 수는 없을지언정, 월급만큼 귀한 ‘삶의 의미’가 틈틈이 입금되고 있다. 중요한 걸 찾아가며 소박하게 사는 나를 보니, 나의 본캐는 안빈낙도요, 부캐는 독거인 것 같기도 하다. 독거 안빈낙도 생활이 체질에 잘 맞는다. 여기에 바람이 하나 있다면, 빈은 빼고 안낙도만 있으면 좋겠다는 거. 안빈낙도에서 안낙도로 거듭나기 위한 나 홀로 반백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투고와 이사로 정신이 없어서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연재를 합니다!

투고를 아직 끝내지 못해서 주 1회 연재로 찾아뵙게 되었어요.

연재는 항상 부담과 함께하지만, 맨날 같은 글만 보다가 새로운 글을 쓰니 행복하네요ㅎ

매주 뵙게 되어 기쁩니다.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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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nolmad_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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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