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라져도 인정은 남는다.
사실 엄마가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 건 꽤 오래됐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탓에 노화로 인한 건망증이 조금 심해진 것뿐이고, 체력이 떨어져 거동이 약간 불편한 것뿐이라고 우리 형제들은 어설프게 이기적인 판단을 내리고 엄마를 대해왔다.
‘나의 엄마’가 치매란 게 싫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다른 사람의 일이라면 ‘연세가 있으시니 그럴 만도 하다.’며 적당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작 ‘내 일’이 되고 보니 혼란스러웠다. ‘타인의 고질병 보다, 나의 고뿔이 더 심각하다’고 하더니 딱 맞는 말이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해 봐야 자꾸 살만 붙는 걱정만 늘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엄마의 치매는 아직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혼자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엄마 자신도 자식인 우리 중 누구네 집도 싫다고 하며 극구 혼자 있겠다는 바람에 우리는 그저 엄마한테 자주 찾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억지로라도 누구네 집으로든 엄마를 데려갈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엄마 의사를 존중해야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가 엄마와 지내기로 해서 토요일인 어제저녁부터 엄마와 함께 지내는 중이다.
“너는 괜찮으냐? 얘들이 거기 있어도?” 엄마는 전기요 위에 누웠다 반쯤 일어나며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잠든 내게 묻는다.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엄마는 방바닥에서, 나는 소파 위에서 낮잠 자던 끝이다. “애들? 애들이 어딨어?” 졸린 눈으로 열린 안방 문을 통해 거실과 주방 쪽을 둘러봤다. “거기 소파 아래 어제부터 얘들이 놀고 있던데 너는 잘 자더라.” 엄마는 자꾸 소파 아래를 살피며 말한다.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머리카락이 한 올씩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소름이 징그럽게 잔뜩 돋아난 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 곁으로 가서 앉았다. “저 봐라. 니 목소리 들리니까 한쪽으로 숨는 거 봐라.” 엄마는 진짜 아이들이 보이는지 손짓까지 해가며 이번엔 방 한구석을 가리킨다. 엄마가 가리키는 곳엔 아무도 없다.
치매에 관련된 책에서 보니까 환시나 환각 같은 증세는 초기 치매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럼 엄마의 치매는 초기가 아니라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소리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소리를 지르거나 무섭다고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엄마의 말을 들으며 귀신보다 엄마의 치매 증상이 경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게 더 무섭게 다가왔다.
“엄마 혼자 있을 때 저 아이들 또 오면 어떻게? 무서워서?” 나도 아이들이 보이는 것처럼 엄마에게 물었다. “쟤네들은 순해. 올 때마다 저기 소파 아래서 잠만 자고 간다. 집이 없는 애들인가 봐.” 엄마는 자주 보는 모양인지 무섭다고는 안 했다. “엄마, 얘들도 자꾸 오고 다른 사람들도 와서 잠 못 자게 하니까 우리 집으로 가는 건 어때?” 넌지시 엄마 의향을 물었다. “와서 잠만 자고 가는데 어때? 나는 괜찮은데. 해코지 안 하면 되지 뭘.” “그러다 혹시라도...” 나는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이 내 말을 들을 것만 같아서 엄마가 가리켰던 구석을 흘끔거리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집이든, 선영이네든 가서 같이 살면 되잖아.” 그러자 엄마는 덤덤하게 “그나마 나도 없으면 쟤네들은 밤이슬 맞고 잘 텐데. 다른 집으로도 못 가니 내 집으로 오겠지.”
참 이상하다. ‘치매’는 과거의 기억을 차츰 잃어간다고 하던데 ‘인정’은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엄마는 집 없이 밖에서 떠돌 아이들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싶은 것 아닐까? 가끔 엄마의 세계는 내가 사는 세계를 훌쩍 넘어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걱정하는 치매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엄마의 치매는 허둥지둥 고민하고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는 우리에게 때론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치매’와 다른 치매도 있다는 것 말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본성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엄마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한다. 하긴 기억이 사라진다고 엄마가 엄마가 아니겠어? 정 많은 엄마처럼 나도 귀신인지 뭔지 인사라도 해야겠다.
‘우리 엄마랑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