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뮤지컬
나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웅장하지만 조용하고, 혼자 사색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 그리고 누군가의 열정과 메시지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좋아한다.
나의 런던 첫 행선지는 런던 내셔널 미술관이었다.(런던 대부분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관람비가 무료이다. 예약은 미리 하고 가는 편이 좋음) 내셔널 미술관에 입장해서 오디오 라이브(‘투어 라이브’에서 결제)를 들으며 작품들을 감상했다.
미술작품들 앞엔 푹신한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있었고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견학을 온 아이들은 미술작품을 보며 종이에 그림도 그리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적당한 배경 사운드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사진으로 담아뒀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1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인상주의 미술 작품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사진과 책으로만 보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과 클로드 모네, 폴 세잔 등 거장들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난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내셔널갤러리에 머물며 벅찬 감정들과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했다.
오후에 뮤지컬을 예약해둔 터라 12시 30분쯤 미술관에서 나왔다.(런던엔 유명한 뮤지컬 극장들이 많다. 런던에 간다면 뮤지컬 하나는 꼭 보고 오길 바란다) 미술관에서 나오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영국은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리기로 유명한 나라다) 역시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고 다녔다. 너무 신기했다. 한국 같으면 이상하게 쳐다볼 텐데 말이다.
나는 여행 전에 우산을 하나 장만했었다. 분명 집에서 짐을 체크할 땐 우산이 있었는데 숙소에 와서 보니 우산이 없었다. 그래서 될 대로 돼라 하고 비 예보가 있었음에도 그냥 집을 나섰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 자주 내렸고,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 다녔다. 나도 그렇게 런던너(?)처럼 비를 맞으며 소호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비를 좋아하는 나로선 아무 눈치 없이 그리고 여유롭게 비를 맞으니 조금.. 아니 조금보다 더 많이 행복했다.
나는 뮤지컬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 중 압승이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늘 했었다. 그래서 실제 뮤지컬로 보면 어떨까는 궁금증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레미제라블 뮤지컬을 하긴 하지만 뮤지컬의 고장인 곳에서 오리지널로 보고 싶었다. 예약할 때 다행히 앞쪽에 자리가 있어 좋은 자리를 예약했다. 무대 바로 밑엔 라이브로 직접 연주를 해서 노래를 생생하게 잘 들을 수 있었다.(다만 목이 조금 많이 아픔. 1층 중간 자리가 베스트이지 않을까 싶음) 당연하게 영어로 진행하는 뮤지컬이라 흡사 영어 듣기 하는 기분이었지만 레미제라블의 내용을 알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뮤지컬 본 소감을 말하자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배우분들의 열정에 한번 놀랐고, 라이브로 듣게 된 모든 사운드들이 소름 돋을 정도로 최고였다. 그때의 벅참과 놀라움을 그 자리 그대로 놔두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오고 아직까지 레미제라블 노래를 찾아 듣지 않았다.
여행의 첫날은 첫날답게 벅차오름과 놀라움으로 하루를 그려나간 거 같다. 두려움은 잊힌 지 오래고 나는 점점 혼자만의 여행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자는 이렇다 하고, 누구는 저렇다 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겐 혼자만의 시간은 나를 안정적이게 만들어주었다. 오로지 나를 위해 고민을 하며, 누군가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 것이 아닌 오직 나의 발걸음에 맞춰간다는 것에 너무 행복했다.
예전에 친구가 편지에 써준 말이 생각났다. "효정아 작은 행복들이 네 삶의 이유가 되어, 네가 무너질 때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랄게" 삶의 이유가 되는 행복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걸까? 나는 이제서야 이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나에게 선물해 준 작은 행복들이 나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정말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무너질 때면 나를 일으킬 수 있는 작고 큰 행복들을 만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