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재발견

가족이란 투명망토

by 이경원

“점심은 뭘 먹을까?”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는 내 등 뒤에서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에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40분이다. ‘아니? 아침 먹은 설거지를 12시가 다 되어서 하는 데 무슨 점심을 먹겠다고? 일요일에 세끼를 다 챙겨 먹겠다고?’ 설거지하느라 끼었던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일요일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거실 소파나 바닥에서 뒹굴뒹굴 게으름 피우고, 이른 저녁 먹는 것으로 휴일을 보내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었다.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설거지를 마친 나는 버킷리스트에 ‘1년만 가출해서 살아보기’를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만큼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때론 ‘가족’이어서 멀리하고 싶을 때도 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뜻하지 않은 시기에 ‘가출’ 아닌 가출을 하게 됐다. 회사 업무차 장거리 출, 퇴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왕복 세 시간을 아낀다는 생각으로 가끔 회사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주말에 귀가하는 횟수가 빈번해지다 아예 주말에만 집에 가는 것으로 정착됐다.

퇴근 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커다란 행운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모두 내 맘대로 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굳이 식사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배고프지 않아도 한 식탁에 같이 앉아야 하는 가족이란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숙소의 불편한 잠자리쯤은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집을 떠나 근무 시간 이외에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한 지 석 달쯤 지나 주말에 귀가해서 엄마 집으로 저녁 먹으러 갔을 때, 엄마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했던 말을 몇 번씩 다시 하기도 하고, 말을 하는 도중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 잊어서 얼버무리며 말을 마치는 엄마를 보는데 뭔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동생이 엄마가 이상하다고 걱정하며 전화할 때마다 나는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 문제를 뒤로 미뤘다. 하필 나는 갱년기 증상으로 불안한 마음과 허무한 마음이 교차하던 때라 감정 기복이 심한 시기여서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짜증 부리는 경우가 잦았다. 회사 내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은 나의 감정 상태를 가족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 시기에 엄마가 치매인 것 같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보니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만큼 속이 상했다.


엄마의 상태를 전해 듣고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내던 중, 엄마가 길을 잃고 배회하다 경찰서에서 연락받은 동생이 엄마를 데려오는 일이 생겼다.

그때도 나는 회사에 있었고 동생에게 당시의 상황을 전화로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걱정은 나중이고 짜증이 먼저 났다. 엄마가 치매라고 딱히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식 된 도리로 엄마를 곁에서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왜? 하필 지금이야?’ 하는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내 마음이 소리 없는 전쟁을 하는 중에 가족들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동생은 낮 동안 자신과 엄마 집 사이를 오가며 엄마를 보살폈고, 올케와 조카들, 그리고 나의 두 아들이 순번을 정해 번갈아 가며 할머니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 나간 나는 주말에 퇴근하면 엄마에게 들러서 저녁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가족들이 온 신경을 엄마에게 쓴다는 것을 알고 눈치가 보여 내가 주말과 휴일, 1박 2일은 엄마와 지내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남들이 볼 때는 참으로 효녀다운 행동이었다. 주중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치매 엄마를 돌보는 착한 딸. 그러나 본심은 가족이란 의무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주말이면 엄마 보러 간다는 핑계로 우리 집의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엄마한테 가서 나는 낮잠을 자거나 책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는 내가 가면 항상 일하느라 피곤했을 거라면서 엄마가 누웠던 자리를 내게 내주고 한숨 자라고 했다. 나는 그야말로 편하게 누워 늘어지게 단잠을 자기도 하고, 어느 때는 엎드려 책을 읽기도 했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엄마는 커피를 타오거나, 간식으로 과자나 빵을 계속 가져다주었다. 마치 공부하는 고3 딸에게 간식 챙겨주듯이. 어떻게 보면 엄마를 핑계로 나는 편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내 집의 청소며 소소한 일들은 남편과 아이들 차지가 됐다. 남편과 아이들은 엄마의 치매로 우울하게 지내는 나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며 되도록 내가 신경 쓸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 집과 자기 집을 오가며 엄마를 챙기던 동생은 주말에 엄마와 지내는 내게 피곤하면 자기가 대신 엄마와 있겠다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엄마를 돌봐야 하는 언니가 힘들까 봐 마음 써주는 동생에게 속으론 내가 더 미안했다. 그러고 보면 가족들은 엄마를 돌보면서도 나까지 신경 써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이 밀려 늦게 퇴근하는 날은 아이들이 기꺼이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나 대신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엄마의 치매로 일상이 깨질 것이란 추측으로 짜증을 냈던 나의 생활은 다른 날과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배려해 주는 가족 덕분에 나는 더 편하게 지냈다.


엄마의 치매는 우리 가족에게 여러 가지 변화를 주었다. 특히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꿔놓았다. 말 없는 가족의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나는 몰랐다. 아침 먹고 바로 점심 먹자는 소리는 ‘함께’여서 좋다는 의미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할머니와 지내던 그 시간은, 그때 일하는 가족 중 누군가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 가족들 덕분에 그동안 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걸 엄마와 지내면서 새롭게 깨달았다. 그리고 또, 우리 가족은 엄마의 치매 판정 이전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전에는 주말이나 휴일 시간이 맞으면 엄마 집에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지금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엄마 집 근처를 지나갈 일이 생기면 낮이든, 밤이든 엄마에게 들려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할머니 집에서 커피 마시는 중, 붕어빵 있음.’ 이렇게 엄마 집에 들른 가족 중 누군가 문자 메시지를 가족 단체방에 올리면 ‘나 지금 퇴근, 붕어빵 남겨 줘’라며 조카 중 누군가 달려가 합류한다. 어떤 날은 ‘엄마 집에 약식 만들어서 갖다 놈.’ 동생의 문자가 올라오고, 또 다른 날은 ‘어머니 댁에 불고기 재워서 갖다 놨어요.’라는 올케의 글이 보인다.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란 걸 안다. 바쁘다는 구실로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를 생각해서 주말에 오면 가져가라는 소리다.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이전에는 느끼지 못하고 지냈는데, 가족들이 올린 문자에서 마음이 보였다. 글자에서도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준 가족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혼자 지낼 엄마 걱정 안 하고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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