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시력은 우주를 본다
“아야!”
잠결에도 어찌나 따가운지 벌떡 일어나 정수리를 문지르며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정수리는 얼얼하게 아픈데 잠이 빨리 안 깬다. 한동안 아픈 정수리에 손을 올리고 정신이 맑아지길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점심 먹은 후, 잠든 엄마 옆에 잠깐 누웠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당연히 잠들었으리라 생각한 엄마가 내 머리맡에 앉아 있다. 엄마 손엔 머리카락이 한 줌 들려있고 엄마는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이 엄마는 순한 치매라고 하던데,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엄마 손에 들린 저 머리카락은 어떻게 설명하지? 슬그머니 엄마가 무서워졌다.
‘그나저나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많이 빠져나갔으면 머리에 구멍 났겠네’ 하는 생각에 아픈 것도 잊고 거울 먼저 찾았다.
다행히 아픈 것에 비하면 머리카락 빠진 표가 별로 나지 않는다. 이럴 땐 머리숱 많은 게 참 감사하다. 정수리의 얼얼하던 느낌이 서서히 잦아드는 데 엄마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 표정으로 손에 잡힌 머리카락을 내려다본다.
“엄마, 왜 그래?”
혹시 모를 2차 피해(?)를 막으려는 속셈으로 조심스럽게 엄마 손을 잡으며 물었다.
“아 그 흰머리 한 가닥이 안 잡히잖아!”
엄마는 손에 잡힌 머리카락 뭉치를 내게 보이며 심통 난 아이처럼 말한다.
“어디 이리 줘 봐”
엄마 손에서 머리카락 뭉치를 뺏어 살펴보니 흰 머리카락 두 가닥에 검은 머리카락이 수두룩 하다. 일부러 뽑으려 해도 그렇게 뽑기는 힘들었을 텐데 도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머리카락을 이리 다 뽑았을까?
“너도 이젠 흰머리가 나는구나. 너희들 스무 살 먹을 때까지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오래 살았네.”
엄마는 조금 전의 화난 표정이 아닌 애잔한 얼굴이 되어 물기 도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엄마, 지금 내 흰머리 뽑은 거야?”
“누워서 보니까 흰머리가 보이길래 뽑아주려고 했더니 잘 안 뽑히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났어?”
“그래. 그 한가닥이 그렇게 안 잡히지 뭐냐.”
“엄마, 그렇다고 그렇게 막 잡아 뽑으면 엄마 딸 대머리 돼.”
“대머리는 무슨...”
“엄마가 준 머리카락이라고 엄마 맘대로 뽑아도 돼?”
“하. 하. 하.”
엄마는 내 말이 우스운지 평소보다 크게 웃으면서 내 손에서 머리카락을 가져가더니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으려고 한다.
“엄마, 그거 버리는 거야.”
“그래? 이게 뭔데?”
잠깐 사이 엄마는 상황을 전환시켰다. 이럴 땐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엄마는 어느새 방 한쪽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와 손에 둘둘 말아 감고 방을 닦기 시작한다.
“엄마, 방은 내가 치울 게 엄마는 커피 타.”
“그럴까?”
엄마는 커피 타 달라고 하면 제일 좋아한다. 이젠 당신 기력이 없어 어지간한 물건은 들지 못해 속상해하지만, 아직 커피쯤은 얼마든지 탈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해한다.
덕분에 엄마와 함께 지내는 날은 하루 대여섯 잔의 커피를 마신다. 엄마가 즐거워하는 데 열 잔인들 못 마실까.
은빛으로 반짝이는 흰머리가 나는 그리 나쁘지 않아서 되도록 염색 시기를 길게 잡는데 엄마가 저렇게 속상해하니 내일은 잊지 말고 염색해야겠다.
엄마는 결벽증이라 할 만큼 깔끔했었는데, 요즘엔 엄마가 해놓은 설거지를 몰래 다시 해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 그런 엄마가 환갑을 앞둔 딸 흰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린다니, 모성의 시력은 참으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