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토요일은 엄마에게 가는 날이다. 늦은 오후 시간, 주말답게 고속도로에 차들이 피난 행렬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엄마가 기다릴 텐데.. ’ 마음이 조급해진다.
치매 판정을 받은 엄마는 요즘 날짜도, 요일도 다 잊고 지내지만, 내가 가면 토요일인 줄 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곧 돌아갈까 봐 아쉬운 마음이 벌써 앞서는지 “내일은 일요일이야?”하며 묻곤 한다.
오랜 운전으로 화장실이 급해 들린 휴게소에서 기다릴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엄마, 차가 많이 밀려서 조금 늦을 것 같아. 기다렸다가 저녁같이 먹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는 내 말은 흘려듣고 엄마 하고 싶은 말만 또 길게 한다. 재석이가 새벽 한 시까지 안 가고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었단다. 울다 보니 재석이는 슬그머니 가고 없더라고. 인사도 안 하고 갔느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인사고 나발이고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빨리 와서 재석이한테 오지 말라고 전화하란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며 엄마와 나눈 통화내용을 생각하고 웃음이 났다. 엄마가 말하는 ‘재석’이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국민 MC 유재석’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TV 속 인물과 인사도 나누고 말을 주고받는다.
뉴스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은 엄마에게‘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저이들은 얼마나 깍듯하게 인사하는 줄 아니? 옷도 항상 단정하게 입고, 나만 보면 반갑다고 저렇게 인사를 해.”하면서 엄마도 뉴스 진행자를 향해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기도 한다. 엄마의 이런 모습 중 나를 가장 웃게 하는 것은 엄마가 이름을 아는 연예인이 나오면 아주 친근하게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른다는 것이다. 제일 많이 불리는 이름이‘재석이’다.
“재석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몸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얼마나 관리를 잘하는지 몰라.”
마치 아침저녁 마주치는 절친한 이웃 사람 대하듯 말한다. 그렇게 반가운 재석 씨가 언젠가부터 엄마의 눈 밖에 났다. 이유인즉슨 늦게까지 집에 안 가고 친구들 불러다 웃고 떠들어서 잠을 못 자게 한단다.
“엄마, 그럴 때는 이거 요기 눌러서 끄면 돼. “
리모컨 전원 버튼을 가리키며 말하는 내게 엄마는 정색한다.
“그래도 야박하게 어떻게 그러니?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아니, 남의 집에 와서 잠도 못 자게 하는데 좀 쫓아내면 어때.”
이렇게 엄마와 맞장구치다 보면 이 상황이 진짜처럼 느껴져서 나도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도 갈 때가 얼마나 없으면 우리 집까지 왔겠니? 오는 건 괜찮은데 때 되면 가서 잤으면 좋겠다. 얼마든지 와서 놀아도 좋으니 일찍 가서 자라고 맘 상하지 않게 네가 전화 좀 해라.”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전화하라고 한다. 오늘도 엄마는 재석 씨 이야기를 하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엄마는 ‘귀여운 치매’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가끔 이렇게 엄마 덕분에 웃을 일이 생긴다. 웃다 보니 앞 차의 브레이크 등이 꺼지며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급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가속페달을 밟았다.
급하게 엄마 집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방으로 들어가 엄마 상태를 살폈다.
“엄마! 나, 왔어.”
엄마는 TV 화면과 마주 보고 있다가 등을 돌리더니 어서 오라는 손짓 먼저 한다.
“엄마! 배고프지? 우선 이거 조금 먹고 저녁 먹을까?”
내가 내민 호두과자 봉투에서 엄마는 호두과자를 하나 꺼내 들고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기를 가리킨다.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재석이가 왔길래 큰딸이 전화할 거라고 얘기해 뒀어. 기다릴 테니 얼른 전화 먼저 해라.”
선생님께 친구의 잘못을 이르는 아이처럼 기세등등해진 엄마는 ‘너 이제 큰일 났다.’ 하는 표정으로 방바닥의 빨간 전화기를 쳐다보며 계속 말을 한다.
“어제는 진짜 너무 약이 올라서 파출소에 신고하겠다고 소리까지 쳤다 그 밤중에.”
“엄마 신고하면 경찰차 와서 앵앵거리고 동네 시끄러우니까 나한테 전화해. 그러면 내가 와서 그만 가라고 좋게 얘기할게.”
엄마는 금방 내가 한 말을 마치 당신이 생각해서 하는 말인 듯‘내가 얼마나 많이 궁리했는지 아냐?’고 하면서 여기저기 전화하면 분명 그 밤중에 동네 시끄러울까 봐 참았노라고 말을 바꿔 자랑스럽게 말했다.
잘했어! 엄마.
그나저나 엄마가 손에 들려준 전화 수화기를 잡긴 했는데 재석 씨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전화번호도 모르는걸.